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
【정견망】
6.
바깥 환경은 여전히 험악했지만, 중생을 구도하는 발걸음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 지칠 줄 모르고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였다. 낮에는 각자 속인의 업무와 집안일을 해냈고, 밤에는 법공부를 마친 뒤 두 명씩 조를 짜서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와 골목을 누비며 자료를 배포했다.
어느 날, 한 동수가 낮에 장터에 가서 자료를 전하자고 제안했다. 사악을 폭로하고 위협하며 박해를 저지하는 강도를 높여, 더 빠르고 좋게 중생을 구도하자는 목적이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중공 사당(邪黨)에 의해 이른바 파룬궁 중점 탄압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이는 수련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박해도 극도로 잔인했다. 당시 이미 두 명의 동수가 박해로 사망했고, 또 두 형제 동수 중 한 명은 창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매를 맞아 옷의 피가 몸과 달라붙어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가족들이 매질한 향 정부에 가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을 때, 동수는 들것에 실려 돌아와야 했다. 또한 구치소에 감금된 두 동수는 단식으로 항의한 지 수십 일이 지나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이런 참극이 매일 벌어지고 있었다. 대법제자들은 중생에게 진상을 알려 말겁(末劫) 때 도태되는 것을 면하게 하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었다.
나는 동수의 제안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동수들이 박해받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으며, 사악이 중생을 이용해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게 방치할 수도 없었다. 더욱이 중생이 대법제자에게 지은 죄 때문에 철저히 소멸당하게 하려는 사악의 음모를 무관심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도 참여하겠다고 말했고, 열 명 정도의 동수가 모였다. 우리는 이튿날 어느 마을 장날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기로 약속했다.
그 마을은 네 개의 대대로 구성된 큰 마을로, 읍이면서도 장터가 서는 곳이었다. 우리는 전날 밤에 배포할 자료를 준비하고 각자 책임질 거리를 나누었다.
이튿날 오전, 나는 평소 함께 법공부를 하던 L 동수와 한 조가 되어 자전거를 타고 갔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녀는 넓은 길의 동쪽을, 나는 서쪽을 맡아 배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둘은 순조롭게 거리 전체에 자료를 다 돌렸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묵묵히 기도했다. ‘자료를 보는 모든 중생이 구도 받을 기연을 소중히 여기기를. 진상을 깨달은 후 선한 마음을 간직하고 중공과 함께하지 않음으로써, 자신과 후손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남기기를.’
우리는 무사히 돌아왔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Z 동수가 마지막 자료를 배포하던 중 파출소 경찰에게 현장에서 납치되어 현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Z 동수의 남편 또한 수련인인데, 대법을 굳게 수련한다는 이유로 7년 형을 선고받고 하북(河北) 기중(冀中)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Z 동수마저 납치되니 집에는 일곱 살과 다섯 살 난 어린 두 딸만 남게 되었고, 이 가정에는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납치된 Z 동수는 전기봉 충격, 호랑이 의자(老虎凳), 잠 안 재우기, 독방 감금 등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다. 사악은 자료 배포에 참여한 다른 동수들을 불라고 강요했다. 고문을 이기지 못한 Z 동수는 평소 관을 넘는데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몇몇 동수를 말했는데,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에 동수는 매우 후회하고 부끄러워했다. 그녀는 풀려난 뒤 이렇게 말했다.
“제가 동수를 팔아먹었으니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면목이 없어요. 살고 싶지 않았지만 감방 안에 날카로운 도구가 없었죠. 그래서 실내 전구를 빼내고 전구 소켓에 손을 댔어요. 감방 사람들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고 그렇게 끝내고 싶었어요.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너무 죄스러웠으니까요. 그런데 손이 전기에 닿는 순간, 번쩍하는 전류가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고 정신이 좀 맑아졌어요. ‘내가 이렇게 죽는 것은 대법을 파괴하는 것이고 잘못 위에 잘못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 대법 서적에서 사부님은 자살이 죄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죠. 사부님께서 저를 죽지 않게 하시고 또 한 번 구해주신 거예요. 저는 회한에 젖어 바닥에 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날 동수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폭풍전야의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자료 배포에 참여한 동수들은 서로 연락하며 알렸다. 이런 상황일수록 반드시 법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고, 안으로 찾으며 두려움을 닦아버리고, 발정념을 많이 하여 사악이 틈을 타지 못하게 주의하자고 당부했다.
밤에는 잠시 자료를 돌리러 나가지 않았지만, 함께 모여 법공부하는 것은 변함없이 견지했다.
당시 외부 환경은 이미 극도로 험악했다. 대법제자를 잡기 위해 사악은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온종일 경찰차가 집 앞에서 요란하게 울려댔고, 한밤중에 경찰들이 담을 넘어 마당으로 뛰어들어와 비적이나 강도처럼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 수색하고 체포했다. 친척과 친구 집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내 시댁과 친정은 말할 것도 없이 24시간 감시 인원이 잠복해 있었고, 그 때문에 집안의 개가 밤새 짖어대는 바람에 이웃들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내가 사는 직장 숙소는 약 2만 제곱미터 정도의 아주 큰 부지였다. 내가 사는 곳은 부지 가장 깊숙한 곳이라 매우 은밀했다.
정문은 남쪽을 향해 국도와 접해 있었고, 도로 양옆으로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맞은편 건물에는 평소 법공부와 자료 배포를 함께 하던 L 동수가 살고 있었는데, 이번 체포 대상에는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로 남쪽에는 동수가 살고 북쪽에는 내가 있었다. 악인들은 24시간 감시하기 편하게 아예 맞은편 호텔에 머물며 언제든 체포할 준비를 했다. 경찰들은 수시로 동수의 집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내가 있는 쪽도 낮에 수시로 경찰들이 들어와 숙소 앞을 배회하며 나를 찾았지만, 끝내 내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날 밤, 남편이 당직을 서던 날이었다. 밤 9시경 내가 발정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숨을 헐떡이며 방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빨리 도망쳐! 도로 저쪽 트럭에서 형사대원 20여 명이 내려서 당신 잡으러 왔어. 절반은 L 동수 잡으러 가고 절반은 이쪽으로 오고 있어. 내 뒤를 따라오고 있으니 이제 시간이 없어! 빨리 피해!”
그는 머리에 땀이 가득했고 숨을 몰아쉬며 극도로 긴장해 있었다.
내 방 문은 열려 있었는데, 보니 10여 명의 사람이 전기봉과 길고 밝은 손전등을 들고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나와의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눈앞에 닥칠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당황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워 별다른 반응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문을 등지고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최근 우리 어떤 사람은 여기에 앉았다가 없어지며 잠시 후에 그는 또 나타나는데 곧 이러하며 더 큰 신통도 모두 나타날 수 있다.”(《전법륜》)
당시 마음속에는 오직 단순한 한 갖 염두뿐이었다.
‘사악은 나를 볼 수 없다. 나는 연공인이고 사부님이 관장하신다. 나쁜 사람에게 잡히지 않겠다.’
남편도 이때 진정되었는지 증오 섞인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한 악경이 숨을 헐떡이며 남편을 다그쳤다.
“도로에서 우리를 보고 왜 도망친 거야?”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당신이 안 뛰었으면 우리도 안 쫓았어. 당신 분명히 마누라한테 소식 전하러 온 거지? 마누라 분명 여기 있지? 말해, 마누라 어디 있어?”
“모르오!”
나중에 내가 물었다. “내가 분명히 문 앞에 서 있었는데 어떻게 ‘모른다’고 말이 나왔어요?”
남편은 “나도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냥 그놈들이 하자는 대로 하기 싫었고 그놈들이 미웠어!”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는 사부님이 그에게 주신 정보였을 것이며, 무의식중에 내뱉은 “모른다”는 말이 내가 보이지 않게 된 상황을 뒷받침해준 복선이 되었다.
경찰이 말했다. “몰라? 그걸 누가 믿어? 비켜, 들어가서 수색해! 잡아!”
경찰들은 남편을 밀치고 일제히 달려들어 손전등으로 방 안을 비췄다. 구석구석과 옷장까지 다 뒤진 뒤 내 얼굴 쪽을 비췄다. 손전등 빛이 내 얼굴에서 불과 30센티미터 거리였지만, 그들은 나를 전혀 보지 못했다.
나는 그곳에 조용히 등을 문에 대고 서 있었다. 당시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왜 나를 못 볼까?’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경찰들은 투덜거렸다. “왜 방에 사람이 없지? 이상하네. 남편이 다급하게 뛰어와서 알리는 꼴을 보니 없을 리가 없는데?” 그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때 나는 또 한 생각을 움직였다. ‘그들이 어서 가버리게 하자.’
그러자 그 경찰은 마치 지시라도 받은 듯 몸을 돌려 동료들에게 손짓했다.
“아무개는 여기 없어. 흩어져서 다른 데 찾아봐. 이 마당 밖으로 나갔을 리 없어.”
7~8명의 사람이 내 앞을 휙 지나쳐 나갔다. 나갈 때 누군가 나를 스치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고, 그들과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꼿꼿이 서 있던 남편은 경찰들이 나가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심장병 걸리겠어.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고. 이렇게 어떻게 살아! 여기도 더는 못 있겠어. 이사 가야지.”
나는 여전히 아까의 자세로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늘 제자를 보호하고 계시는구나. 이번에도 사부님께서 큰 난을 해소해 주셨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또 얼마나 감당하셨을까. 이 제자는 몸이 가루가 되어도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제도 은혜를 갚을 길이 없구나!’
남편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여전히 멍하니 서서 자신을 위로해 주지도 않자 화가 났다. 바닥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오더니 다짜고짜 주먹으로 나를 두 대 치고는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나를 놀라 죽게 할 작정이야? 피하라고 해도 안 피하고 멍하니 서 있다가 당신 잡혀가면 우리 집은 끝이야! 당신 때문에 돈은 돈대로 벌금 내고, 집은 두 번이나 뒤졌어. 위로는 80 넘은 노부가 누워 계시고 밑으로는 애들 둘 공부시켜야 하는데, 내가 이런 꼴을 볼 때마다 얼마나 겁나고 압박감이 심한지 알아? 심장병까지 생겼어.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이 살림을 어떡해? 나를 죽일 셈이야?!”
평소 남편은 말이 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한마디 말도 아끼던 사람이 오늘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을 보니 그가 받은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었다.
99년 7.20 이후 사악한 박해가 휘몰아치자 붉은 공포의 고압 속에서 우리 가정 환경도 180도 바뀌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냉대, 소외, 원망, 차별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악에 협조해 나를 감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천대받고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련인으로서 그들의 심태를 충분히 이해했고, 대법을 수련하는 내 마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수련인은 비록 잔인한 탄압과 박해를 받지만 우리는 신(神)의 길을 걷는 대법제자이며, 사부님의 보호와 확고한 신앙, 그리고 대법의 인도가 있기에 미래는 영원히 아름답고 밝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가졌는가? 수십 년간 이어진 중공의 폭정과 세뇌는 사람들의 기개를 꺾었고 신에 대한 신앙을 파괴했다. 공포, 미망, 무조, 무망 속에 신의 가호와 생명의 뿌리를 잃은 생명들이 무지함 속에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다. 공포와 이익, 중공의 연좌제에 겁을 먹고 양심을 속이며 가족을 박해하는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손실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그들은 폭정 아래 구차하게 연명하며 가장 고통스럽고 고단하게 살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비극적인 생명들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나를 아무리 모질게 대해도 원망하지 않는다.
원래 수련했던 부모님과 남동생은 세상의 집착을 놓지 못해 사악의 위세에 겁을 먹고 99년 7.20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수련을 포기했다. 내가 또 북경에 가서 대법의 공정함을 요구하다가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까 봐 모두 나와 인연을 끊었다.
가장 가깝던 가족들이 갑자기 남처럼 변했다. 박해 기간에는 오히려 사악에 가세해 나를 몰아붙였고 적극적으로 중공에 협조해 수련 포기를 강요했다.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이제 그만해라. 네 동생들 앞길 막지 마. 너 하나 수련한다고 집안 꼴이 이게 뭐냐? 경찰차는 맨날 문앞에서 울어대고 밤중에는 사람들이 담을 넘어 들어와 구석구석 뒤지며 너를 잡으러 오지 않니. 나랑 네 아빠는 매일 가슴 졸이다가 심장병까지 생겼다.”
내가 어릴 때부터 돌보며 아꼈던 두 남동생은 좋은 직장과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큰동생은 성(省) 대형 병원의 과장이고 작은동생은 세무국 국장이었다. 이 천지를 뒤덮는 박해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이익이 손상될까 봐, 내가 폐를 끼칠까 봐 나를 멀리했다. 마치 내가 홍수나 맹수, 혹은 불행을 몰고 오는 존재인 양 대했다. 올케는 대놓고 자기 집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공의 박해로 내가 갇히고 떠돌아다니던 몇 년 동안 두 동생은 안부조차 묻지 않았고 전화 한 통 없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해주었다. 내가 진상 자료를 전하다가 구치소에 갇혔을 때, 다른 동수들은 가족들이 요구한 돈을 낸 뒤 차례로 풀려났다. 우리 가족에게도 3,000위안을 내라고 협박했다. 구치소 측은 돈을 내면 풀어주고 안 내면 계속 가두겠다고 했다.
반복되는 연행과 가택 수색, 벌금으로 우리 집엔 남은 게 없었다. 남편의 월급은 생활비와 딸의 대학 등록금을 대기에도 벅차 나를 빼낼 돈이 없었다. 남편은 여기저기 빌려 겨우 2,500위안을 모았으나 500위안이 모자랐다. 그래서 국장인 작은동생에게 빌리러 갔다. 동생은 나를 구하려는 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단돈 1위안도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수련을 막지 못하자 남편을 부추겼다.
“내 딸이 또 말을 안 듣고 수련을 하거나 동수들을 만나고 베이징에 간다면 다리를 분질러버리게. 그래도 안 들으면 이혼하게. 딸이 안 가면 내가 자네랑 법원 가서 이혼 서류를 접수해줌세.”
어머니의 충동질과 박해로 인한 가정의 상처 때문에 남편의 원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마치 마귀가 들린 것처럼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 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일이었지만 미친 듯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결혼 생활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련하기 전 나는 기가 세고 독선적이어서 매일 남편을 무시했다. 하루라도 그를 괴롭히지 않으면 그가 고마워할 정도였고, 욕을 안 먹은 날에는 기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나는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진선인 표준으로 그를 아끼고 돌보는데 그는 나를 때린다. 호랑이가 힘을 안 쓰니 병든 고양이로 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어찌 연공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전법륜》) 참기로 했다. 내가 예전에 괴롭혔던 빚을 갚는 것이라 여기며 받아들였다.
한번은 그가 삽을 들고 내 등을 세게 내리쳤다. 삽자루가 두 동강 났지만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매질은 공안국이나 구치소에서 당한 고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칼산과 불길, 거센 풍랑을 헤치고 왔는데 집에서 고작 속인 한 명을 두려워하겠는가?
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은 믿을 것이 못 되며 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악의 압력과 권세 앞에서, 개인의 이익이 침해될 때 양심이나 천륜, 애정 따위는 비참할 정도로 나약하게 무너졌다. 이 세상에 사부님과 대법 말고 내가 미련을 둘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이 박해는 진정으로 인심과 인성을 시험하는 장이었다. 모든 사람이 이 박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미래를 선택하고 있었다.
남편은 폭력으로도 내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자, 이번에 사악의 방해를 다시 겪으면서 더는 견디기 싫다며 최후통첩을 했다. 이혼하든지, 아니면 수련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든지 택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양심에 손을 얹고 대답해봐요.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 뒤 어떻게 변했나요? 좋아졌나요, 나빠졌나요? 파룬궁이 정말 나쁜가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도 본래 수련을 반대한 건 아니야. 파룬궁이 좋고 당신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 수련한 기간은 짧지만 당신은 분명 변했어. 우리 집도 화목해졌지. 지난 2년간 당신은 집 안팎에서 정말 잘했어. 특히 우리 아버지께 지극정성으로 효도하고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수련 전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잘 모셨지. 아들인 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거야. 다 보고 있었고 마음속으로 고맙게 생각했어.
하지만 공산당이 너무 지독해. 우리 같은 백성을 짓밟는 건 개미 죽이는 것보다 쉬워. 당신들 사람 중에 매 맞아 죽은 그 둘 말이야, 집에는 80 넘은 노부모와 젖먹이 아기가 있어. 집안의 유일한 기둥인데 그렇게 죽었잖아.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살아? 누가 책임지냐고?
우리 집을 봐. 당신은 툭하면 납치되고 집 뒤지고 벌금 내고, 우리 집에 남은 게 있어? 값나가는 게 하나라도 있냐고? 이제 문밖에서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떨려. 경찰이 또 올까 봐 무서워 죽겠어. 이런 고문을 더는 못 견디겠어.
오늘 그들이 당신을 못 잡았지만 그냥 안 물러날 거야. 또 올 텐데 우리 집엔 더 못 있어. 직장에서 제일 숨겨진 숙소도 들켰는데 이제 어디로 가? 여긴 내 직장이고 전신 마비인 아버지도 계신데 어디로 가냐고? 나 진짜 못 버티겠어. 이러다 미칠 것 같아. 그러니 이혼하자.”
내가 물었다. “다 말했어요?”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내가 말했다. “이유를 다 말했으니 나도 덧붙일 건 없어요. 다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사악한 박해 때문에 무서워서 이혼하려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나요? 내 생활이나 행실이 나빠서 이혼하려는 거예요? 내 행동이나 품성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겠어요.”
그가 말했다. “아니, 당신은 다 잘해. 하지만 이 박해를 도저히 못 견디겠어. 살 수가 없어. 난 큰 욕심 없어. 부귀영화 필요 없고 그저 평범하고 안정되게 살고 싶을 뿐이야. 선택해. 수련을 계속하고 이혼하든지, 수련을 포기하고 잘 살든지.”
잠시 생각한 뒤 내가 말했다. “당신이 제안한 두 가지 조건, 모두 받아들일 수도 있고 모두 거절할 수도 있어요. 나는 가정도 지키고 파룬궁도 지킬 거예요. 이혼하지도 않을 것이고 파룬궁을 떠나지도 않을 거예요. 당신이 선량하고 힘들다는 것 잘 알아요. 이 풍파 속에서 당신이 많이 헌신하고 감내했죠.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해요. 이 고난은 파룬궁이 만든 게 아니에요. 진정한 원흉은 장쩌민과 중공 사당이에요. 공산당은 가(假), 악(惡), 투(鬪)를 가르치고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을 가르쳐요. 완전히 반대되는 가치관이죠. 모든 사람이 진선인을 행하고 도덕이 고상해지면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파룬궁이 너무나 바르기 때문에 모든 바르지 못한 것과 사악한 것들이 대법 앞에서 정체가 탄로나고 위장할 수 없게 되니 저들이 반대하는 거예요. 92년에 전해진 뒤 불과 7년 만에 1억 명 가까운 사람이 수련했고, 진정으로 수련하는 모든 이는 사부님을 존경하고 고마워해요. 사부님께서 경문 하나를 발표하시면 세계 어느 구석, 오지 마을이라도 사흘 안에 전 세계 제자들이 다 보는데, 장쩌민이 지시 하나 내리면 한 달이 지나도 현(縣) 단위까지 전달이 안 돼요. 그러니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이 유례없는 잔인한 박해는 오직 장쩌민의 질투 때문에 시작된 거예요.
이 무도한 박해 속에 당신도 무고하게 연루되어 고통받았죠. 다 알고 이해해요. 당신도 공산 사당과 대마두가 벌인 박해의 피해자예요. 하지만 당신의 인내와 헌신은 헛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선량함과 책임감,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해 머지않은 미래에 신께서 복을 주시고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주실 거예요. 하지만 지금 내가 너무 고통스럽고 더는 못 견디겠어서 꼭 이혼해야겠다면 직접 가서 하세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해서 이혼한다고 하면 내가 없어도 즉시 처리해줄 거예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뒤돌아 나갔다.
그날 밤 우리는 또 이사를 했다. 직장 부지의 동북쪽 끝에 있는 창고 근처, 외부인이 출입하지 않는 구석진 빈 집으로 옮겼다. 사무실에서 아주 멀고 직원들도 평소 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방 세 칸과 주방 하나가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수리가 안 된 낡은 집이었고 잡초가 무성했다. 하지만 내게는 몸 뉘일 곳 있고 비바람 피하며 수련하고 시아버지를 모실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남편이 당직을 서는 틈을 타서 동수 몇 명과 함께 간단히 짐을 옮겼다.
이튿날 아침 연공을 마치고 보니 남편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고 화가 풀리지 않은 기색이었다.
어젯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는데 아마 이혼 문제로 갈등했을 것이다. 일어나서도 나를 본체만체하더니 화난 표정으로 노려보고는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
그는 체면을 중시하고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어제 이혼을 선언했는데 내가 굽히지 않으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체면 때문에라도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접수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만두자, 더 생각하지 말고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 도리는 다 설명했으니 그가 굳이 이혼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바로 업력윤보(業力輪報)다. 당신이 그에게 빚을 졌으면 그는 당신을 찾아와서 빚을 받아 갈 것이며, 더 많이 받아 가면 다음번에 그가 다시 당신에게 갚아준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여기 속인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 일부 사람은 바로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전법륜》)
그렇다. 내게 금생은 세상에서의 마지막 한 차례 윤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원정구(恩怨情仇 은혜 원한 사랑 원수)도 결국 철저히 계산하고 매듭지어야 한다. 그 시기가 며칠 앞당겨진 것뿐이다.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떠나고 배신해도 상관없다. 내 곁에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나는 부부의 정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내려놓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점심때가 되어 요리하려는데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왔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얼굴색이 좀 밝아졌네? 이혼 서류를 다 접수해서 그런가? 이제 주머니에서 증서를 꺼내 내 얼굴에 던지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웃으며 물었다.
“점심에 뭐 먹을까? 만두 빚어줄까? 내가 할게.”
남편은 요리 솜씨가 아주 좋다.
그의 태도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180도 바뀌어 있었다. 나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만두 빚어요.”
그 뒤로 그는 다시는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불러 모아 내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당신들도 대법 서적을 보았고 수련했던 분들도 있어요. 양심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세요. 파룬따파가 좋습니까, 아닙니까? 바릅니까, 아닙니까? 당신들이 더 잘 알 거예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잘못인가요? 진선인이 죄인가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며 집에서나 밖에서나 진선인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어요. 헌법이나 법률을 어긴 적이 없어요. 오히려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되려 했죠.
속담에 ‘한방울 물만큼의 은혜도 샘물로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법과 사부님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주셨고 생생세세의 업력을 씻어주셨으며 건강한 몸을 주셨어요. 하늘로 돌아가는 대법을 가르쳐주시고 사다리를 놓아주셨죠. 이 거대한 불은(佛恩)은 우리가 이번 생에 목숨을 바쳐도 다 갚지 못합니다. 대법과 사부님이 무고하게 공격받고 박해받을 때, 그 혜택을 입은 제자로서 북경에 가서 공정한 말 한마디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범죄자가 되고, 맞아 죽고, 노동교양을 받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집이 풍비박산 나야 합니까? 누가 정(正)이고 사(邪)인지, 누가 선(善)이고 악(惡)인지 자명하지 않습니까?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진선인을 행하는 사람을 탄압하는 것은 중공이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장쩌민 집단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善)을 타격하는 것은 틀림없이 사악한 것이기 때문이다.'(《정진요지 2》 〈이성〉) 당신들이 개인의 이익 때문에 수련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박해가 두려워 나서지 못하는 것도 뭐라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정과 사, 선과 악 앞에서 분별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주는 말법(末法) 말겁 시기에 이르렀고 인류에게 큰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많은 생명이 도태되고 소멸할 것입니다. 대법이 이 시기에 널리 전해지는 것은 창세주께서 우주와 중공을 구하러 오신 것이며,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신(神)의 사자들입니다. 그러니 수련 여부는 스스로 결정하세요. 나는 권고만 할 뿐 간섭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들도 내가 수련하는 것을 교란해선 안 됩니다!
사악의 편에 서서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사악을 돕는 것은 천 번 죽어도 마땅할 죄악이며 결국 지옥에서 소멸할 일입니다. 부디 심사숙고하여 처신하십시오.”
내 말이 끝나자 가족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2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