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중생(重生)
【정견망】
최근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공부하며 수련(修煉)이라는 단어에 대해 얕은 깨달음을 얻게 되어, 이를 써서 동수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1. 사부님의 법이 나의 미망을 깨뜨려 주시다
과거에 나는 수련이라는 단어를 감성적인 인식에만 국한해 왔다.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이 곧 수련이라고 편협하게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이란, 바로 생명을 성취하는 것이다.”(《2018년 워싱턴 DC 설법》)라는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 수련이 생명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이 얼마나 큰 일인가. 이 일을 잘 해내지 못하고서야 되겠는가?
특히 사부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 오늘날의 인류사회를 가벼이 보지 말라. 대법제자만 수련하는 게 아니라, 사람도 모두 그중에 있다. 그들도 용련(熔煉)되고 있다. 생활 중에서, 생업 중에서, 부동한 환경 중에서, 그들이 마주친 문제, 생각하는 사고(思考), 줄곧 그들의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기의 위치를 정하고, 모두 선과 악의 대결 중에서 자기의 위치를 정한다.” (《2018년 워싱턴 DC 설법》)
체계적인 법공부를 통해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사회의 사람들이 모두 간단치 않음을 진정으로 체득했다. 그들이 갖가지 사회 환경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며 겉으로는 한가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도, 사실은 모두 우리 대법제자의 수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모두 대법제자를 성취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제고하겠는가?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복잡한 수련 환경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복잡한 역사적 대사에 의해 용련되고 있다. 생활, 업무, 가정의 각 환경에서 그들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정(正)과 사(邪)의 사고 속에서, 그리고 행위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남편이 이를 잘 설명해 주는 사례다. 남편은 수련하지는 않지만 대법을 매우 인정한다. 사부님의 경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매 편 진지하게 읽는다. 사부님의 신판 《논어》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정도다. 정공(靜功) 연마는 좋아하지 않지만, 제1, 3, 4장 동공(動功)은 자주 연마한다.
그의 신체 또한 매우 특별하다. 내가 수련한 20여 년 동안 나와 함께 있는 날에는 기본적으로 약을 먹은 적이 없다. 때로는 신체검사에서 혈당이 속인의 두 배가 넘거나 고혈압, 고지혈증, 높은 간 수치 등 아주 심각한 병 증세가 나타나도 그는 전혀 겁내지 않았다. 약도 먹지 않고 음식 조절만 조금 했을 뿐인데 몇 달 만에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약을 먹지 않고도 여러 질병이 금방 나은 것은, 바로 이 속인이 대법을 믿기에 사부님께서 그의 신체를 정화해 주셔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정말로 오늘날 사회의 사람들은 모두 간단치 않으며 그들도 모두 그 속에 있다. 오늘날의 세인들을 얕보지 말고 기회를 잡아 그들을 구도해야 한다. 사부님의 법이 나의 미망을 깨뜨려 주셨다.
2. 진짜 수련은 자신의 그 마음을 닦는 것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는 것은 정진하는 동수들에게는 이미 돌파한 문제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예전에 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수련 후에도 이런 우월감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해졌다. 이는 아마도 나의 30여 년 교직 생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하고 자아가 강렬하여 남이 나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속인 중에 형성된 자부심과 사당(邪黨) 문화의 독해로 인해 무슨 일이든 최고로 잘해야 하고 극치에 달해야 하며, 일을 함에 있어 극단으로 치닫는 습관이 생겼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을 얕보는 강렬한 마음이 생겨났다.
과거에는 보통 누가 나를 지적해도 아예 안중에 두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했고, 나를 관리하려는 사람을 더욱 얕보았다. 그래서 친척과 친구들 사이에서 다들 나를 경원시하며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동수들 사이에서도 내 면전에서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로 인해 나의 사람마음(人心)은 점점 팽창했고, 더욱 제멋대로 행동하며 자주 극단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때로는 완전히 대법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수련 20여 년 동안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하면서 때로 큰 교란이 나타났고, 사악에게 허점을 찔린 적도 몇 번 있었다.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아래 아슬아슬하게 넘길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이란 바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이라, 맞든지 맞지 않든지 모두 자신에서 찾아야 하며, 닦음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라고 가르쳐주셨다.
또한 “수련은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고 자신을 닦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모순이 있을 때, 곤란과 불공평한 대우가 있을 때 여전히 자신을 찾아 안을 향해 볼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수련으로, 비로소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고, 비로소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으며, 비로소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대만법회에 보내는 축사〉)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법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수련은 바로 자신을 닦는 것이며, 진정으로 수련하려면 집착하여 내려놓지 못하는 그 사람마음을 닦아 없애야 한다. 하지만 나는 27년의 수련 기간 동안 진정으로 자신을 닦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오로지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으며 아울러 원만하는 수단 ― 연공(煉功)을 하여 확실하게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변하면 心性(씬씽)이 제고되고 층차가 제고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다.”(《정진요지》 〈무엇이 수련인가〉)라고 가르쳐주셨다.
또한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닦아야 하고, 안으로 닦아야 하며,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전법륜》)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이 부딪힌 일체의 번거로움을 당신들은 모두 그것을 수련으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필경 수련이기 때문이다.” (《스위스법회 설법》)라고도 하셨다.
사실 수련인은 자신을 닦는 것 외에 다른 모든 근심은 ‘기우’에 불과하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번거로움에 부딪혀도 당신은 모두 자신이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이 마음에서 찾는다면 바로 수련이다.”(《뉴질랜드법회 설법》)라고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나는 이토록 큰 문제에서 법과 상반되게 걸어왔고,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을 닦지 못했다. 두 눈은 밖을 향해 보았고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27년 수련 동안 변화가 크지 않았고, 수련인의 큰 자비심을 닦아내지 못했으며, 사부님께서 대법에서 말씀하신 신적(神跡)도 나타내지 못했고 대법의 아름다움도 잘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에 내가 집착했던 누가 맞고 틀린지, 누가 좋고 나쁜지에 대한 관념은 모두 사람마음이며 사람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신(神)이 원하는 것이 아닌데, 한 신의 마음은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다. 온 우주가 법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법은 전 인류의 것인데, 누가 어떠한지 걱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과거에 나는 어느 동수가 뒤처질까 봐, 어느 동수의 법공부 상태가 좋지 않을까 봐 자주 걱정했다. 그러나 지금 법에 비추어 보면 그런 것들은 모두 가상이며,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는 것이다. 만약 법으로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안배가 아니겠는가? 동수마다 사부님께서 관장하시는데 내가 기우를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그게 다 자신을 닦는 환경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많은 우려가 있었는가? 이 모두가 사람마음이 아닌가?
결국 수련은 자신을 닦는 것이고 바로 그 사람마음을 닦는 것이다. 자신을 잘 닦아야만 사부님께서 당부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 자신을 잘 닦지 못하면 사부님께 번거로움을 드리고 사부님을 더 마음 쓰시게 할 뿐이다.
3.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착각
사부님의 《2019년 뉴욕법회 설법》을 공부할 때 다음 단락을 읽었다. “당신이 한 일 자체가 수련은 아니다. 당신이 회사를 꾸리든 당신 대법의 항목이든 당신이 무엇을 하든, 이 자체는 수련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하는 태도,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대법제자 수련인의 표준으로 그것을 대하고 그것을 잘 처리해야 하는데, 이것이 수련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람은 무명(無明) 중에서 수련하기에, 자신이 수련한 것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도 모르는데, 바로 이렇게 해 내려가야 하는 것으로, 최후 원만에 이른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실 당신들이 각종 업종 중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잘한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하고 있다.”(《각지 설법 8》 〈2007년 뉴욕법회 설법〉)라고 하셨고, “바로 이렇게 잘 넘기거나, 잘 넘기지 못하여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싱가포르법회 설법》)라고 가르쳐주셨다.
사부님의 이 설법들을 공부하고 나서야 나는 활연히 크게 깨달았다. 수련 27년 동안 나는 줄곧 내가 수련을 꽤 잘하고 있다고 여겨왔다. 대법의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수련이라고 여겼는데, 이는 일 자체는 수련이 아니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과 정반대였다.
과거에 교류 원고를 쓰거나 동수들과 교류할 때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진상 자료를 얼마나 배포했고, 진상 스티커를 얼마나 붙였으며, 진상 자료와 진상 화폐를 얼마나 인쇄했고, 얼마나 많은 세인을 삼퇴(三退)시켰는지 등이었다. 이런 법을 실증하는 일들을 말할 때마다 늘 우쭐해하며 대법의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대법의 일을 감히 하지 못하는 동수들을 얕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자신을 반성할 때면 수련의 길에 무언가 막혀 있는 것 같고 제고가 빠르지 않다고 느꼈다. 특히 심성 제고 면에서 빠르지 않았기에 수련 상태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반복되며 안정적이지 못했다. 여러 방면에서 변화도 크지 않았다. 어떤 집착심들은 반복해서 생겨나는데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사부님의 설법 공부를 통해 나는 미망(迷茫)을 타파했다. 수련한 지 27년이 되었고 사부님께서 이 정도로 명확히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왜 여전히 잘하지 못했는가? 이제야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여전히 사부님의 법을 진정으로 잘 공부하지 못했고,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착각하여 마음을 일하는 데 중점적으로 썼고, 일하는 과정에서 사람마음을 닦아 없애는 것을 주된 것으로 삼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일을 해왔음에도 자신의 집착심은 아주 느리게 제거되었고, 당연히 제고도 매우 느렸다. 결국 수련할 줄 몰랐고 대법 수련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 말세의 도덕이 타락한 상황에서 수련하려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며 깨달았다. 일은 일일 뿐 대법 수련이 아니다. 우리 중 누구도 속인 중의 그 역할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속인 중에서 우리는 그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아이를 훈육하며 친척, 친구, 이웃 간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 속인 중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하여 속인의 일을 잘 해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일조차 잘하지 못한다면 속인 중에서 좋은 사람조차 되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수련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잘 닦아야 한다. 심성을 닦아야만 층차를 높일 수 있으며, 반드시 하나하나의 사람마음부터 닦아야 한다. 자신을 잘 닦아야만 사부님께서 분부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 대법 항목 자체는 수련이 아니며 대법에 원래 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구체적인 항목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할 수 있고 제고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람마음과 집착을 닦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인식하고 나니 사부님을 너무나 실망시켜 드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좋은 대법을 얻었고 이토록 훌륭한 사부님이 계시는데 어찌 이리도 못났는가? 하지만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의 수련을 진지하게 대하고 마음을 닦아 집착을 제거하며 더욱 정진해야 한다.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자신을 잘 닦고, 진정으로 심성에서 자신을 제고하여 초상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최근의 짧은 법공부 체득이니,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6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