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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수련은 내가 가야 할 유일한 수련의 길

중생(重生)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내 생각에, 대법제자 당신들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 뿐이며 다른 길이 없다.”(《각지 설법 11》 〈무엇이 대법제자인가〉)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가르쳐주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
(《홍음》 〈착실한 수련〉)

사부님의 설법에 대조하여 나의 27년 수련 과정을 살펴보니, 실수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아주 많았다. 최근 정성껏 법을 베끼고[抄法] 외우며[背法] 안으로 찾은 결과 많은 집착을 찾아냈기에, 오늘 이를 써서 폭로하고 닦아버리고자 한다.

1. 속인의 정(情)을 내려놓지 못하다

사부님께서는 “수련하는 사람, 당신이 이 정을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이 한 일체는 모두 사람의 행위이다.”(《오스트레일리아 설법》)라고 가르치셨다. 하지만 나는 수련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속인의 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딸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줄곧 매우 고달프고 힘들게 수련해 왔다. 딸은 자주 나의 수련에 번거로움을 만들어냈는데, 나는 이것이 구세력(舊勢力)이 인간 세상 혈연의 정을 이용해 나를 박해하는 것임을 간파하지 못했다. 무의식중에 구세력의 계략에 넘어가 가상(假相)을 진상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정을 품고 대법의 일을 하니 사부님 말씀처럼 모두 사람의 행위였다. 중생에게 수련인의 자비심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진상을 알리는 것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때로는 딸이 내가 사람 구하는 일을 하는 것을 알까 봐 몰래 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세인들이 잘 받아들이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상황이 변하곤 했다. 사실은 내가 집착심을 품고 신성한 일을 했기 때문에 완전히 사람을 구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의 수련인은 시작부터 육친 정(親情)을 철저히 끊어 부모조차 아는 척하지 않았다. 오늘날 대법제자는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므로 육친 정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지만, 수련한 지 이토록 오래되었으면 마땅히 육친 정을 담담히 보고, 더 담담히 보아야 한다. 만약 친정에 여전히 집착한다면 그것은 사람에게서 걸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 〈싱가포르 불학회 설립식 설법〉에서 “수련은 실질상 바로 사람의 상태에서 벗어나오는 것으로 정에 이끌리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고, 수련 중에서 정을 점차적으로 담담히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로써 점차적으로 자신을 제고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 중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다면 우리의 수련은 모두 제로와 같으며 여전히 속인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닦음에 반드시 인간 세상의 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2. 사람의 관념을 반드시 바꿔야

나는 관념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수련 전에는 아주 강압적인 성격이었고, 수련 후 비록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많은 구(舊) 관념이 남아 있다. 또한 자주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고 늘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과 지낼 때 항상 예상치 못한 모순이 나타나곤 한다. 이 사람마음(人心)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정말이지 내가 누구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왜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는가이다. 사람마다 자기 인생의 길이 있고,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이 있다. 하지만 나는 늘 ‘이건 그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곤 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강요다. 수련하고 안 하고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지 남이 강요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관념을 바꾸어 자신을 닦고, 안으로 닦으며, 남에게 강요하는 마음을 닦아버려야 한다. 자비로운 마음을 닦아내어 사람의 강압적인 태도를 평화로움으로 바꾸고,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을 변화시켜 진정한 수련인이 되어야 한다.

3.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기다

27년 수련 중 이전에는 대법의 일을 많이 하는 동수를 보면 부지불식간에 따라 배우며, 대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에만 집착했다. 예를 들어 진상 자료를 얼마나 배포했는지, 스티커를 얼마나 붙였는지, 삼퇴(三退)를 몇 명 시켰는지, 진상 지폐를 얼마나 썼는지, 동수를 어떻게 도왔는지 등등이다. 이런 것들을 수련으로 착각했는데,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사람은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며, 사람은 종교의 형식을 수호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고 있다.”(《각지 설법 7》 〈미국 수도법회 설법〉)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다 한번은 진상 편지를 우편으로 보낼 때 우체국 감시카메라에 차량 번호판이 찍혀 국보(國保)와 ‘610’에 납치된 후에야 비로소 일하는 것에만 치중했던 것에서 깨어났다. 당시 진상 편지를 보내면서 수량에만 집착했기에(어떤 동수가 누구는 일 년에 만 통을 보낸다고 말한 것에 자극받음) 사람마음이 팽창했을 때 구세력에게 틈을 보여 큰 손실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안으로 찾아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던 사람마음을 찾아냈고, 대량으로 법을 외우고 베끼며 진지하게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침내 무엇이 수련인지 깨달았다. 수련이 무엇인지에 관한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며 법리를 하나하나 외웠고,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며 성실하게 자신을 실수(實修)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에 관한 설법을 다 외웠다.

“사실 당신들이 각종 업종 중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잘한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하고 있다.”(《각지 설법 8》 〈2007년 뉴욕법회 설법〉),

“수련은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고 자신을 닦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모순이 있을 때, 곤란과 불공평한 대우가 있을 때 여전히 자신을 찾아 안을 향해 볼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수련으로, 비로소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고, 비로소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으며, 비로소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대만 법회에 보내는 축사〉),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당신의 평소 생활 속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히거나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때, 당신이 자신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으면 당신은 바로 수련하는 것이다.”(《뉴질랜드 법회 설법》)

매일 사부님의 설법으로 스스로를 가늠하며 자신이 수련 속에 있는지 확인했다. 사실 사부님의 말씀대로 행하기만 하면 바로 수련 속에 있는 것이다. 만약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구세력의 안배에 따라 걷는 것이 된다. 이렇게 자신을 요구한 뒤로 나의 수련 길은 점차 안정적으로 변했다.

내가 깨달은 바는, 대법제자가 자신을 실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수련의 길이라는 점이다.

개인적인 체득이므로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은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