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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아가 새 삶을 얻다

흑룡강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노(老)대법제자로, 올해 예순여덟 살이다. 내 전반생은 인생의 고해 속에서 괴롭게 발버둥 쳤고, 생명은 잿빛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하루도 좋은 날이 없었고, 온갖 병을 다 앓았다. 사부님의 대법이 나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고, 다시 창조해 주었으며, 나에게 광명과 희망을 주어,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을 걷게 해 주셨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내가 겪은 일을 써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동시에 동수들과 공유하며 함께 정진하고자 한다.

1. 고난의 세월

나는 7개월 만에 태어난 조산아로,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으며, 영양실조였고, 머리에는 종기까지 났고 울음소리도 아주 작았다. 외삼촌이 중의사셨는데, 어머니에게 말했다. “누님, 아이를 치료하지 마세요. 만약 치료한다 해도 스무 살 남짓 살 수 있을 겁니다.”

어머니는 나를 포기할 수 없어 계속 치료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매일 머리가 멍했고, 기관지염 때문에 매일 기침을 했다. 학교 다닐 때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진지하게 공부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더러 둔재라고 했다. 나중에 지식 청년 하향 운동에 따라 나도 시골에서 1년을 보냈다. 1977년 대학 입시가 부활했을 때, 나는 시험에 응시했고, 친척의 도움으로 성(省) 재정경제 전문대학에 합격했다.

졸업 후, 나는 직장에서 회계 업무를 맡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가졌지만, 나는 매일 머리가 아팠고, 자율신경 실조증, 인후염, 기관지염, 부정맥, 신장염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았으며, 서른 살이 넘어서도 어깨가 굽어 있었다. 위장병 때문에 차갑거나 뜨겁거나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자궁 근종도 매우 심각해 종양 병원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 의사는 근종이 달걀 노른자 크기이니 당장 잘라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질병으로 인해 몸이 매우 허약했기 때문에, 수술을 감당할 수 없을까 봐 의사에게 보존적 치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는 일단 약을 처방해 줄 테니, 보존 치료를 6개월 한 후에 다시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월급이 400위안 남짓이었는데, 1년 약값이 800위안 넘게 들었다. 나는 병원에서 약 10상자를 샀는데, 한 상자에 300위안으로 총 3,000위안이었다. 집에 돌아와 일주일에 한 상자씩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 외에도 얼굴, 목, 손에 농포진이 있었는데, 병원 검사 결과 신경 문제로 인한 피부병이라고 했다. 직장 동료들은 피부암일까 봐 내 컵이나 물건들을 만지려 하지 않았다. 목욕탕에서 피부가 검은 것을 보고 나 자신도 매우 자괴감에 빠지고 괴로웠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몇 가지 기공도 배웠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나는 매우 억눌린 채 살았고, 비극적인 운명에 한탄하며 삶의 희망이 없었다.

2. 환골탈태(換骨奪胎)

내가 근심과 괴로움으로 출구가 없을 때, 여동생이 우리 집에 왔다. 여동생은 대법을 수련하라고 했고, 대법은 매우 신기하다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한 후 모든 병이 사라졌다고 했다. 스물다섯 살에 앓던 기관지염도 이제 나았고, 주름으로 가득했던 얼굴도 주름이 없어졌으며, 예전에는 걷지 못해 매일 평상에 앉아 있었고, 모든 집안일은 시아버지가 하셨다고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에는 하루에 칠팔 리를 걸어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신기할 수가 있나?”라고 말하며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정말 그런지 시어머니를 한번 뵈야겠다고 했다.

어느 날, 여동생이 시어머니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딴사람 같았다. 쉰이 넘은 사람인데도 정신이 충만하고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나는 기쁘게 말했다.

“사돈 어른, 어쩜 이렇게 좋아지셨어요! 이 대법은 정말 신기하네요! 저도 수련해야겠어요! 꼭 수련할 거예요!”

당시 그녀는 나에게 파룬궁의 1, 3, 4장 공법을 가르쳐 주었다. 공법을 배운 후 나는 침대에 뻗어버렸다. 당시 몸이 매우 허약해서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기분이 매우 좋았고 편안했다.

다음날 아침 5시가 조금 넘어 나는 연공 장소를 찾아 단체 연공에 참여했다. 셋째 날 연공을 마친 후, 나는 몸이 매우 편안하고 걷는 것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나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약을 버렸다. 나는 한마음으로 법을 배우고 연공했으며,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무슨 일이든 타인을 먼저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모든 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때 연공할 때, 나는 내가 매우 거대하고 하늘과 땅을 떠받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연공을 마치고 돌아올 때, 몸이 가볍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기뻤는지! 온몸에 힘이 넘쳐, 25kg짜리 기장쌀 자루를 힘들이지 않고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이때부터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고, 피부도 하얘졌으며, 굽었던 어깨도 펴졌고,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무슨 화장품을 발랐어? 피부가 희고 붉으며 윤기가 나네?” 나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고 말하며, 파룬궁을 수련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이 나를 변화시켜 탈태환골의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매일 기쁨에 넘쳤다. 직장 동료, 친척과 친구들 모두 나의 변화를 보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증명했다.

3. 풍운이 돌변

1999년 7월, 상황이 급변했다. 장쩌민 집단은 질투심 때문에 권력을 이용하여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대법을 모함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비방하고, 수련인들을 미친 듯이 박해했다. 나는 마음이 매우 답답했고, 직장에서도 면담을 요청했으며, 파출소에서도 나를 찾아왔다. 파출소 경찰에게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데 왜 탄압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온갖 병이 다 나은 사실을 그들에게 이야기했지만, 파출소 경찰은 사실을 무시하고, 네가 이런 말을 했으니 잡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몇 년 동안, 나는 직장에서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복사하다 부주의해서 직장 동료에게 발각되어 고발당했다. 나는 납치되어 구치소에 반년 가까이 불법 감금되었다. 당시 나는 쟁투심이 아주 강했고, 말투가 선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찰에게 “우리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들이니, 잘못이 없고, 누구도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나는 경찰에게 얻어 맞았다. 2001년, 나는 구치소에서 설을 보냈고, 그곳에서 간수들과 재소자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천안문 분신 자작극”의 거짓을 이야기했다. 간수들은 계속 이야기하면 풀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善)의 힘은 거대한 것으로 나는 내가 선(善)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나중에 안으로 찾아 내가 그들을 선심(善心)으로 대하지 않았고, 경찰을 구도 대상으로 보지 않고, 악인(惡人)으로, 적대적인 상대로 여겼음을 깨달았다. 그들 배후의 사악을 해결하지 못하고, 이 박해를 사람 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으로 여겼다. 진상을 알릴 때 말투가 불선(不善)했고 강압적이었으며, 선이 수련되어 나오지 않아 사악에게 틈을 탈 기회를 주었다. 나는 또한 두려워하는 마음, 환희심, 과시하려는 마음, 싸우려는 마음 등도 찾았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나는 수련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단지 표면적이고 감성적 인식에 머물렀으며, 이성적으로 대법에 대한 진정한 인식을 승화시키지 못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 생각하니 매우 부끄럽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세 차례 불법 납치를 당했는데, 모두 나 자신에게 사람 마음이 있고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 정말 면목이 없다! 중생에게 미안하다!

4. 정념으로 탈출

어느 해 겨울, 나는 한 노동수와 함께 아침에 함께 자료를 배포하러 가려고 했다. 그때 내 마음이 약간 불안했고,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껴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중생 구도를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함께 큰길을 걸어갔다. 한 상점 앞에 도착했을 때, 세 명의 경찰이 탄 국보(國保)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우리는 개의치 않고 《9평》을 꺼내 차에 나누어 주었다. 그때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경찰이 차를 몰아 우리를 가로막고 차에 태워 국보대로 끌고 갔다.

불법적인 심문에 직면해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묻는 말에 협조하지 않아 심문 기록을 작성할 수 없었다. 그러자 책임자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왜 그녀에게 물어, 물어봐도 말하지 않을 테니, 그냥 알아서 써.“

내가 웃자, 그가 “당신이 웃는 걸 보니 형을 살기에 충분해”라고 말했다. 기록을 담당하던 여자도 충분히 형을 살 만하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들이 말하는 것은 소용없고, 우리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나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대법 서적을 치우라고 했고, 나중에 경찰이 집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모두 제가 잘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들이 계속 죄를 짓게 할 수 없으니 저는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이때 나는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홍음 2》 〈정념정행〉)

나는 반드시 걸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내 머릿속에 이미지가 나타났는데, 세 사람이 오면 탈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오후 3시쯤, 동수의 자녀가 어머니를 보러 왔고,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와서 정확히 세 사람이었다. 나는 반드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공안국장은 이미 서명하여 우리를 구치소로 보낼 예정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해서 사악의 박해를 해체했고, 사부님께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지 않도록 청했다. 이때 나를 채웠던 수갑이 풀렸다. 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때 노동수의 딸이 경찰에게 “우리 엄마는 시장에 채소 사러 갔는데, 왜 당신들이 여기로 납치했느냐?”고 말했다.

경찰이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틈을 타서 탈출하면서 일념을 발했다.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지 못하게 하라.”

그들은 CCTV를 돌려봤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정념으로 탈출했다.

5. 타향을 전전하다

내가 탈출한 날은 금요일이었고, 동수들은 모두 자료를 받으러 갔다가 소식을 듣고 모두 발정념 강화했다. 내가 한 동수 집에 갔는데, 그 동수는 “어떻게 왔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탈출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 후 사부님의 법상 앞에서 절을 올리고, 제자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에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저녁에 동수의 남편이 돌아왔는데, 그는 수련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도시 전체가 수색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했다. 그는 나에게 1,000위안의 돈과 휴대폰 하나, 동수의 오리털 점퍼를 주면서, 나가서 숨어 있으라고 했다. 나도 그를 이해했다. 나는 다시 자료를 만드는 노동수 집으로 갔고, 그 곳에서 한달 7일을 머물렀다.

나중에 노동수는 나를 후란(역주: 흑룡강성 하얼빈 인근) 지역 동수 집으로 보냈다. 노부부는 모두 수련인으로 매우 선량했다. 집에는 방 두 칸이 있었는데, 서쪽 방은 아들과 며느리가 사용하고, 노부부는 동쪽 방의 작은 온돌방에 살아서 넓지 않았다. 마침 동수의 여동생이 왔는데, 나의 상황을 듣고 흔쾌히 “언니, 우리 집으로 가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집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나중에 나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 채소 재배, 요리 등 닥치는 대로 일했고, 전혀 고생스럽지 않았다. 후란에서 총 1년 반을 머물렀다. 이어서 나는 또 성도(省都 성 정부 소재지)에 가서 2년 반을 더 지냈고, 그곳에서 동수들이 자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매일 법 공부와 연공 외에는 중생 구도에 바빴고, 매우 충실함을 느꼈다.

6. 만물은 영(靈)이 있다

한번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사부님께 간청한 후, 아무 키나 눌렀는데 문이 열렸다. 정말 신기했다!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신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또 한 번은 내가 3층에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바닥에 개미가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너무 많아서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고, 두꺼운 층을 이루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쓰레받기로 세 번이나 쓸어 담아 밖으로 버릴 때, 만물에는 영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개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진상을 들으러 왔구나? 너희들은 꼭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기억하렴. 다 들었으면 이제 가거라, 여기는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야.”

이 말을 마치자 대부분의 개미가 사라졌고, 소수의 개미만 남아 있었다. 아마도 새로 온 개미들일 것이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9자 진언(九字真言)을 알려주며 꼭 기억하라고 했다. 사흘 후, 개미는 한 마리도 없었다.

셋방살이를 할 때 바퀴벌레도 많았다. 정말 하늘을 뒤덮을 듯했고, 침대, 창틀, 부엌, 화장실 등 어디에나 있었다. 집주인이 나에게 바퀴벌레 약 한 봉지를 주며 약으로 처리하라고 했다. 나는 만물에 영이 있다고 생각했고, 연공인은 살생할 수 없었다.

나는 바퀴벌레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대법제자가 사는 방이니, 너희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집주인이 너희들을 죽이라고 했지만, 나는 죽이지 않겠다. 너희들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기억하거라! 너희들에게 좋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가야 할 곳으로 가거라, 여기에 머물지 마라.” 그 결과 바퀴벌레는 모두 사라졌다.

나는 약을 집주인에게 돌려주며 바퀴벌레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놀라 바퀴벌레가 어떻게 없어졌는지 물었다. “몇 년 동안 우리가 아무리 없애려 해도 끝이 없었는데, 번식이 너무 빨랐어요. 무슨 방법으로 없앴어요?” 나는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집주인에게 만물에 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파룬궁 진상과 삼퇴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집주인은 이해하고 정확한 선택을 하여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7. 병업관을 넘다

한 번은 동수와 함께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 진상을 알리러 나갔는데, 정오에 갑자기 구토와 설사를 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고, 말을 할 수 없었으며, 몸이 차가워졌다. 동수에게 전화했더니, 동수가 와서 맥을 짚어보니 맥이 없었다. 동수는 나를 위해 매일 발정념을 해 주었다. 처음 보름 동안은 먹는 것을 모두 토했고, 나중에는 미음을 조금 마실 수 있었다.

나는 안으로 찾기를 할 줄 몰랐고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는 정념을 확고히 하고 사부님과 법을 믿었다. 나는 이는 병이 아니며, 근본적으로 병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생각하며, 매일 동수와 함께 법을 배우고, 연공하고, 발정념을 했다. 남편은 “괜찮아, 그녀는 관리하는 분이 계셔”라고 말했는데, 내게 사부님이 계시다는 뜻이다. 보름 후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나는 사부님께 말했다. “사부님, 제 한 몸을 사부님께 맡깁니다. 머물고 떠나는 것은 사부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나는 시종일관 이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았고, 병원에 가지 않았으며, 오직 대법 사부님만이 나를 구하실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어느 날 내가 앉아서 법을 공부하고 있는데, 등 뒤가 불편함을 느꼈다. 힘껏 몸을 한번 떨었더니, 무언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았고, 몸의 통증이 덜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걸을 수 없었고, 다리에 힘이 없었다. 어머니(동수)가 “우리 함께 걸어서 진상을 알리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나갈 때 어머니가 나를 부축했는데, 걷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나는 택시를 타자고 했다. 차에 탄 후, 나는 운전기사에게 진상을 알려주었고, 그는 기뻐하며 삼퇴를 했다. 그 후 우리는 여동생 집에 갔다가, 오후에 집에 돌아올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되었고, 완전히 좋아졌다. 이 대법은 이토록 신기하다! 나는 한 달 내내 나를 도와준 동수들에게 감사하고, 나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을지 모르는 자비로운 사부님께 더욱 감사한다! 또다시 나의 생명을 구해주셨다.

8. 온 가족이 수혜를 입다

내가 파룬대법을 수련한 이후로, 나뿐만 아니라 우리 온 가족도 사부님의 광대한 은혜 속에 잠겨 많은 혜택을 받았다. 두 가지 예만 들겠다.

(1) 시동생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다

몇 년 전, 시동생이 폐암에 걸려 병원에서 링거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고, 주사를 맞으면 피가 역류하여 집에 돌아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시동생에게 “도련님 연공하세요. 병원에서 고치지 못해도 대법은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동생이 말했다.

“형수님, 저는 곧 죽을 거예요. 저승사자가 잡으러 왔어요. 나흘 밤낮을 잠을 못 잤는데, 눈을 감으면 모자와 두건을 쓴 검은 옷을 입은 네 사람이 저를 잡으러 오는 것이 보여서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죽고 싶으세요, 아니면 살고 싶으세요? 살고 싶으시면 대법을 배우세요. 대법만이 구할 수 있어요.”

시동생은 저승사자가 자기를 데리러 왔으니, 책을 볼 수도 연공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대법을 배우고 싶으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실 거예요. 사부님은 무소불능이세요! 지금부터 연공을 시작하세요.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시동생은 그럼 좋다며 연공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럼 내가 매일 와서 함께 법을 배우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시동생과 나흘 동안 법을 배웠고, 그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7일째 그를 보러 갔을 때, 그는 25kg 물통을 7층까지 들고 올라갔다. 예전에는 밥그릇도 들지 못했는데, 7일 만에 1층에서 7층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나를 보자 울면서 말했다. “대법은 너무 신기해요. 사부님께서 너무 자비로우세요!”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2) 조카딸의 신장염이 사라지다

시동생의 딸 소령(小玲)이 신장염에 걸려 1년 동안 약을 먹었는데, 얼굴이 매우 검게 변했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시동생이 아이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왔고, 나는 아이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했다. 하루 종일 들었다. 다음 날, 시동생은 아이를 데리고 성도(省都 성 정부 소재지) 병원에 가서 나았는지 확인해 보자고 했다. 검사 결과, 의사는 아이의 병이 심각하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동생도 대법을 믿었기 때문에 의사에게 “입원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먼저 돌아가서 관찰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의사는 월요일에 전문가 진료가 있으니,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에게 진찰을 받아보라고 했다. 월요일에 시동생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청했다. “사부님, 이것은 모두 가상입니다! 그들은 모두 대법을 믿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검사 결과, 의사는 아이에게는 병이 없고, 편식 때문에 생긴 것이니 별일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조카딸에게 1위안 60전짜리 약을 처방해 주었고, 그들은 돌아왔다. 돌아온 후, 아무 병도 없이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20여 년의 풍파 속에서, 사부님께서 나를 고해에서 건져 올리고 깨끗하게 씻어 주셨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부여해 주셨다! 또한 나를 온 우주에서 가장 주목받고 운 좋은 대법제자로 만들어 주셨다! 제자가 무사히 오늘까지 오기까지,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자는 영원히 감사해도 부족합니다! 제자는 반드시 이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 말씀에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께서 구도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