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은 제자로, 법을 얻고 수련한 지 27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줄곧 수련할 줄을 몰랐으며, 법에 대한 인식도 그저 감성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안으로 찾는 법리에 대해서도 매우 얕게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매일 명혜망과 정견망의 교류 문장을 대량으로 듣고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사부님께서 법에서 요구하시는 안으로 찾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매질과 욕설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성격은 매우 폭력적이었고 배운 것도 없으셨다. 중공 사당이 일으킨 문화혁명과 상산하향(上山下鄕) 때문에 아버지는 학교를 몇 년 다니지 못하셨다. 스스로도 자신을 무식한 사람이라고 하셨고, 자식 교육에 있어서도 그저 때리고 욕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아버지에 대해 두려움과 원한이 동시에 있었다. 어릴 때 성격 좋은 아버지를 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친구들의 아버지는 매우 온화하셨고 용돈도 주셨지만, 나는 그런 대우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마음속 압박감이 아주 컸는데, 언제 아버지가 화를 내실지, 혹은 맞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매우 무서웠고, 그로 인해 강한 반항 심리가 생겼다. 겉으로는 아버지에게 대들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아버지와 맞서며 아버지를 몹시 화나게 했다.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 말이 맞든 틀리든 나는 불복했고, 나 역시 늘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었다. 스스로 화를 가득 품고 살다 보니 몸도 매우 안 좋아져서 십수 년 동안 평생 먹을 약을 다 먹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은 법을 얻고 나서야 개선되었다. 법을 얻은 후 몸이 좋아져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고, 많은 도리를 깨달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인연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아마도 전생에 내가 아버지에게 이랬기 때문일 것이고, 이번에는 반대로 아버지가 나에게 갚는 것이니 모두 업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평온해졌다. 비록 수년 동안 아버지와 마찰이 있기도 했지만 다 지나간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부정확한 심리가 이제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나를 자극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 (《전법륜》 제4강) 아버지는 “네가 지금 네 사회보험료를 내는데, 현재 돈은 벌지도 못하면서 쓰고만 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이 한 마디에 평형을 이루지 못한 내 마음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나는 속으로 ‘내가 지금은 돈을 안 벌지만 전에는 벌었잖아요, 당신 돈 쓰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몹시 화가 났다. 발정념을 할 때도 중단되지 않았고, 머릿속은 온통 아버지에 대한 화로 가득 찼으며 어릴 적 일들까지 다 떠올랐다. 마음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 몹시 괴로웠는데, 이때 어머니 동수가 말했다.
“뭐 그만한 일로 그러니? 그게 무슨 대수라고. 네 아버지는 말하고 나면 끝이고 아무 일도 없단다.“
하지만 이 말에 내 마음은 더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어머니께 대들었다.
“엄마, 엄마가 뭘 알아요? 엄마 일이 아니니까 체감이 안 되는 거예요. 내 속은 지금 너무 괴롭다고요. 나도 발정념을 잘하고 싶지만 정말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왜 안으로 찾지 않는가?’
사실 나도 사부님께서 법에서 안으로 찾는 법리를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이해가 너무 얕아 법의 고층차 내함(內涵)을 알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제고하지 못하는 나를 보시고 분명 무척 애타 하셨을 텐데,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을 찾아야 할까? 그때 문득 명혜 라디오 교류에서 동수들이 일을 겪을 때 어떻게 수련했는지가 떠올랐다. 바로 그때 사부님께서는 내가 안으로 찾아 제고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 마음의 뿌리를 찾으라고 점화해 주셨다.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은 우선 ‘참음(忍)’을 해내지 못한 것이고, 그렇다면 ‘선(善)’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원한심이라는 것을 찾았고 계속해서 파내려 갔다. 원한심 뒤에는 어떤 마음이 있는가? 이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다시 점화해 주셨다. 평형을 이루지 못한 마음, 반항심, 부러워하는 마음, 질투심, 두려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좋지 않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고, 가장 근본적인 것은 구우주의 근본 속성인 ‘사(私)’, 즉 위사위아(爲私爲我)한 마음이었다. 여기까지 찾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게 아직 제거하지 못한 좋지 않은 마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제고하라고 안배해 주신 소중한 기회였다. 나는 반드시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했다. 문제가 나타난 이상 그것들을 모두 뿌리째 뽑아내어 근본적으로 이런 좋지 않은 것들을 모조리 없애리라(滅盡) 다짐했다.
이때 문득 나의 심성을 제고해 준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아버지께 감사드려야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이런 문제들이 존재하는지 정말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린다. 제자가 사부님을 심려하시게 했다. 바로 그때 《전법륜》을 보는데 문장 하나하나의 법리가 나에게 펼쳐졌다. 예전에 법을 볼 때는 그저 글자만 보았을 뿐 법의 내함을 보지 못했던 것이, 모두 내 심성이 법에서 제고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상은 최근 나의 짧은 수련 체득이다. 부당한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