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자비(慈悲)는 신(神)의 영원한 상태이며, 자비는 또한 대각자의 본성이다. 대법제자는 법에서 자비를 닦아내야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법리는 이해한 것 같지만, 실천 중에는 자비심이 얼마나 큰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원한심이 나타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자비가 없거나 자비심이 작은 상태는 세상 사람들의 구조를 가로막는다. 자신의 공간장 에너지가 완고한 바위를 흔들 수 없고, 자비심이 부족해 열량이 모자라니 견고한 빙하를 녹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자비는 정(情)을 제거해 생기는 것으로 정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비심이 나오지 않는다. 이 방면에 대해 약간의 깨달음이 있다. 누군가 내 눈에 거슬려 보일 때는 바로 관념(觀念)이 나온 것이다. 관념이 사상과 행위를 주도하므로 전체 사람이 관념의 연기자가 된다. 관념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사(私)에 기초하고 있으며 구우주의 변이된 산물이다. 그러므로 관념이 있으면 자비심이 생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많은 경우 모순 속에서 안으로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늘 밖을 보며 원망하게 되는 이유다. 이 점을 깨닫고 법에서 그것을 배척하고 원치 않으며, 정이라는 이 마(魔)의 실을 붙잡아 한 가닥씩 제거해 나갔다. 한 가닥을 떼어낼 때마다 본성의 일면이 조금씩 드러났다. 이때 마음이 선하게 변하고 원한이 줄어들며 자비심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수련 과정은 끊임없이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며, 관념을 전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비심의 발현을 가로막는 또 다른 한 가지 요소는 바로 ‘자아’, 즉 ‘사(私)’다. 흔히 우리는 무엇이든 자아를 중심으로 해야 성취감이 있고, 그래야 자신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어 존재감이 있다고 느끼는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자아’이며 ‘사(私)’다. 때로 사람과 어울릴 때 자신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목적에 도달할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상대방은 나와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다.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 마지못해 협력하고 원융(圓融)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좀 평온하지 않은데, 이런 일이 자주 나타나면서 마음의 감당 능력이 꽉 차게 되면 더는 협력하고 원융하고 싶지 않게 된다. 몇 번의 모순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폭발했다. 안으로 나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찾아보니, 자아를 고집하고 사(私)를 수호하느라 법을 결코 첫째 자리에 두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또한 자신을 닦지 않고 일 그 자체만을 따지며 사람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법공부를 통해 완전히 위타한 생명으로 수련 성취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자아가 있고 사심(私心)이 있는 것은 모두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자신은 하나의 법입자이므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할 뿐,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 같은 것은 없다. 우주의 법칙에 따라 운행하니 처음에는 좀 습관이 되지 않아 말로 다 못 할 어색함이 있었지만, 결과는 사람을 매우 기쁘게 했다. 나는 자비심이 생겨나며 가져다주는 상화(祥和)함을 깨달았다. 자비심이 나올 때 몸이 매우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는데, 이것이 바로 사부님의 가지(加持)이며 대법의 위력이다!
현 단계에서의 작은 깨달음이며,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동수 여러분께서 자비로이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1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