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수련생
【정견망】
최근 《전법륜》을 통독하던 중, 책 속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으로 갑시다. 가자. 입원해 있으면서 퇴원하지도 않는다. 속인이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연공인(煉功人)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나이에 속인이라면 다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살갗 하나 안 다쳤다.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오는데, 만약 그녀가 거기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다 하자. “아이고, 난 안되겠다. 여기도 다쳤고, 저기도 다쳤다.” 그러면 아마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을 것이다.”
아래에서 현 단계에서 나의 작은 인식을 말해보겠다.
나는 노년 대법제자로 온갖 시련을 겪으며 오늘까지 이르렀다. 수련의 길에는 괴로움과 즐거움, 시리고 매운맛이 있었고, 이치를 깨달은 후의 승화도 있었으며, 미혹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유감이 컸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신을 느슨하게 하여, 시시각각 일마다 자신을 진정한 연공인(煉功人)로 여기지 못했다.
한 연공인이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못하면, 그럼 문제가 너무 크다. 왜냐하면 속인의 사상과 수련인의 사상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보낸 염두가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속인이 어려움을 만나면, 사람의 사유 방식으로 접근한다. 가령 머리가 뜨거워지면 열이 있는 게 아닌가? 설사를 하면 더러운 음식을 먹은 게 아닌가? 생각하는 등등. 하지만 수련인은 마난(魔難) 속에서 흐름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자신을 확인해 보았다. 나는 매사에 높은 표준으로 요구했는가? 흔들리지 않는 일념(一念)은 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되는데 나는 법의 표준에 도달했는가?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남는 것은 피로뿐인데, 소파에 앉아 대법 책을 펼치면, 눈은 감기고, 머릿속에는 정념이 사라져 오직 속인의 생각만 남는다. 나는 너무 지치면 잠을 좀 자야만 피로와 졸음을 풀 수 있다. 이런 일념이 무려 20년 넘게 이어졌는데, 나는 전혀 잘못임을 깨닫지 못했다. 매번 깨어난 후 자신이 수련 초기에 이를 돌파하지 못해 수련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고 후회했다. 나는 발정념으로 그것을 해체하려 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최근 대법을 받들어 읽다가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나온다”는 구절을 읽자 우둔한 나를 일깨워 주었다.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나는 항상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생각했고, 자신을 사람으로 여겼다. 사람이라 당연히 피로하고 졸리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마땅히 견정한 일념을 발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연공인이니 나는 피로하지 않고 나는 졸리지 않는다.”
몸이 불편할 때 대부분 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생생한 감각이고, 아울러 반복되기도 하며, 때로는 그 상태가 당신을 무너뜨리려는 듯 느껴질 때도 있다. 이때 대법을 굳게 믿을 수 있는가? 사부님을 굳게 믿을 수 있는가?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일념(一念)을 수련해 낼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이 진리를 환히 깨달은 후의 착실한 수련임을 체험했다.
때로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날 때,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못하면 사람의 사유 방식에 따라 분석한다. ‘손발이 저리는데 최근에 왜 자꾸 저리는 걸까?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사람 마음이 신체 감각에 갇혀 오르락내리락한다. 완전히 표면의 가상에 이끌려, 한편으로는 연공인은 병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또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때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너의 주의식은 어디로 갔는가? 그런 부면(負面) 사유가 나란 말인가?”
그건 내가 아니다. 나는 연공인이고 나는 속인이 아니다! 내가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 부면 사유를 견정하게 제거하고, ‘나는 병이 없다’는 일념을 견정하게 지켜야 한다. 속인의 사상이 나타나는 건 두렵지 않다. 두려운 건 어느 것이 사람 마음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온다.” 나는 대법을 굳게 믿고 사부님을 굳게 믿는 일념을 닦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기”(《전법륜》) 때문인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직 끊임없이 자신을 순정(純淨)하게 하고, 끊임없이 사람의 관념을 끊어내며, 끊임없이 대법에 동화해, 끊임없이 정념으로 자신을 주도하는 것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8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