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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神韻) 홍보 과정에서의 작은 교류

선파(善坡)

【정견망】

내가 션윈 매표장에 나가는 차례가 될 때마다 나는 내 담당 시간이 빨리 오기를 특별히 기다린다. 이러한 기다림 속에는 기쁨과 행운, 그리고 감사함이 가득 담겨 있다.

2006년부터 매년 나는 션윈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누려왔으며, 심지어 매년 한 번 이상 관람했다. 션윈의 아름다움은 이미 내 마음속 깊이 뿌리내렸다. 대법제자로서 매번 션윈을 볼 때마다 많은 유익을 얻는다고 느끼는데, 첫 번째 프로그램은 자주 대법제자들이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오는 장관을 표현한다. 그때마다 마음이 무척 설레고 감개무량하다. ‘저 속에 내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공연을 보고 난 후 내면에서 솟구치는 정념(正念)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격려해 준다.

우리는 션윈의 의의가 사람을 구하는 데 있음을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션윈을 소개하고, 알게 하며, 그들이 표를 구해 극장에서 관람함으로써 생명이 구도받도록 도울 기회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의 기쁨은 내면에서 우러나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판매점에 서서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열정적이면서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넨다. 손님이 발걸음을 멈추면 가능한 한 션윈을 설명하여 그 아름다움을 알게 한다. 이것이 단지 멋진 시각적 잔치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션윈이 전달하는 메시지이며 션윈이 표현하는 것이 진짜 중화 전통문화이자 인류가 계승해야 할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전한다.

행운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주셨고, 자비롭게 법을 설해 주셨으며,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하도록 지도해 주셨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엎드려 있지 말고 다시 일어나 계속 수련하라고 말씀해 주셨고, 크고 작은 마난(魔難)을 지날 때 정성껏 보살펴 주시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로 이끌어 주셨다. 우리가 사부님의 자비로운 불은(佛恩) 속에 잠겨 있음은 우주에서 가장 행운인 생명이며, 수많은 신조차도 무척 부러워하는 생명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상상도 못 할 영광을 부여하셨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애틀랜타 법회 설법》에서 “대법제자들은 오늘의 이러한 무수한 중생이 얻을 수 없는 기연(機緣)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 미래의 영원하고도 영원한 생명의 영광을 당신들을 위해 준비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2004년 시카고 법회 설법》에서는 “대법제자가 이번 박해 속에서 감당한 박해와 고통은, 모두 역사의 미래에 대법제자에게 더 큰 영광을 부여할 것인데, 이는 우주 중생 중에서 유사 이래 여태껏 있어 본 적이 없는 영광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에서는 “대법제자의 칭호는 가장 신성한 것이다. 그는 최고 우주대법의 수련자이며, 그는 사부를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생명의 근본으로 한다.”라고 하셨다.

미래의 영광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책임과 사명이다. 곧 우리 지역에서 션윈 공연이 열리는데, 션윈 홍보는 현재의 중점 항목이다. 내가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내가 기쁘고 행운이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고난을 감당하셨음을 알고 있다. 〈진수(眞修)〉라는 경문에서 사부님께서는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어도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라고 말씀하셨다.

1999년 5월, 《캐나다 법회 설법》에서 한 제자가 “사부님께서 우리의 업력을 옮긴 후 그것은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묻자 사부님께서는 뇌혈전 환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는데, 마지막 한 문장은 이러했다. “내가 그를 위해 이 난을 감당할 때 그 당시 독약 한 사발을 마셨는데, 그는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부님의 홍은(洪恩)에 보답할 길은 없으나, 감사하는 마음은 이미 대법제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현재의 션윈 홍보 속에서 그 감사함은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어느 날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매표소에 있었다. 여러 방향에서 오가는 손님들을 살피기 위해 매표소 주변을 왔다 갔다 했는데, 작은 매표소가 마치 찬란한 노아의 방주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우리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인연 있는 사람들을 방주로 인도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작은 매표소는 묵묵히 대법제자를 받쳐주며 우리의 구도 사명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어느 시간대든 우리에게는 소중한 판매 시간이며, 인연 있는 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마음(人心)과 관념을 내려놓고 사부님의 당부와 중생의 기대를 품은 채, 우리의 선심(善心)과 정념(正念)으로 인연 있는 이를 방주로 인도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지난주에 내게 소침한 상태가 나타났다. 원인은 꿈 때문이었는데, 여기서 꿈의 내용을 다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핵심은 내가 수련해서 원만(圓滿)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깨어나니 무형의 소침한 그물이 천지를 뒤덮듯 몰려왔다. 이 상태는 내가 마음을 가라앉혀 법공부를 하거나 연공을 하는 것을 방해했다. 원만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수련하고 수련해도 원만할 수 없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나는 완전히 제어당해 질식할 것 같았고, 발정념(發正念)을 할 신심조차 잃었다.

나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원만할 수 없다고 하니 곧이곧대로 믿고 소침해졌는데, 이것은 내가 구(求)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원만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얻지 못한다고 낙담하니, 그때 한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이것이 근본적인 집착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근본적인 집착이었고, 오늘 이런 방식으로 나를 깨닫게 해주신 것이었다. 예전에 명혜망(明慧網)의 교류를 보면서 모순과 마난 속에서 법에 대조해 안으로 찾고 법 위에서 수련함으로써 집착을 찾고, 어떤 이는 근본적인 집착까지 찾아내어 이를 제거하고 제고하는 것을 보았다.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라는 경문에서 사부님께서는 근본적인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고 언급하셨다.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과학 관념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람 되는 도리에 부합한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치에 대한 불만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부패한 인류의 도덕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과 사부님이 바르다고 여기는 등등이다.” 예전에 이 경문을 공부할 때 여러 번 자신을 대조해 보았으나 나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지 못했었다.

나는 20대 때 법을 얻었기에 질병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법을 얻은 과정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때는 원만을 구하려는 염원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 2~3년 동안 《전법륜》 제6강의 마지막 두 단락을 공부할 때마다, 즉 사부님께서 금후 우리 수련된 사람들은 세간소도(世間小道)에서 개오하는 사람이 있고,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개오하는 사람이 있으며, 정과(正果)를 얻어 개오하는 사람이 있다. 정과를 얻은 개오야말로 최고이며,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모두 볼 수 있고 또한 현현(顯現)할 수 있다”라고 하신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나는 반드시 정과를 얻어 개오해야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것이 얼마나 강한 집착인가. 하지만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원만에 집착하는 것이 여전히 개인 수련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정법 수련으로 전환된 노정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깊이 생각해보니 아찔했다. 어떤 이들은 하루빨리 정법이 끝나서 속히 원만하기를 바라기도 한다는데, 나는 도리어 끝나는 시간이 빨리 올까 봐 두려워했다. 내가 아직 잘 닦이지 않았고 많은 사람마음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수련이 마감되는 날 나 자신을 성취하지 못해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는 그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하는 것은 연공이 본체(本體)를 정화해 고에너지 물질로 전화(轉化)시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고, 매일 법공부를 하는 것은 법이 제고의 보증이며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교란을 배제하자〉)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열심히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도 그것이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나의 출발점은 위사위아(爲私爲我)한 것이었고 기점(基點)이 틀려 있었다. 이것은 구우주의 이치다. 지금 사부님의 정법은 우주를 바로잡는 것이며 우리를 위타(爲他)한 생명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숨겨져 있던 깊은 근본 집착이 폭로되었음을 명확히 알게 되자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그저께 저녁 집에 돌아오니 법공부를 하던 남편이 나를 보고는 어떻게 법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심코 “마음을 고요히 하고 공부하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그는 아니라고 했고 내가 이 경문 저 경문 추측하자, 그는 《정진요지》 〈법을 배우다〉 경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문장은 “기억하라.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였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어리석은 제자를 다시 한번 점화해 주신 것이니, 앞으로의 법공부와 수련 중에서 ‘구함이 없어야’ 함을 깨달았다.

나는 아직 매표소에서 표를 팔지 못했다. 한때 나의 수련 층차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매표소에 나가는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이런 생각은 법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션윈 시즌이 왔고 시간은 매우 짧다. 내가 다 닦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표를 팔러 갈 수는 없다. 낙담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법공부를 더 많이 하고 정념을 강화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려 노력해야 한다. 비교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행하되 구함이 없어야 한다.

명혜 라디오에서 대륙 대법제자의 교류를 들은 기억이 난다. 어느 지역의 동수들이 한 장소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로 결정하자, 한 동수가 천목(天目)으로 다른 공간의 천병천장(天兵天將)들이 그곳에 미리 장(場)을 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또한 현지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대법제자가 오기를 공경히 영접하는 것도 보았다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션윈 매표소가 하나하나 세워질 때마다 다른 공간에 나타나는 광경은 분명 매우 신성하고 감동적일 것이다.

지금 매일매일은 우리의 소중하고도 관건적인 매표 시간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미래의 영광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중생의 구도를 위해 더욱 마음을 써서 션윈 홍보를 잘해야 한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