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법을 외우기를 견지해 착실히 수련하며 정진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공부를 할 때 가끔 마음이 입정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에 스스로 법을 외우기 시도했다. 하지만 책을 들고 몇 구절 외우다 보면 금세 잡념이 생겼고, 겨우 3페이지를 외운 뒤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 RTC 플랫폼을 따라 외우기도 했으나 여러 방해로 인해 지속하지 못했고, 그렇게 1년 가까이 중단된 상태였다.

최근 항목의 갈등이 사람을 구하는 진도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온갖 어려움을 배제하고 매일 법을 외우기를 견지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법리(法理)를 깨달았다. 오늘 나의 이러한 경험과 체득을 나누고자 한다.

1. 안으로 찾아 법을 외우는 장 절 순서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다

이전에 나는 아주 강한 집착이 있었다. 법을 외울 때는 반드시 제1강부터 시작해야만 사부님 설법의 모든 정수를 완전하고 손상 없이 흡수하는 것이라 여겼다. 중간부터 합류하면 앞부분이 빠졌다고 느껴져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법을 외우는 방에 들어갔을 때 이미 제6강을 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 한구석에 미묘한 거부감이 생겼다. 겉으로는 합류했으나 외울 때마다 장애가 느껴져 마음이 몰입되지 않았다.

나중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보니, 근본 원인은 법을 외우는 순서에 대한 은연 중의 저항감이었다. 이러한 저항은 사실 ‘반드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라는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은 법의 완전성을 수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내가 예전에 법 외우기를 중도에 포기했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즉,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의 수련이 되면 쉽게 핑계를 찾아 포기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 찾아낸 후 즉시 발정념으로 이 집착을 제거했다. 공부를 통해 대법은 원용(圓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몇 강부터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법에 녹아들어 외우는 과정에서 안으로 찾고 집착을 제거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순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곧바로 고요해졌다. 제6강을 외울 때 법리가 매우 명확하게 드러났고 앞뒤가 관통되어 빠진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또한 거의 매일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이 일을 통해 어떤 사람마음(人心)이 섞인 관념도 모두 집착이며 구세력의 교란을 부르는 구실임을 깊이 인식했다. 진정으로 대법을 수련함에 있어 고정된 최고의 방식이란 없으며, 오직 사부님과 법을 믿고 심성을 착실히 닦는 하나의 정도(正道)만 있을 뿐이다.

2. 안으로 찾아 단체 법 외우기 속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위타(爲他)한 마음을 닦아내다

단체로 법을 외울 때는 한 시간 반 동안 보통 한 페이지 정도밖에 외우지 못한다. 반면 어떤 동수는 혼자 외울 때 같은 시간에 서너 페이지를 외우기도 한다. 내 마음속에는 RTC 플랫폼의 속도가 너무 느려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어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이것이 내가 예전에 법 외우기를 포기했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었다.

안으로 찾아보니 이 집착 뒤에는 강한 이익의 마음과 서둘러 성과를 얻으려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항상 가장 효율적이고 편안한 방식으로 법을 외워 빠르게 법의 가지(加持)를 받고, 심성을 높이며,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성취감을 만족시키려 했다. 이는 사실 속인의 계산과 득실심을 가지고 법공부를 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방식이 더 낫다고 여기며 전체에 맞추려 하지 않는 강한 자아(自我)가 섞여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단체로 법을 외울 때 리드하는 동수가 평소 법을 읽을 때처럼 빠르게 읽으면, 법을 외우는 많은 동수가 따라오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리드하는 동수는 반드시 속도를 늦추고 명확하게 읽어 모두가 따라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마음을 닦을 좋은 기회였다. 리드하는 이는 조급함과 과시심을 버리고 전체에 맞춰야 하며, 따라가는 이는 느리다고 싫어하거나 서두르는 마음을 버리고 단체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단체 환경이 겉으로는 느리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심성을 단련하여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위타한 마음을 닦게 해주는 과정이었다.

이를 발견한 후 발정념으로 속도에 대한 집착을 철저히 제거했다. 집착을 내려놓으니 더 이상 시간 낭비라고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매 분 매 초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같은 단락을 반복해서 외우다 보니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법리가 끊임없이 드러났다. 그때의 내면적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리드할 때도 동수를 배려하는 데 더욱 주력했다. 속도를 늦추고 정확하게 읽으며 문장을 적절히 끊어 동수들이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돕고, 글자를 빠뜨리거나 더하거나 틀리게 읽는 것을 피하도록 각별히 주의했다.

3. 인터넷 접속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안으로 찾다

어느 날 한 동수와 사소한 일로 갈등이 생겨 마음이 몹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억누를 수가 없었다. RTC 플랫폼 단체 법 외우기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이러한 감정을 즉시 배제하지 못한 채 평온하지 못한 마음을 안고 참여했다.

법을 외울 때는 돌아가며 리드하는데, 내 앞 차례 동수가 리드할 때 갑자기 그분의 네트워크 상태가 불안정해지며 소리가 끊겨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스스로 발음이 정확하고 목소리가 맑다고 자부하며 약간의 자만심까지 느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회자가 내 네트워크 역시 앞의 동수처럼 끊긴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 (《전법륜》 제1강)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화와 분노의 마음으로 인해 발생시킨 상응하는 물질이 이 공간의 네트워크 신호를 방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은 읽을 때 문제를 느끼지 못했지만, 앞 동수의 네트워크가 끊긴 것은 사실 나의 분노가 어느 정도까지 방해를 일으키고 있는지 알려주기 위한 힌트였다. 네트워크 문제는 통신사나 기기 문제가 아니라, 제거하지 못한 나의 분노와 쟁투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를 깨닫고 즉시 안으로 찾았다. 왜 동수에게 화를 냈는가? 근본 원인은 강한 자아와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그리고 과시심과 쟁투심에 있었다. 이러한 집착을 찾아낸 후 즉시 발정념으로 철저히 부정하고 제거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이러한 마음을 빠르게 버리자, 남은 법 외우기 과정 동안 사회자가 네트워크 문제를 언급하는 일은 다시 없었다.

이 일을 통해 어떤 순조롭지 않은 일도 우연이 아님을 깊이 체득했다. 네트워크 불량, 장비 문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등의 표면적인 현상은 종종 우리의 심성의 부족을 반영한다. 대법제자로서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외부에서 원인을 찾거나 객관적 조건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는 것이다. 마음이 바르면 외부 환경은 자연히 바르게 되고, 마음이 순정해지면 모든 방해는 사라진다. 그 후로 나와 동수의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즉시 경각심을 갖고 안으로 나 자신을 찾는다.

4. 법을 외우는 중의 체득: 마음과 물질 사이의 관계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외우니 매일 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게 되었고, 거의 매주 대여섯 번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법에 대한 인식을 심화할 수 있었다.

《전법륜》의 ‘육식 문제’ 단락을 외울 때였다. 사부님께서 “만약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그 물질 자체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바, 진정 사람을 교란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을 접하는 순간 온몸의 층층 공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진동했다. 이를 통해 더 깊은 법리를 얻었음을 알았다. 이전에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 마음을 버리는 것이라는 점을 이성적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라는 말씀과 입자 및 층층의 신체에 관한 사부님의 설법을 결합하니 더 깊은 체득이 생겼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인간 세상의 물질은 마치 영혼 없는 껍데기와 같아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이 공간에 조용히 존재할 뿐 나의 층층 신체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집착심이 움직이면 그 물질은 동요하기 시작하고 입자가 그에 따라 움직이며, 인간 세상의 이 층과 나의 층층 신체를 일시적으로 연결한다. 그러면 표면 공간의 나는 인간 세상에 빠지게 되어 잠시 층차를 제고할 수 없게 된다.

법 속에서 마음과 물질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인식을 심화했으며, “진정으로 우리를 방해하고 속박하는 것은 물질 자체가 아니라 내려놓지 못한 그 마음이다”라는 깨달음을 한 층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 인식은 일상생활에서 내가 생각을 일으킬 때 즉시 안으로 찾고 발정념으로 제거하도록 경각심을 주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외부 물질은 더 이상 나를 움직일 수 없다.

더 넓게 생각해보면, 이 법리는 명(名), 이(利), 정(情), 색(色), 재물 등 모든 집착에 적용된다. 그것들은 본래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 마음에 집착이 있으면 그것들이 그 마음에 의해 이끌려 우리가 제고하고 사람 구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이 구절을 외우며 수련의 관건은 항상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어떤 때라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임을 깊이 느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물질은 인간 세상의 이 층차에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우리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 점차 영향력에서 멀어질 수 있다. 마음이 바르면 모든 방해는 자연히 해소된다.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무루(無漏)이다.

5. 법을 외우는 중에 지혜를 얻어 실제 갈등을 해결하다

이전에는 법공부를 할 때 쉽게 잡념에 빠져 머릿속이 집안일, 타인과의 갈등, 남들의 시선 같은 속인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러한 사람마음과 잡념은 잡초처럼 머릿속을 점령하여 법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법을 외우는 것은 달랐다. 한 구절, 한 단락을 진지하게 읽고 굳게 기억해야 했다. 이 과정 자체가 강력하게 사람마음과 잡념의 공간을 몰아낸다. 외우면 외울수록 잡념은 줄어들고 머릿속은 점차 맑아진다. 이때 법리가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때로는 외우는 도중 수없이 읽었던 법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이해가 생기기도 하고,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모순 속에서 숨겨진 집착을 보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 모순을 해결할 지혜와 방법이 직접 깨닫기도 한다. 이는 속인의 사고로 얻은 것이 아니라 법이 마음속에서 제련된 후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한 동수와 사소한 일로 모순이 생겼을 때, 상대방이 틀렸다는 생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날 ‘육식 문제’의 마지막 부분(금연 부분)과 질투심의 첫 단락을 외워야 했다. 처음에는 모순에 대한 생각으로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잡념을 배제하며 점차 고요히 법을 외우려 노력했다.

잡념을 배제하고 법에 몰입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내 머릿속에 ‘통제욕’이라는 세 글자를 넣어주셨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것이 바로 모순의 관건이었으며, 더 깊게는 내 모든 모순의 뿌리였다! 나에게는 강한 통제욕이 있어 늘 내 층차와 인식으로 타인이 나를 따르도록 요구했고, 따르지 않으면 설득하고 바꾸려 하여 모순을 빚었던 것이다. 또한 법리는 글자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 층차에 부합하기만 하면 글자 뒤의 법리가 점화된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했다. 이 순간 나는 사부님께서 왜 항상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지 진심으로 이해했다. 법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해결책을 점화해주며 우리의 모든 것을 지도해주기 때문이다.

이어서 질투심 단락을 외울 때, 나는 속으로 동수의 잠재된 질투심을 원망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고 동수를 거울삼아 안으로 찾지 않는 것을 보시고, ‘불평형(不平衡)’이라는 세 글자를 내 마음속에 강하게 타격하듯 떠올려 주셨다. 즉시 《전법륜》의 “그의 그 마음속은 평형을 이루지 못해 위아래로 다니며 불평하는데,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마음이 불평형한 것이 바로 질투심의 표현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불평형’이라는 단어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질투심이 있음을 점화해주신 것이었다! 동수의 모습은 사실 나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평소 자신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나면 마음이 불편하고 분개하며 끊임없이 원망하곤 했다. 자주 원망했던 근본 원인이 바로 이 질투심이었다. 평소 이를 닦아내지 못하고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치했기에 사부님께서 이 모순을 빌려 나 자신을 보게 하신 것이었다.

여기까지 깨닫자마자 즉시 안으로 찾아 발정념으로 통제욕과 질투심을 철저히 부정하고 제거했으며, 동시에 사부님께 진심으로 잘못을 빌었다. 마음이 곧바로 가벼워졌고 동수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다. 다음 날 그 동수와 교류할 때 내가 먼저 부족함을 인정하고 선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니 모순이 금세 해소되었고 관계는 오히려 더 화목해졌다.

이 일을 통해 법을 외우는 것이야말로 실질적으로 사람마음을 줄이고 법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과정임을 깊이 체감했다. 사람마음이 적어지면 법리가 자연히 드러나고, 법리에 대한 인식이 많아지면 지혜는 법 속에서 나오게 된다. 복잡해 보이는 모순도 모두 집착을 버리고 심성을 높일 기회다. 고요한 마음으로 법을 외우면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깨우쳐 주시며, 우리는 법 속에서 지혜를 얻어 모순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다.

맺음말

법 외우기를 견지하는 과정에서 법이 심성을 단련하고 실수를 돕는 거대한 힘을 깊이 느꼈고, 더 많은 동수가 함께 법을 외우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뜻이 있는 동수들과 연락하여 함께 법 외우기 인증방을 만들었다. 사람마다 외우는 시간과 방식은 다르지만, 매일의 인증과 나눔은 서로에게 포기하지 말고 견지하라는 격려와 자극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분위기 덕분에 우리 모두가 더욱 정진하게 되었다.

법 외우기를 견지하여 법이 진정으로 마음에 들어오게 하고 착실한 수련을 지도하게 하자.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기회에 대법을 얻게 된 인연에 감사드린다! 정법(正法)은 이미 마지막에 이르렀고 사람 구하기가 긴박하니, 우리는 마땅히 법을 더 많이 외우고 안으로 찾으며 사람마음을 닦아버려 정체를 형성해서 사부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개인적인 체득이므로 참고로만 삼되,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