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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使命)

미국 대법제자

【정견망】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하는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주신 구원 플랫폼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플랫폼의 다른 동수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많은 사람 마음이 있고 부족한 점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전반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을 깊이 반성했다. 내면에서부터, 위아래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바로잡아 바른 방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번에 교류할 주제는 바로 사명(使命)이다.

1997년,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그 한 해에 나는 마난이 가득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 대인관계의 긴장, 학업 좌절, 예상치 못한 골절, 입원, 금전적 손실… 불운이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한때 완고했던 무신론은 현실에 의해 끊임없이 산산이 조각났다.

어느 날 밤, 생생한 꿈을 꿨는데, 영혼이 마치 팔다리에서 떨어져 나와 몸 밖으로 날아가 마치 어떤 존재를 찾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일면(一面)이 깜짝 놀라 깨어났고, 무의식적으로 “원래 정말 영혼이 있구나!”라고 외쳤다. 그 순간, 날아가려던 “내”가 다시 몸으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완고한 무신론은 더 이상 나를 유혹할 수 없었다. 나는 인생의 의미와 진상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1997년 겨울, 작은 서점에서 《전법륜》을 우연히 발견했다.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라는 구절과 천목(天目)에 대한 구절을 읽었을 때, 내심으로 깊이 감동했다. 나는 즉시 책을 사서 근처 정원에 걸어가 차가운 돌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날 날씨가 몹시 추웠지만, 나는 자신도 모르게 공원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그리하여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 아래 나는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8년간 내가 걸은 길은 기복이 가득했다. 중국에서 박해받았던 다른 수많은 동수들처럼 나도 일찍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방황했다. 명리정(名利情)의 고험에서 끊임없이 취사선택을 해야 했고, 세상의 흥망성쇠와 고험을 겪었다. 일찍이 모든 것을 얻었지만 또 모든 것을 잃었다. 이러한 마난을 통해 나는 오직 수련만이 생명을 영원하게 할 수 있으며, 이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임을 깊이 깨달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대법에 대한 박해와 사악의 악랄한 거짓말과 비방에도 불구하고 시종 미혹되거나 믿은 적이 없다.

미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늘 감사함이 가득했다. 방황하던 시절부터 오늘날의 점차 정착에 이르기까지, 빚을 갚지 못하던 시절부터 2025년에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나의 모든 발걸음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과 뗄 수 없다.

1. 내가 플랫폼에서 전화 진상을 하기로 선택한 이유

내가 구원 플랫폼에서 진상 전화를 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중국에서 겪었던 박해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5년 9월, 내가 살던 중국의 한 도시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단속이 있었다. 여러 자료점 및 협조인들이 단속 대상이었다. 그 단속 전, 나는 꿈에서 두 장면을 생생하게 보았는데, 그 장면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첫 번째 장면: 흉악하고 사나운 마(魔)들이 모여 회의를 열면서 무언가 상의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문밖에 서서 그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직감했고, 두려움에 떨었다. 꿈속에서 나는 조용히 빠져나왔다.

두 번째 장면: 화면이 변해 아주 큰 장면으로 바뀌었다. 화면 앞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고, 화면에는 동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떤 이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고 어떤 이들은 몰랐다. 그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소박했으며, 마음에 아무런 잡념도 없이 《전법륜》을 읽고 있었다. 그들은 정신을 집중한 진지한 신념(信念)은 화면 앞에 있던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다. 그들의 순정(純淨)함과 소박함이 사람 마음을 흔들었다.

나중에 이 꿈을 생각해 보니 마치 어둠의 세력이 박해를 꾸미려 했지만, 수련인의 순진하고 견정(堅定)함에 사악을 놀라게 했고 심지어 두려워 떨게 한 것이다. 이 한 장면은 나중에 내가 직접 박해 받을 때 내심의 의지처가 되었다.

나중에 꿈에서 미리 본 대로, 우리 지역에서 도시 전체에 걸친 대대적인 체포가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어느 일본기업에서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겉보기에 평화로웠던 내 삶은 이 갑작스러운 폭풍에 휩쓸렸다.

그날도 평소처럼 나는 정해진 시간에 일본 회사에 강의하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610 경찰 몇 명이 들이닥쳐 나를 끌고 갔다. 그들의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후회와 사과가 담겨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눈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후 며칠 밤낮으로 나는 지역 경찰서에 구금되어 밤새도록 불법 심문을 받았다. 주로 자료점, 연락인 등에 관한 사항들이었다. 밤새도록 조사를 받았다. 사실 당시 나는 속인의 직업을 가진 일반 수련인에 불과해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들은 알지 못했다. 심문을 받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 대처 방법을 생각해 냈고, 결국 가족의 도움으로 1년의 “주거 감시” 형을 선고받고 여권이 압수되었다.

610명의 경찰관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들이 아이들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웃고 농담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그들의 대화는 자녀들에 대한 실망과 국내외 생활에 대한 불만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들의 말투로 보아, 610 사무소에서 노인들의 대화를 듣고 사람을 체포하는 일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들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전화번호를 여러 번 바꾸고 집 밖으로 나갔다는 신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도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이 나를 발견하고 관할 경찰서 근처에 있는 610 사무소로 가라고 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직원들이 말했다. “당신의 거주 감시형은 이미 만료되었습니다. 당신도 아시죠? 당신을 자유로운 신분으로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를 겁니다.”

나는 완전히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서명할 서류를 건네주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박해 사실을 부인하며 내 이름을 적는 것도 거부했다.

그러자 소위 담당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나를 보지도 않고 주변 동료들에게 말했다.

“사실, 그들은 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 진선인(真善忍)이잖아, 선량해지고 싶어하지…”

그런 다음 그는 나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서명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당신은 자유입니다. 가서 여권을 받아 가세요.”

이 경험을 돌이켜보니, 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압박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종종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중국대륙과 같은 그런 환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중 인격과 다양한 가면을 쓰고 있으며, 누구나 사는 것이 복잡하고 지친다.

나는 이른바 610 사무실 담당자 마음속의 선념(善念)과 양지(良知)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전에 한번 어느 여자가 건 진상 전화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는데 그녀는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려주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설령 가장 어두운 시스템 안에서도 내심 깊은 곳에서는 일부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환경에 의해 억압되고 신분 때문에 가려졌을 뿐이다. 이러한 기억들은 내 가슴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 예측할 수 없는 시대였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박과 고난을 겪었다. 나 개인의 고험일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깊은 충격을 주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나중에 내가 구원 플랫폼에 합류하여 진상 전화를 하게 된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이 잔혹한 박해를 직접 목격하고 역사를 목격한 사람으로서, 나는 대법제자의 선(善)이 중생들에게 진정한 희망과 빛을 가져다주는 힘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구원 플랫폼이 소중한 이유인데 우리는 그들 생명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그들이 세상에 내려오기 전 부탁이자 당부였을 것이다. 설령 인간 세상에서 나쁘게 변하더라도 그들의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양지와 선념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진상을 말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는 선념을 일깨워 줄 수 있다면, 그들 생명은 구도 받을 희망이 있을 것이다.

2. 공안, 검찰, 사법부 직원에게 전화한 경험

내가 플랫폼에서 진상 전화를 하는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그저 조용히 듣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곤 했다. 때로는 내가 차분하게 “부디 파룬궁 수련생들을 선량하게 대해 주세요, 아셨죠?”라고 말하면 전화를 받은 경찰관 중 일부는 기꺼이 “알았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더 많은 경찰관들이 그냥 전화를 끊거나 아예 받지 않았고, 더 많은 경찰관들이 침묵을 지켰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경찰관이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당신 파룬궁이지?”라고 물었다. 나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차분하게 “당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께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하게 그는 곧바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기분이 나쁘다며 누군가에게 화를 터뜨려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러고는 욕설을 퍼붓고 조상들을 모욕하며 자신의 인격을 모독하는 등, 마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차분해졌고, 사람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대법제자는 원래 이렇구나, 욕을 먹어도 아예 어떤 마음에도 이끌리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욕설을 퍼붓는 5분 동안 조용히 들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춘 후에야 한 마디 했다.

“제가 한 마디 해도 될까요? 욕은 충분히 하셨나요?“

그는 “아직 부족해!”라고 대답하고는 1분 더 이런저런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좋아요. 1분을 더 드리죠. 하지만 전화로 당신이 그렇게 욕하는 걸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저뿐임을 아셔야 합니다. 만약 집에서 그렇게 욕한다면 당신 아내는 벌써 도망갔을 테고, 자식들도 원수처럼 여길 테니까요.”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 전화를 끊을 때까지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서둘러 다시 전화하지 않고 하루를 기다렸다. 그가 전화를 받았을 때 주변은 시끄러웠다. 그는 차갑게 “지난번에 그렇게 욕을 먹더니 또 왔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그가 내 말을 잘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음에 다시 전화하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사흘째 되는 날, 마침내 그가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낮은 것이 회의 중인 게 분명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뭐야? 당신 무슨 일이야? 나중에 다시 전화해. 회의 중이야.” 그리고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넷째 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음성 메시지에 메시지가 남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통화 중이었다. 몇 번이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발정념을 하며 그가 전화를 받기를 바랐다.

드디어 다섯째 날, 마지막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부드럽게 “응” 하고 대답한 후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다. 나는 차분하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진선인(眞善忍) 수련생들을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할 수 있죠?”라고 재촉했다. 그는 다시 “응” 하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 일련의 전화는 마치 줄다리기처럼 느껴졌다. 비록 겉으로는 그가 회피하고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의 양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깊이 알았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자비와 친절로 그에게 호소한다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한 줄기 빛을 남겨줄 수 있다.

이상 교류에서 바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