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들어 뭔가 무형의 것이 가슴을 막은 것처럼 느껴져 수련을 느슨하게 했다. 때로는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들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뭔가 정체되어 전진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고 때문에 일사일념(一思一念)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예전에는 업무에 필요한 정보는 온라인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일부 정보는 더 이상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온라인 정보의 질도 천차만별이다. 설령 유용한 정보를 찾았다 하더라도 직접 진위(眞僞)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어느 날 동료가 정보의 정확성을 검증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AI가 제시한 답은 전반부는 A가 옳다는 근거를 제시하다 후반부에서는 B가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료는 어쩔 줄 몰라 하며 “AI가 바보가 되었어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컴퓨터를 신뢰할 수 없게 되자 컴퓨터에 크게 의존하던 동료들에게 있어 그들의 업무에 확실히 적지 않은 충격을 끼쳤다. 첫째, 작업 속도가 허용 가능한 범위 아래로 떨어졌다. 둘째, 완제품이 고객 만족을 충족하지 못해 끊임없는 수리가 필요했고, 이는 다시 모두의 인내력을 넘어섰다. 결국 동료들은 그런 일을 피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대법 수련자로서 나는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따라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에, 업무 중에서 이것저것 고를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직접 이 업무를 마주해야 했다.
내가 이 업무를 맡기로 수락한 후 담당자가 마침 집안일로 휴가를 떠났다. 사장님도 나를 만나지 않으려 했고, 동료들은 내가 자신들이 한 일의 문제를 제기할까 봐 두려워 내게 말을 거는 것조차 꺼렸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업무를 완수하는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때 문득 명혜 문장 《우리의 사부님》에서 동수가 들려준 사부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사부님께서는 끝까지 해 나가십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돈의 개념도 없으세요. 해야 할 일이면 하시죠. 매일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보다 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매우 신기해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야 할 일은 모두 이뤄졌어요. 우리와는 다르세요, 우리는 가끔 일을 하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포기해버리거든요.”
사부님의 말씀과 행동은 내게 부면 사유를 내려놓도록 격려해 주었고 “사부가 있고 법이 있으니”(《시드니 법회 설법》) 반드시 헤쳐나갈 길이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사부님의 가지(加持)하에 내가 맡은 업무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장님은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를 찾아와 “당신이 그 업무를 맡았습니까?”라고 물어보셨다. 그 순간, 내 사상 속에서 한 가지 염두가 떠올랐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빨리했는지 보세요!”
동시에, 머릿속에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오후 휴식 시간에 직장에서 가부좌하다 위로 뜬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람은 바로 여기서 자신의 과시심을 그리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 ‘봐라. 내가 이 공을 얼마나 잘 연마(煉)했는가. 나는 날 수 있다.’ 그가 과시만 하면 없어지는데, 이렇게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나의 이건 과시심이 아닌가? 나는 마침내 “과시”하는 이 집착심을 붙잡았고, 그것을 따라가 보니, “과시”는 강한 “독선”을 가리고 있었고, 그 “독선”의 배후에는 다시 다른 사람을 천 리 밖으로 밀어내는 일종의 “오만”을 감추고 있었다.
“오만”의 쌍둥이 생명이 바로 질투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4》 〈대법 홍전 25주년 뉴욕 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이 질투심을 당신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이 물건은 무시무시한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모든 수련을 다 해이해지게 만들 것이고, 당신을 망칠 것이다. 질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만”은 또 공산사령(共産邪靈)의 사악한 유전자 중 하나다. 공산사령은 그 오만함 때문에 진심으로 신(神)에게 복종할 수 없었고 신을 질투하고 저주하다 결국 완전한 자기 훼멸로 나아갔다.
그러므로 나는 “오만”이란 이 독초의 싹을 근절해야 하며, 질투심을 자양(滋養)해선 더욱 안 된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다그쳐 자신을 잘 수련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해 유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