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7년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호탕한 홍은(洪恩)으로, 법(法)을 얻은 지 불과 12일 만에 사부님께서 공능을 주셨다. 다른 공간의 수승(殊勝)한 광경들이 눈앞에 자주 나타났고 수많은 병업마난(病業魔難) 속에서 나와 함께 했다.
2000년 가을부터 내가 눈을 뜨든 감든 파룬(法輪)이 늘 내 눈앞에서 돌았다. 벌써 25년이 흘렀고, 무수한 파룬이 25년 동안 나를 동반해왔다. 지금에야 나는 왜 파룬이 항상 나와 함께했는지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내가 떨어지실까 봐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한 사람이 수련하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말했듯이 이것은 아주 엄숙한 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속인을 벗어난 것으로서, 속인 중의 어떤 일보다도 더 어렵다. 그것은 초상(超常)적인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속인 중의 어떤 일보다도 당신에 대한 요구가 더 높아야 한다.”
나는 이 단락을 읽을 때마다 사부님 말씀이 마음에 와닿음을 느낀다. 법리로 대조해 보면 수련은 참으로 매우 엄숙한 일이다. 우리에 대한 법의 요구는 매우 높고, 속인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보다 어렵다. 비록 어렵더라도 대법을 따라서 하기만 하면 해낼 수 있다. 사부님의 보호가 있다면 넘지 못할 화염산(火焰山)이 없다. 어려움은 한 사람이 고생을 감당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7·20 이후, 장쩌민 유맹(流氓)집단의 불법(佛法)에 대한 비방과 대법제자들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중국을 휩쓸었다. 천지를 뒤덮는 거짓말이 세인을 독해(毒害)시켰고 대법제자들은 마땅히 떨쳐 일어나 진상을 알려야 했다. 동수들은 모두 열정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대열에 동참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직접 쓴 전단지를 배포하고 표어를 걸었다. 목표는 사람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후 명혜망의 진상 자료가 대륙에 전해졌고 우리 지역까지 전해졌다. 동수들은 이를 인쇄한 후, 큰 면적으로 배포할 수 있었다.
내 수련의 길은 아주 험난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원래 폐병을 앓아 법을 얻었다. 수련 후 건강과 행복을 얻었고, 온갖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기침을 하긴 했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 적색 테러의 잔혹한 탄압 속에서 동수들은 밤에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끊임없는 위험에 직면했고, 경찰에 납치되는 일도 흔했다. 나는 기침 소리가 너무 커서 동수들이 모두 함께 하기를 두려워해 혼자 나가야 했다. 나중에 한 노동수(老同修)가 주동적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며 같이 자료를 배포했다.
그해는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운 날 밤이었고, 날씨는 몹시 추웠다. 노동수는 나를 데리고 8킬로미터 떨어진 큰 마을까지 걸어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그날 나는 기침이 너무 심해서 전단 300장을 다 돌렸을 때쯤 면바지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얼어붙은 면바지를 벗자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당신은 정말 파룬궁에 충심(忠心)이 가득하군.”라고 말했다. 나중에야 나는 이 말이 사부님께서 남편의 입을 빌려 나를 격려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어느 여름 저녁, 노동수(老同修)가 나를 데리고 진(鎭) 정부 소재지에 데려가 스티커를 붙이고 자료를 배포했다. 우리는 줄곧 걸어가면서 스티커를 부착했다. 그날은 아주 순탄치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길가에 주차된 차들을 보면서 피해야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시간이 낭비되었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도 배포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점들이 즐비한 중심가에 도착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자료를 나눠주었다. 나는 가끔 기침을 했는데, 고요한 밤에 소리가 너무 커서 가게 주인이 알아챘다. 그는 마치 도둑을 잡으려는 듯 번쩍이는 손전등을 들고 우리를 쫓아왔다. 우리를 따라잡은 후 그는 큰 일본도를 들고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멈춰라! 뭘 하는 거냐?!”
나는 당당하게 “돼지를 찾고 있어요! 우리 집 돼지가 없어져서 밤새 찾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여자의 몸이고 노동수 역시 노인인을 알고 나서 단번에 바람빠진 풍선처럼 변하더니 우리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유창하게 대답하자 그는 미안한 듯이 우리에게 사과했다. 이렇게 놀란 후에도 우리는 함께 남은 진상 자료를 진 정부와 경찰서까지 계속 나눠주었다. 배포를 마쳤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2014년 봄 어느 날 저녁, 옛 노동수가 나를 데리고 인근 마을에 가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었다. 자료가 많아서 우리는 또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우리가 자료를 나눠주던 중 내가 크게 기침을 했는데,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배포했던 십여 부의 자료가 사라진 것을 알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마을을 떠난 후, 바로 앞 이웃 마을 쪽에서 밝은 탐조등이 우리 방향으로 비추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그곳에 경찰차가 주차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길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능선을 올라갔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보니 두 대의 경찰차가 길을 막고 있었다. 노동수와 나는 줄곧 발정념을 하면서 길을 걸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밤 10시경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의 주요 교차로와 작은 교차로를 맴돌며 우리를 잡으려 했다. 나중에는 경찰차가 집 앞뒤까지 왔다. 그들은 100% 나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듯 새벽 1시 넘어까지 추격을 계속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2008년, 현지 협조인 동수의 조언과 지원으로 나는 자료점을 만들었다. 남편과 아들은 수련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자료를 만드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며느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진상을 알렸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며느리 몰래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아들과 건너편 방에 살았기 때문에 며느리가 깨어 있는 낮이나 초저녁에는 작업을 할 수 없었다. 며느리가 잠든 늦은 밤에만 작업할 수 있었다. 이렇게 3년을 견지했다.
그 3년 동안 나는 대법이 준 자비로 며느리와 화목하게 지내자 그녀도 감화(感化)되었다. 마침내 파룬궁이 무엇이고 파룬궁 수련생들이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또한 공청단에서 탈퇴했다. 나는 마침내 정정당당하게 자료를 제작할 수 있었다.
당시 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 집은 큰 부채가 생겼다. 남편과 아들 모두 일을 했고, 나는 20무(畝)의 땅을 경작해야 했다. 며느리는 어린 손주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농사일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날마다 아주 바빴다. 그래도 시간을 쪼개서 법을 공부했고, 보통 일을 하면서 설법을 들었다. 밤에는 또 잠을 쪼개 자료를 제작하고, 동수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면서 사람을 구하는 가장 큰 일을 지체하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글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동수들이 나더러 법을 실증하는 글을 써서 명혜망에 제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원고를 정리한 후 타이핑을 해서 문장을 완성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타자를 배운 적이 없어서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하다 보니 원고 하나를 완성하는 데 몇 시간 심지어 열 시간 이상 걸렸다. 이 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법 공부는 늦은 저녁 시간에만 할 수 있었다. 특히 매년 두 차례 법회 기간에는 더욱 바빴다. 하루에 한 끼만 먹을 때도 있었고, 정말 배가 고프면 차 한 그릇을 끓여 비스킷을 간식으로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매주 동수들을 위한 자료는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보낸 문장이 사이트에 게재되자 동수들 모두 큰 격려를 받았다.
지난 7, 8년간 글을 쓰면서 바쁘고 피곤하고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나는 수련 제고에서 만족스러운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고 사명을 지니고 왔으며, 중생을 위해 왔다는 것을 안다. 내 눈앞에서 끊임없이 도는 그 파룬은 바로 나를 격려하고 정진하라고 촉진한 것이다.
바빠도 어지럽지 않은 단련을 통해 사부님께서는 내게 지혜를 주셨고 나는 글을 쓰면서 더 빠르게 생각하고 더 유창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문장은 내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완성한 것으로 특히 진상을 알고 복을 받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명혜망과 동태망에 실렸을 때 더욱 기뻤다. 나는 큰 위안을 얻었고 이것이 신성(神聖)한 일임을 알았다. 중생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의 바람이자 또한 나의 바람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마난을 겨냥해 《각지 설법 15》 〈2018년 워싱턴 DC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어떤 사람은, 곧 반복해서 이런 일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의 업력이 크기 때문이며, 내가 말했다시피 대법제자는 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업력이 크지만, 오직 당신이 정념이 족하기만 하면, 그것은 지나간다.”
“그러나 어쨌든 한 점이 있는데,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대법이 있고, 당신이 이미 법을 얻었으며, 당신의 이 생명은 이미 대법에 속했으니, 당신은 목숨을 걸고, 정념정행하고, 사부가 말한 바에 따라 하라.”
사부님께서는 내게 수련중에서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셨다. 28년간 수련하면서 나는 늘 기침하고 가래를 뱉아야 했고, 온몸이 피곤함을 느꼈으며, 늘 뒷등이 무겁고 아팠다. 이것은 마치 한가닥 밧줄로 육신을 단단히 묶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마음을 묶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자신이 역사적으로 지은 무거운 빚을 갚고 있음을 안다. 이는 결코 헛고생이 아니며 고생속에서 업을 갚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가상이라 여기고, 가아(假我)를 닦아버리고 진아(真我)가 나오게 하여 최후에 사부님을 따라 원만해 돌아갈 것이다.
법에서 나는 자신이 금생에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어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온 우주의 모든 신들이 다 부러워하는 생명으로 이는 비할 데 없는 영광임을 깨달았다! 나는 또 대법에 속하는 생명으로, 사부님의 보호가 있고 대법의 인도가 있으니 마땅히 고생을 낙으로 여겨야 한다. 몸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만약 내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사령(邪靈)에게 속은 중생이 붉은 마귀를 따라 순장 당하는 겁난을 지나갈 수 없고, 미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든, 자료를 배포하든, 자료를 만들든, 글을 쓰든 모두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내가 해야 할 책임이며, 모두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나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고, 중생의 천 년 기다림을 저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만고성연(萬古聖緣)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6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