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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서약을 실현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1. 법을 얻은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세상

나는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국민 정부 시절 아버지가 마을 이장을 지냈기 때문에 두 오빠들은 “반혁명분자”라는 모자를 썼다. 이는 또한 내가 초등학교 4년 과정을 마친 후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커서, 친구들이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겨우 열 살이 되던 해부터, 나는 어른들과 함께 집단 노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생산대(生産隊)에서 늘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에 말다툼과 싸움이 일상이었다. 결국 생산대에서는 나를 “계급 투쟁의 새로운 흐름”이라는 모자를 씌워 처벌했다. 수년간의 극심한 육체 노동과 정신적 고문으로 나는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심장병, 신장병, 위장병, 반신 마비, 신경쇠약까지 앓았다. 나중에는 뇌 손상까지 겹쳐 합병증이 악화되었다. 나는 날마다 고통에 시달렸고,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

1999년 1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한 지인이 파룬궁 주요 저서인 《전법륜》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이 책이 사람을 구하는 좋은 책이라며 가능한 다그쳐 읽으라고 권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전법륜》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일생은 다투고 싸워서 이 마음에 아주 큰 상처를 입어, 아주 고달프고 아주 힘들다고 느끼며, 마음속은 늘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며,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져서 노후에 가서는 자신의 온몸을 형편없게 만들어 놓아, 무슨 병이든 모두 생기게 된다.”

“사람은 이전에 나쁜 일을 하여 생긴 업력(業力) 때문에 병이나 마난(魔難)이 조성된다.”(《전법륜》)

이는 나를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나는 자신에게 각종 좋지 못한 사상이 너무 많음을 알았는데 원한심, 분노심, 복수심, 그리고 쟁투심 등이 있었으며 그것도 아주 강했다. 나는 반드시 그것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집 근처에 있는 연공장을 찾아 열심히 법과 연공을 배우고자 했다. 진선인(真善忍)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달 후, 모든 병이 나았고, 온 가족이 파룬따파의 경이로움을 직접 목격했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중국 공산당이 대법과 대법제자들을 공개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나는 파룬따파를 통해 심신의 이익을 얻었고, 대법의 신기와 초상을 직접 목격했으며, 대법이 내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파룬따파가 부당한 대우와 비방을 받을 때, 당연히 세상에 박해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0년 5월,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북경 천안문 광장에 가서 파룬따파를 위해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알리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천안문 광장 경찰서에서 경찰에 즉시 납치되어 지하에 구금되었다. 그들은 북경에 있는 성(省) 사무소에 나를 데려가라고 통보했다. 나는 원래 성(省)으로 압송되어 2주 동안 지방 구치소에 불법 구금되었다. 그들은 또 남편에게서 6,000위안(1년 치 월급에 해당)을 갈취했다. 그 이후로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박해했다.

나는 세뇌반에 한 번, 구치소에 두 번, 강제 노동형을 한 번 선고받았다. 우리 집은 이 기간에 두 번이나 불법 수색당했고, 집에서는 수없이 불법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2년 동안 불법적인 감시와 미행을 당했고, 결국 나는 고향을 떠나 몇 년간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 수련에 대한 나의 의지는 굳건했다.

사악한 중공 당문화의 세뇌를 받아 나는 조급하고 오만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는 가정생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나는 남편과 평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기를 거부했다.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해 내가 결정권을 가졌고, 모든 방면에서 남편을 통제하려 했다. 그 결과 우리는 툭하면 다투고 싸웠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나는 진선인(真善忍) 원칙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남편과의 관계 개선을 시작으로 인내심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모든 일에 대해 평등하게 이야기하고 남편의 의견을 존중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박해로 인해 남편은 끊임없이 괴롭힘과 협박을 당하자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성격이 예민해졌고, 종종 내 앞에서 분노를 터뜨리거나 심지어 폭행까지 가했다. 나와 연루될까 두려운 마음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며 내게 거듭 이혼을 주장했다.

나는 항상 대법 표준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다.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사부님의 법을 반복해서 외웠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홍음 3》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나는 차분하게 남편과 소통하며 말했다.

“수련하기 전에 우리는 가족 생활비의 3분의 1을 병원비로 썼지만 내가 수련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한 알의 약도 먹지 않아 비용을 크게 줄였어요. 만약 내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겠어요? 파룬따파는 또 매사에 남을 배려하는 진정하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해요. 지금 나는 일언일행(一言一行)에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있어요.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내게 얼마나 큰 변화가 있는지 당신은 알잖아요? 설마 이렇게 큰 변화가 있는 걸 모르진 않겠죠? 이 모든 변화는 다 파룬따파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수련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중공사당의 잘못이죠.”

2001년, 나는 불법 납치되어 공안국에 끌려갔다. 사악한 당 요원들은 남편을 불러 나를 “전향시키”라고 했다(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는 의미). 엄청난 압력에 남편은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대법은 내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고, 그건 잘못이 아니 두려워하지 말아요. 사부님께서 계시니 나는 두렵지 않으니 당신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그후 남편도 점차 파룬따파가 중공의 박해를 받는 진상을 깨닫고 나와 함께 사악의 불법 박해에 저항했다.

어린 시절부터 길러진 쟁투심과 독선적인 오만함 때문에 나는 늘 동수들을 손가락질했다. 동수의 단점을 보면 즉시 거만하고 가혹한 말로 상대를 비난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하면서 내가 그들의 제고를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악순환이 여러 해 동안 반복되었고, 나중에 나는 心性(씬씽)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동수들 역시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니 내가 그들에게 무례하게 굴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 온갖 잡념이 생겨나 내려놓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한 동수 집에서 그에게 기본적인 컴퓨터 기술과 다운로드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가르쳐 주었지만, 그는 자신이 필기한 것과 대조하면서도 제대로 조작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이 있는 동수임에도 때로는 나를 겨냥해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대화 도중 인터넷 접속하는 일은 거의 없고 집에서 법 공부와 연공만 하면서 그저 자신의 번티(本體)를 더 잘 변화시키려고 애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법리적으로 그와 교류하려 했지만, 그는 아예 귀 담아 듣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원망이 솟구쳤다.

나는 억지로 心性(씬씽)을 유지하면서 표면적으로 참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생각했다. 왜 그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중 문득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내게 쟁투심과 원한심 및 온갖 집착심을 없애라고 하신 것이다. 이 생각을 하니 갑자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뿐하고 행복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계속 감사드렸다.

“제자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마땅히 닦아 버려야 할 사람 마음임을 깨닫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2. 세인은 모두 구도를 기다려

어느 날, 외지에서 온 관광객 십여 명을 만났다. 그들은 가이드도 없었고, 길모퉁이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알려달라고 했다. 내가 막 길을 안내하고 있는데, 버스 한 대가 마침 우리 쪽을 향해 왔다.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었던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집을 떠나면 안전한게 복입니다. 파룬궁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왔으니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구자 진언을 기억하시면 겁난(劫難)에서 여러분을 보호해 편안해지실 겁니다.”

그들이 내 옆을 지나쳐 달려갈 때, 나는 그들의 어깨를 일일이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보세요.”

그러자 십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쳤다. 마침내 모두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한 남자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구자 진언을 외치는 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졌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격해서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2021년 여름, 내가 마침 진상을 알릴 인연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왔다. 옷차림은 단정했지만 걷는 데 약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와 소통하기 위해 전에 다쳤던 내 무릎을 보여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와 그녀의 남편, 아이들, 그리고 몇몇 친척들이 모두 공안, 검찰, 사법 부문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최근 은퇴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 저를 가지해 주세요! 그녀를 구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그녀에게 중공의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려야 합니다.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면 끔찍한 후과(後果)가 있음을 알리고,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중단하라고 촉구해야 합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게 남편과 함께 직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상사가 특별히 둘째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고 말했다. 대화 중에 나는 그녀와 그녀 가족의 만족스러운 생활을 축하하지만 오늘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대법 수련생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은 관리하고 감독하는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저 정부에서 선전한 것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감옥에서 내가 받은 박해 및 내가 목격한 수련생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전에 질병으로 고통받았지만, 수련을 통해 빠르게 몸이 건강해졌습니다. 나도 그중 하나인데 20년 넘게 약을 먹지 않습니다. 나는 곧 일흔입니다.” 그녀는 내가 60도 안 돼 보인다고 했다.

나는 또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수련생은 한동안 수련하고 나면 외관상 변화가 아주 크다. 피부는 부드럽게, 희고도 불그레하게 변하며,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도 주름살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주 많이 줄어드는 일이 나타날 것인데,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전법륜》)라는 사부님 말씀을 전달했다.

그런 다음 나는 리훙쯔 사부님께서 학습반에서 수련생들을 어떻게 치료해 주셨는지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당시 북경의 많은 고관대작들과 지식인들이 파룬궁을 수련해 도시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대 초, 파룬궁은 건강 증진, 의료비 절감, 그리고 전통문화 보급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예를 들어, 1992년 동방건강 박람회에서 파룬궁은 “명성공파” 상을 수상했다. 1993년 동방건강박람회에서 리훙쯔 선생님은 박람회 최고상인 “프런티어 과학 진보상”과 “최고 인기 기공사”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대단하네요! 파룬궁이 원래 그랬었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어서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된 상황과 귀주성 평당현 “망당석(亡黨石)”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파룬따파가 세상에 온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지만, 중공이 거짓말을 날조해 모함하고 비방했다고 했다. 하지만 올바른 신앙에 대한 박해는 하늘이 용납할 수 없기에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공 관련 조직에 가입한 사람은 중공의 분자로 간주되어 필연적으로 재앙을 당할 수 있으니 가명으로 삼퇴하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삼퇴를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오늘 내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호의에 감사드리고 중공의 파룬궁 박해 진상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직무상 편리한 점을 이용해 대법제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면 참으로 무량한 공덕이 있는 좋은 일이 될 거라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악수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중략)

3. 사부님께서는 늘 중생을 보호

내가 유리실소(流離失所) 생활을 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땔감을 팔아 살고 있었는데, 부엌에 장작이 가득했다. 어느 날, 내가 외출하고 집에 없는데 부엌에 남아 있던 장작불이 근처에 쌓여 있던 마른 나무에 옮겨붙었다. 불길은 점점 거세져 결국 지붕까지 쌓여 있던 마른 나무들을 다 태워버렸다. 시골이라 집에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오랫동안 지붕에서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와중에 누군가 “당신 집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 연기가 너무 많아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원래 대문을 잠그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 보니 부엌에 여러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장작은 다 타서 숯이 되었고 부엌 전체가 뜨거운 불길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작은 불씨만 남았을 뿐, 지붕은 온전했다.

불을 끄러 온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목재로 만든 집에 기와를 얹은 옛날집인데 판자는 하나도 불에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대법 진상을 알린 이야기들을 자주 들었다. 그들은 모두 말했다.

“오늘 우리는 직접 대법의 위력을 목격했습니다. 이건 완전히 당신 사부님이 당신을 보호해 주신 겁니다!”

큰오빠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 고향은 산골이다. 그곳 젊은이들은 모두 외지로 돈벌러 나갔고, 산 위에는 수년째 인적이 끊긴 채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산길을 완전히 뒤덮었다. 어느 날, 오빠가 산에 올라가 대나무를 베고 있었다. 나는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오빠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는 약하고 떨리고 어눌했으며, 나더러 산에 올라와 자신을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오빠는 키가 크고 몸무게가 80kg이 넘는다. 게다가 산은 가파르고 험준했다. 그런데 나 혼자 힘으로 오빠를 무사히 데려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할까? 나는 자비하신 사부님께 청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오빠를 집에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큰오빠는 이미 파룬따파 진상을 알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전한 적도 있다.

내가 산을 넘고 고개를 지나 산에서 오빠를 찾았을 때, 그는 땅에 반쯤 주저앉아 심하게 떨고 있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오직 일념(一念)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나는 또 오빠가 진 빚이 있으면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는에 어찌 되었든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오빠를 부축해 내 어깨에 한쪽을 기대게 하고 다른 손으로는 대나무를 짚게 했다. 우리는 이렇게 힘겹게 한 걸음씩 걸어 집까지 갔다. 집에 도착해 오빠를 침대에 눕혔다. 잠깐 사이에 몸이 심하게 떨리면서 침대가 무너졌고 오빠도 바닥에 떨어졌다. 마침 오빠의 자녀들이 도착했고, 몇 사람이 차에 태워 급히 병원에 입원시켰다.

한 시간 후, 병원 입구에 도착해서야 오빠의 떨림이 멈췄다. 병원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사했지만 아무 병도 없었다. 마침 병원장이 오빠 딸의 동창생이라 병원측에 미리 준비하도록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 결과에 병원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충격으로 말문을 잃었고 다들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았고 파룬따파 사부님께서 오빠를 구해 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비록 10년도 더 지났음에도 사람들은 아직도 이 신기한 일을 이야기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