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한번은 내가 큰 타격을 입었을 때의 일이다. 당일 동수가 내게 한 가지 일을 부탁했는데 그녀도 내가 큰 타격을 입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너무 괴로워서 울거나 누워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동수는 내가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대뜸 내가 빈둥거리려 한다며 한마디 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속으로 나는 이미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빈둥거릴 수 있겠느냐며 이것은 나에게 어려움을 더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억지로 자신을 참는 동시에 환희심의 실체는 비이지적이고 타인의 감수를 고려하지 않기에 마(魔)에게 이용당하기 쉽다는 점을 보았다.
이를 통해 나는 예전에 다른 동수가 채팅 앱으로 자신이 박해받았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회상할 때 내가 “하하”라고 답장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동수도 불편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자신의 심태가 “초연(超然)”하고 “박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미화했다. 나중에 진정으로 동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이 역시 환희심으로 인해 나타난 비정상적인 표현인데 환희심은 사실 일종의 마성(魔性)이다.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어느 연예인의 어머니가 막 세상을 떠났을 때 한 기자가 그 연예인을 인터뷰하며 대뜸 “괴로운가요?”라고 물었다. 그 연예인은 성격이 온화한 편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화를 내며 “당신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면 괴롭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사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앞에서 즐거워하거나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며 진심으로 동정하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이것이야말로 선(善)의 체현이다.
또 한 번은 친구 아들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없는 작은 부위가 있는 것을 보고 “애를 때렸어?”라고 물었다. 친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내 아들인데 내가 왜 때려?”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려버렸고 나는 민망해서 대답하지 못했다.
환희심에는 또 다른 표현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예전에 현대 조류의 영향으로 인터넷에서 저속하고 추한 이모티콘을 사용하거나 경박하고 유행하는 단어를 쓰고 일부러 남과 다르게 보이려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제정신이 들자 이런 것들이 매우 불순하며 대법제자는 결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 이모티콘을 모두 삭제하고 더는 좋지 않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파룬궁(法輪功)을 언급했다. 나는 당시 선생님께 진상을 알리고 싶었지만 평소 나의 행동이 괴상해서 좋은 작용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람들이 내가 파룬궁 수련생임을 안다면 이는 대법의 명예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진상을 알리는 것을 포기했다. 마음속으로 무척 후회했다. 만약 평소에 내가 바르게 행동했다면 어쩌면 그 선생님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환희심의 또 다른 큰 해악은 자신이 명백하게 수련하고 제고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한동안 환희심 때문에 사람 마음으로 법을 대하고 법에 대해 공경하지 않았으며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해 그 시간들을 헛되이 보냈다. 나중에 심태를 바로잡고 나서야 법 공부를 할 때 다시 끊임없이 새로운 깨달음과 수확이 있었다.
나는 예전에 환희심이 자비심이나 상화(祥和)한 심태와 비슷하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두 가지는 정반대다. 자비심은 이성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신성한 불성(佛性)인 반면 환희심은 무이성적이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모독하는 마성이다. 그러므로 동수들에게 반드시 환희심을 경계하고 자신의 언행을 잘 갈무리해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싶다. 그것은 수련인의 진각(眞覺)과 선념(善念)을 심각하게 가로막고 끊임없이 업을 짓게 하는 매우 좋지 않은 집착심이자 생명이므로 반드시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개인의 작은 체득을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