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수련은 안으로 찾아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찾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때로 우리는 집착을 지니고 안으로 찾는데 결국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안으로 찾음은 바로 자신에게 명리심(名利心), 과시심(顯示心), 색심(色心) 등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 무더기 찾아내도 여전히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이 아직 원만하기 전이라면 누구나 이런 사람 마음이 어느 정도는 다 있다. 다만 대부분은 미약한 염두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 속에서 수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역시 정상적인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할 집착심은 사실 우리가 예전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그런 염두들인데, 심지어 좋고 정확하다고 여겼던 그런 염두들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우주(新宇宙)의 법리에 부합하지 않고 우주 특성에서 벗어난 관념이다.
예전의 신(神)이 자신을 바로잡지 못한 한 가지 원인은 천상(天上)에는 수련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 원인은 스스로 그것이 잘못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이 좋은 일이며 심지어 자비로운 염두라고 여겼다.
예전에 나는 사장님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태도를 보이면, 즉시 안으로 찾곤 했다. 자신에게 과시심이나 명리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구세력의 교란이 아닌 등등. 사실 이건 지나치게 소심한 것이 아니었을까? 좀 더 대범한 것이 좋지 않을까? 좀 더 담담하게 보면, 아마 사장님은 단지 기분이 좋지 않았을 뿐이고 우리와 무관할 수도 있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그것을 크다고 느낄수록 그것은 더욱 높고 크게 변하며 당신은 더욱 작아진다. 당신이 그것을 개의치 않고 마음에 두지 않으며 ‘청산(青山)을 남겨 두었거니 땔나무 없을까 봐 걱정이랴,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 그것을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내려놓기만 하면 당신의 난(難)은 작게 변하고, 당신은 크게 변해 한걸음에 넘길 수 있게 되는바, 그 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보증하고 이러하다.”(《시드니 법회 설법》)
상사가 두어 마디 했으면 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지나가라. 왜 구태여 마음에 두는가? 스스로 내려놓으면, 아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상사가 고의로, 늘 이렇게 한다면, 그건 아마 자신의 집착심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 아주 사소한 일에도 안으로 찾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는 것도 집착심이다. 이것이 아마 자신의 진정한 집착이 있는 곳일 것이다.
사존께서는 알려주셨다.
“우리 사람은 살아서는 삶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생활환경 역시 사람이 생활하는 데에 적합해야 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령(生靈)을 해쳐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또한 이런 작은 일에 너무 얽매여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채소와 심은 양식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인데, 우리는 또 그것이 생명이 있다고 해서 먹지 않고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즉, 그러면 또 무슨 공을 연마(煉)하겠는가? 마땅히 대범해야 한다.”(《전법륜》〈제7강〉)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사람 마음이 존재한다. 어떤 염두는 정상적인 것으로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상태다.
문제가 생기면 내면을 찾지만 흔히 자신의 문제 자체가 바로 답이다. 만약 진정으로 찾았다면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의 감수가 있거나, 환골탈태하는 듯한 상쾌함이 있으며, 일종 ‘그 사람이 등불 희미한 곳에 서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은 그런 명리심과는 다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5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