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李驍)
【정견망】
1. 사부님의 안배로 제자가 법을 얻다
망망한 인생의 길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법(法)을 얻을 수 있는 기연을 안배하셨는데 어떤 연분은 한 번 놓치면 영원히 사라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갑자기 중경(重慶 충칭)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느꼈다. 그 열망은 너무나 강렬하고 깊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오직 중경에만 가고 싶었다. 다른 곳은 중경만 못했다. 그래서 나는 중경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불교 수련 이야기, 역대 고승들의 전기, 그리고 일부 성경 이야기들을 읽었는데, 내게 큰 감동을 주었고, 도(道)를 찾으려는 염두를 품게 되었다. 서적들을 뒤적여 보니 대법은 만난다 해도 구할 수 없고, 아무도 감히 진법(真法)을 말할 수 없으며 아주 미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에서 흐름을 따라가면 평범한 사람[凡人]이 되고, 흐름을 거스르면 신선이 될[成仙] 수 있다.
사실 광주(廣州)에 가기 전에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몸이 좋아졌다. 사부님께서는 즉시 내몸을 청리해 주셨고 수련을 허락해 주셨다.
나는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 대학 시절 군사 훈련 때 군 병원에서 맹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상처 부위에 딱딱한 덩어리가 생겨 끊임없이 아팠다. 수련을 시작한 후에도 통증은 계속되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병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무의식적으로 덩어리가 사라지고 회복되었다.
수련하기 전에는 등에 차갑고 무거운 돌판이 얹혀 있는 것 같았다. 감기와 열 때문에 매달 병원에 갔고, 때로는 입원까지 했다. 수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2.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안배하신 득법(得法)의 길
(1) 사실 1994년, 사부님께서 법을 말씀하시고 공을 전하기 위해 중경에 오셨다. 기숙사 입구에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봤는데 이미 학습반이 시작된 지 하루가 지났다. 즉 내가 광고를 본 것이 학습반 둘째날 저녁이었다. 법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좋지 않은 그런 생명들이 나를 어지럽게 하거나, 강북[江北 역주: 중경 대학은 가릉강 남쪽에 있는 반면 학습반은 강 북쪽에서 개최되었음]은 너무 멀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밤에 어떻게 돌아갈지 등의 이런 사람 생각이 가로막았다. 하지만 나는 확고하지 못했고 오성이 차(差)해서 당시 법을 얻을 기회를 놓쳤다. 나는 몹시 후회했다. 동창이 나와 함께 강북(江北) 기공 협회라는 아주 작은 곳에 갔는데 “중경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 성도(成都)로 가셔서 학습반을 꾸리셨는데, 지금은 끝났다.”고 했다.
(2) 1994년, 어느 날 고향 친구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친구한테 읽을 만한 책을 좀 달라고 했다. 그는 내가 기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친구가 갖고 있던 《중국 파룬궁》(수정본인 듯)을 빌려주었다. 이것은 내가 찾던 것이 아닌가? 나는 아직 파룬궁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몰랐다. 책을 펼치자마자 깜짝 놀랐다. 이야말로 바로 내가 찾던 게 아닌가? 대법(大法)·대도(大道)가 아닌가? 나는 하룻밤 사이에 책을 다 읽었고 이렇게 법을 얻었다.
(3) 당시에는 이 책도 아주 귀해서 나는 책이 없었다. 나중에 제남(濟南)에서 “제남 사부님 설법 테이프”를 파는 사람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에게 연락했지만 테이프도 품절이었다.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해서 테이프를 팔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나는 학생인데 읽을 책이 없으며 이미 한동안 수련해 왔다고 말하며 제발 테이프 한 세트를 팔아달라고 간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내게 한 세트를 보내주었다. 동수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당시 영어 교육 연구 사무실에 복사기가 있어서 나는 동수들을 위해 여러 세트를 복사했다.
(4) 당시 사천외국어대학교 동수들이 사부님께서 광주에서 학습반을 여시는데 중국에서는 마지막 학습반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티켓을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티켓값이 매우 저렴했다.
당시 나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자신이 사부님을 찾아가 법을 얻을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쳤는지 생각했다. 설령 공부를 계속할 수 없거나, 퇴학당하거나, 학업을 잃을지라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광주에 가서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석하고자 했다. 내 마음에 두려움이 없었고 또 아주 즐거웠다. 대법은 만고(萬古)에도 만나기 힘든 것이 아닌가!
우연히 퇴직한 고향 사람람을 만났는데 간부 출신이었다. 우리는 광주로 가는 기차표를 살 수 없어서 그에게 부탁하자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 광주 학습반 이야기
(1) 심성을 닦을 줄 모르다
우리는 백운 비행장 근처 백운산(白雲山) 자락에 있는 부대 초대소에 묵었다. 세 사람이 한 방을 썼는데 한 수련생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당산 출신 동수들로 가득 찬 큰 방(그 방에는 1인용 2층 침대가 있어다)에 묵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 명이 방을 같이 썼다. 초대소에서 일반인 한 사람을 함께 묵게 해서 나는 마음이 좀 불편했다. 이 얼마나 번거로운가. 그래서 프런트에 가서 따졌다.
이때 한 동수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여기에 와서 뭐 하는 겁니까? 왜 그들과 논쟁합니까?”
나는 표면적으로는 (법을) 이해했지만,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일을 통해 나더러 관(關)을 넘고, 안으로 찾아 자신의 쟁투심, 원한심, 질투심을 제거하게 하신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흐릿해서 알지 못했다.
(2) 광주 체육관에서 설법을 들으면서 심성을 지키지 못하다
설법을 들을 때 나는 사부님 오른쪽 뒤에 앉아 있었다. 동릉(銅陵)에서 온 한 동수가 나와 자리를 바꿔 작은 녹음기로 사부님의 설법을 녹음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바꿨다. 하지만 사부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사심(私心) 때문에 다시 자리를 바꿨다. 사실, 사부님의 설법은 체육관 어디서든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또 한 가지 큰 집착이 있었다. 사부님께서 이미 내게 파룬을 주셨지만, 정식 전수반에서 다시 파룬을 주시면 더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근본 원인은 내가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사부님 설법의 현묘하고 위대함
나는 사부님 얼굴을 뚜렷이 볼 수는 없었지만, 그분과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침착하고, 지혜롭고, 불가능이란 없으셨으며, 자비롭고, 위대하셨다. 사부님의 거대한 모습이 내 몸과 마음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대법의 장엄함과 수승(殊勝)함이 내 심신(心身)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광주 체육관의 에너지 밀도는 두껍고 끈적끈적하며 물질적이고 밀도가 아주 높아서 손으로 만질 수 있었고 도처에 다 존재했다. 사람이 마치 그 안에 깊이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는 사부님의 전수반(傳授班)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길을 걷는 것도 마치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듯, 자신이 마치 날아오를 것만 같았고, 세계관이 전반적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매일 밤, 초대소에 묵던 대부분의 동수들이 함께 옥상에 올라가 연공했다. 당시 광주의 밤은 아주 특별했다. 달이 밝게 빛나 밤이 대낮처럼 밝았으며, 하늘은 맑고 깨끗했으며, 수많은 기묘한 새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그야말로 “불광(佛光)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전법륜》)였다.
어느 날 밤, 우리가 연공을 하고 있을 때 한 동수가 “파룬(法輪)이다!”라고 외쳤다. 밝고 맑은 하늘 속에서 나는 거대한 흰색 에너지 덩어리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끊임없이 회전하는 것을 보았다. 파룬 주위에는 눈부신 흰색 빛줄기가 퍼져 있었다. 시계 방향으로 돌면 밝은 빛이 안으로 끌려 들어갔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 밝은 빛이 밖으로 방출되었다. 끝없이 앞뒤로 돌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신비로웠다. 꼬마 동수들이 본 것은 사존(師尊)께서 거대하고 화려한 파룬 위에 앉아 계셨다. 사람 마음을 대단히 진감(震撼)시켰다.
아, 설령 천목이 열려서 수련하고 신적(神跡)을 보았다 하더라도 잘 수련하지 않으면 여전히 떨어져 내려가고 수련 성취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절대적인 효과가 없으며 수련은 쉽지 않다. 구세력이 구실을 잡으면 수련인의 사람 몸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구세력의 배치를 지연시키실 수 있지만, 구세력이 데려갈 사망 시점이 되면 사부님께서 능력이 있으셔도 보호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4. 사부님께서 제자를 학교로 돌아가도록 안배
(1) 학교로 돌아가는 길
사부님의 설법이 끝나려 하자 우리는 곧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돌아가는 표를 살 수 있는지 몰랐다. 사부님의 설법이 끝나갈 무렵, 사천 외국어 대학에서 온 한 동수가 귀주 동수에게 기차표 세 장을 주었다. 그들은 또한 귀양 기차역에서 동수를 찾아 중경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탑승하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그들의 도움에 깊이 감동했다.
우리는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에 탔다. 내가 너무 조급했기 때문인지 버스는 천천히 움직이며 멈췄다가 출발했다.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나더러 이 집착을 깨닫고 내려놓으라고 하신 것임을 몰랐다. 나는 진심으로 신사신법하지 못했으니 정말 괴로웠다. 우리가 오직 수련하기만 하면, 수련의 길에서 마주치는 일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너무 늦게 각성한 것이 안타깝다. 만약 사부님의 안배를 따르지 않는다면, 분명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기차로 달려갔고, 우리가 탄 지 몇 분 만에 기차가 출발했다. 사부님의 고달픔 마음 쓰심에 감사드린다.
귀양(貴陽) 기차역에 도착하자 동수가 우리를 도와 기차에 태웠다. 기차는 거의 극한에 달할 정도로 찼다. 경찰이 소매치기를 때리는 소리와 요란한 소음이 너무 가까이서 들려와 사람 마음을 뒤흔들었다. 지금에 와서 인식한 것은 안으로 찾지 않고 제대로 수련하지 않으면 구세력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려주신 것이다. 구세력은 악(惡)이고, 사부님은 선(善)이다.
(2) 중경 동수들을 만나다
기차 안에서 광주에서 중경으로 돌아가는 동수들을 만났다. 한 여자 동수는 중경 학습반을 마친 후 사부님께서 집에 모신 부채의 위패를 청리하라 하셨고 집에 와서 청리할 때 놀랍게도 위패와 위패 뒷면에 있던 초상이 다 사라졌고 이미 청리되었음을 발견했다. 그녀는 사부님은 너무 대단하시고, 무엇이든 다 아시며 무엇이든 우리를 도와 하실 수 있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가 옆에 두었던 대법 자료가 담긴 자루가 사라졌다. 그녀는 사방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야기하느라 너무 바빠서 대법 자료가 담긴 가방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누군가 가져갔음을 알았다. 우리 모두 너무 부주의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객차 안에서 소리쳤다. “여러분, 저희가 파룬궁 자료가 담긴 가방을 잃어 버렸습니다. 안에는 돈은 없고 기공 자료만 있으시 제발 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잠시 후, 갑자기 가방이 돌아온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학교로 돌아왔고 모두 순조롭게 졸업했다.
5. 중경에서 대법이 널리 전해지다
(1) 작은 단체 연공장이 커지다
중경 강북에 있던 어느 학교 안의 작은 운동장에서 매주 한 차례 단체 연공장이 있었다. 연공 시간은 아침이었고, 단체 연공을 조직한 분은 고(顧) 소장이었다. 나는 동수들에게 고 소장이 북경에서 사부님 학습반에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북경의 많은 관리와 유명 인사들이 법을 얻었지만 사부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셨고, 계층에 관계없이 차별없이 동등하게 대하셨을 뿐만아니라 전혀 거들먹거리지 않으신 것을 보았다. 그녀는 사부님이 일반적인 분이 아니라고 느꼈다. 권력이나 명예를 탐하지 않으시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똑같이 자비를 베푸시니 사부님이 너무 바르다고 느낀 그녀는 대법을 인정하게 되었다.
1994년 여름, 내가 아마 시 단체 연공장을 찾았을 때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치 운동장의 작은 부분만 차지한 듯했지만, 매주 인원이 늘어났고, 증가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운동장은 가득 찼고, 곧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주변 공터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내가 본 중경 동수들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근하고 따뜻했으며, 가족 같았다. 중경 생활이 매우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마치 내가 예전에 그곳에 살았던 것 같았고 익숙한 곳을 다시 찾은 것 같았다.
(2) 학교에서 단체 법학습과 연공
당시에는 책이 아주 드물었다. 사천 외국어 대학 동수에게 《전법륜》 한 권을 청해 일주일에 한 번씩 단체 법학습을 했다. 미성년 남자 한 명, 중경 철강 회사에 다니던 여자 한 명, 그리고 우리 동창 몇 명이 함께 법을 공부했다. 모두가 이 법공부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한 번 배우고 나자 마치 완전히 환골탈태한 것처럼, 변화가 아주 컸다.
어느 날 법학 학습장 입구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넘어져 거의 곤두박질칠 뻔했다. 그때 어떤 힘이 나를 즉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천 외국어 대학교 근처에서 한 곳을 골라 단체 연공을 했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연공하고 홍법(洪法)하기에 좋은 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한번은 소업하느라 열이 많이 났지만, 그래도 나갔다. 수련하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머리 위에서 태양 같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발끝까지 따뜻함이 전해지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 몸이 아주 좋아졌다.
(3) 대법이 중경에서 널리 전해진 일부 이야기
1995년, 모두 홍법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경 여러 현시(縣市)에서 수십만 명이 법을 얻었다고 들었다.
우리는 중경 장안(長安) 자동차 공장에 갔다. 당시 막수금(莫水金) 아주머니는 원래 공장장 사무실의 전(前) 주임으로 보였는데 그녀의 안배하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큰 회의장이나 활동 센터에 모여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시청했다. 그녀의 집은 1층에 있었는데, 늘 그녀의 집을 찾는 동수들이 있었다. 대법이 널리 전해기는 기간에, 그녀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했다.
우리는 천동(川東) 석유 공장에 갔다. 그곳의 법 공부 및 연공장은 회사에서 제공한 거대한 활동 센터였고 바닥에는 가부좌용 방석(집에 가져가지 않음)이 깔려 있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대법과 대법제자들을 얼마나 지지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또 강당 같은 곳에 가서 한 차례 법회를 연 적이 있는데, 사람이 아주 많았다. 한 노부인이 법회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가다가 강에 추락해 둘 다 사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몹시 비통해서 그야말로 살고 싶지 않았지만 얼마 후 슬픔을 극복하고 수련을 계속했고 오늘 법회에 참석하러 왔다고 했다.(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음).
이 일은 아마 나중에 참고가 되는데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명리정(名利情)’이라 정을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4) 학교에서 홍법
우리는 또 연분 있는 사람들을 구도하기 위해 학교에서도 홍법하고자 했다. 당시 중경 건축 대학의 한 교수님이 우리에게 작고 한가한 식당을 찾아주셨다. 깨끗했고 테이블과 의자도 많았고 전기도 들어왔다.
우리는 즉시 포스터를 만들어 눈에 잘 띄는 곳에 게시했다. 무료로 사부님의 설법과 교공 비디오를 배우는 학습반을 여는 시간과 장소를 적었다. 우리는 또 사천 외국어 대학에 다니는 한 동수 집에서 대형 TV를 가져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왔다. 어떤 교수님은 사부님이 직접 설법하시는 줄 알고 왔는데 사부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아주 진지하게 설법을 들었고 다들 법에 녹아들었다. 대다수가 법에 입문했고 이후 수련도 아주 견정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악한 당의 박해를 여러 차례 받았는데 노동 수용소 박해를 포함한다. 어떤 분들은 지금 다 80, 90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오만함과 남보다 뛰어나다는 집착을 드러냈다.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이 어떻게 능력이 있다고 여기면서 천진 동수들을 무시했다. 사천 외국어 대학의 나이 많은 동수가 내게 하늘의 공을 탐내지 말라면서, 모든 것은 대법의 안배와 위덕이며, 우리는 단지 사람들 사이에서 표현하고 수련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깨워 주었다. 모든 것은 다 사부님께서 안배하고 주신 것이다.
(5) 법 공부 및 연공 장소 설립
이후, 우리는 한 차례 수련심득교류회를 개최했고 일부 동수들이 자신의 일부 체험을 말했다. 교수 동수가 계단식 큰 강의실을 빌렸고, 학교 사상 주관 교수가 앞줄에서 기록했다. 교류회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며칠 만에 이 교육 건물 밖 ‘인초정(寅初亭)’ 밖에 대규모 단체 연공장이 마련되었고, 법 공부 장소도 잇따라 건립되었다. 대법은 또 주변 대학에도 널리 전파되었다.
이 모든 것에는 사부님의 수많은 심혈이 녹아 있다. 사부님의 자비롭고 널리 제도하심에 감사드린다. 1999년 박해 이전 수련 심태를 회상하며 대법제자는 마땅히 사부님과 대법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며, 항고(恒古)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더는 오지 않을 유일한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며, 처음 수련하는 심태를 잃지 말고, 나태하지 말고, 용맹정진해서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야 한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5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