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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으니 사존의 보호를 받다

사천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7.20’ 이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올해 여든두 살이다. 2023년 4월 말경 몇 가지 이유로 다른 성(省)에 있는 아들 집에서 한동안 지내게 되었는데, 각자의 생활 편의 등을 고려하여 아들 내외가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얻어 주었다. 손녀는 타지에서 대학에 다니고 손자는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집에 돌아왔다. 아들은 손자에게 주말에 집에 오면 시간을 내어 내가 세 들어 사는 곳에 들러 나를 좀 찾아보라고 했다(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는 1년이 좀 넘었다).

손자가 “9자 진언”을 외워 복을 받다

내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 성적이 그리 이상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손자에게 매일 정성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9자 진언을 외우면 지혜가 열리고 학습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작문 실력을 높여주기 위해 정견망에 게재된 《글쓰기에 ‘비결’이 있으니 사유가 ‘열려야’ 한다》는 글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아이들에게 전통문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한신이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다’, ‘얼굴에 뱉은 침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다’, ‘장백인(張百忍)’ 등의 이야기였다. 손자가 평소 “9자 진언”을 자주 정성껏 외운 덕분에 곧 복을 받았다. 입학 당시 반에서 30 몇 등 하던 성적이 기말에는 이미 전교 상위권으로 올라 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안으로 찾으니 사부님께서 자비로 제자를 보호

2025년 5월 어느 일요일, 손자가 왔는데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말했다.

“할머니, 저기, 그게…”

내가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해보라고 하자 손자는 “엄마가 할머니 댁에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라고 말하더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내가 방금 왔는데 왜 벌써 가느냐고 묻자, 손자는 “외할머니 댁에 가야 해요”라고 답했다.

나는 당시 몹시 화가 나서 “네 성이 무엇이냐? L씨냐 아니면 Z씨냐?”라고 쏘아붙였지만 손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버렸다.

아들은 80년대 말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으로 발령받아 왔다. 며느리는 이곳 토박이로 형제자매가 다섯이다. 안사돈은 두 아들과 함께 사는데, 본인은 1층에 살고(바깥어른은 이미 작고) 두 아들은 각각 한 층씩 위층에 산다. 즉, 안사돈은 매일 두 아들과 초등학생인 손자를 만날 수 있고, 고등학생인 손녀와는 주말마다, 대학생인 손녀와는 방학 때 매일 볼 수 있다. 며느리와 두 언니도 수시로 친정엄마를 보러 가고, 무슨 일이 있거나 편찮으시면 반드시 찾아간다. 설날에는 형제자매 다섯 명과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 외증손까지 한 무리가 모두 모인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 아들 하나뿐인데, 내 손자가 매주 잠시 들르는 것조차 며느리가 못 오게 하니 마음속으로 ‘네가 무슨 자격으로 못 오게 하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손녀를 낳은 뒤로 일도 하지 않았고, 손녀가 여섯 살 때 남동생이 태어나자 아예 밖에서 일할 생각을 안 했다. 그렇게 줄곧 내 아들 혼자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게 했다. 손녀와 손자가 학교에 다닐 때도 네 학력이 낮아 학습 지도를 못 하니 아들이 공부를 봐주고 학부모 회의에도 참석해야 했다. 손자가 상을 받으면 친척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자랑하면서, 너도 L씨 집안 며느리인데 무슨 권리로 L씨 집안 손자가 할머니를 못 보게 하느냐? 친정 엄마만 보러 가게 하고, 더 화나는 건 나한테 오지 못하게 확답까지 받게 하다니, 너무나 안하무인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자 수련 전에 앓았던 메니에르 증후군처럼 갑자기 어지럼증이 일어났다. 집이 빙글빙글 돌고 땅이 솟구치는 것 같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어 얼른 누웠다. 누워도 계속 회전하는 느낌이 들었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심장은 흉강 밖으로 튀어나올 듯 뛰었고 위장도 뒤집히는 것 같아 몹시 괴롭고 땀이 나며 토할 것 같았다…

이때 나는 번뜩 깨달았다. ‘이것은 구세력이 내게 아주 많고 아주 강한 사람마음(人心)과 집착이 있는 것을 보고, 밖으로만 향하고 안으로 찾지 않으며 속인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내 모습이 전혀 수련자 같지 않음을 구실로 잡은 것이다. 구세력이 나의 이 틈을 노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박해하는 것이다.’

나는 급히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오직 안으로만 찾겠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오직 안으로만 찾겠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오직 안으로만 찾겠습니다!” 연거푸 세 번을 말하자 신기하게도 어지러운 느낌이 순식간에 멈추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늘 제자를 보살피시며 제자를 대신해 죄업을 감당하시고 보호해 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사부님의 은혜는 끝이 없다! 다만 남은 검은 기운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누웠다 앉거나 앉았다 다시 눕는 등 몸의 자세를 바꿀 때 순간적인 어지럼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모순에 부딪히게 되면, 누구의 탓이든, 우선 자신에게서 찾는다.”(《2019년 뉴욕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즉, 모순을 만나면 누가 맞는지 틀렸는지 가리지 말고 오직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먼저 며느리가 손자를 못 오게 한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찾았다. ‘네가 무슨 자격과 권리로 못 오게 하느냐?’라고 질책한 것은 쟁투심이자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며느리가 젊은 나이에 일하러 나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 공부도 못 가르친다고 한 것은 자신을 높이고 남을 얕보는 마음이었다. 아들이 일도 바쁜데 아이들 공부까지 챙겨야 하니 너무 고생한다고 여긴 것은 아들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다. 안사돈 곁에 많은 자손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강한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내가 밖으로만 향하고 사람마음, 사람의 정, 사람 생각으로 사람의 이치를 따지며 집착심을 잔뜩 품고 있었기에 생각이 법에 있지 않아 구세력에게 틈을 보여 어지럼증이라는 병업 가상을 겪게 된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오직 안으로 찾자!”라고 하니 이것이 법의 요구에 부합했고 법 위에 서게 되었으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어 어지럼증 증상이 곧바로 사라졌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 보니 모순이 나타난 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수련 제고의 기회를 안배해 주신 것이며, 며느리가 나의 수련을 도와주도록 안배하신 것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원망심, 쟁투심 등의 집착심은 바로 사당(邪黨) 문화의 투쟁 사유 독소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사당 문화의 독소는 바로 내가 철저히 제거하고 해체해야 할 것들이다. 대법 법리로 사람을 선(善)하게 대할 것을 생각했다면 ‘며느리가 손자를 못 오게 한 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나 말 못 할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를 이해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설령 그녀의 동기에 좋지 않은 면이 있음을 알았더라도 따지지 않고 포용하며 선하게 대했어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며느리는 내가 손자에게 “파룬따파하오”를 외우게 한다는 것을 알고 손자가 박해를 받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모순이 폭로되어 나오지 않고 이 모순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집착을 발견하지 못하며 당신의 집착을 보아내지 못한다. 일체가 모두 평화롭다면 수련할 수 있겠는가?”(《미국 수도 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모순 속에서 안으로 찾아야만 자신의 인심과 집착을 발견할 수 있고, 하루빨리 그것들을 닦아버려 심성과 층차를 높이고 공을 자라게 하여 신(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정말 며느리에게 고마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에 따라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수천 년 동안 뼛속 깊이 형성된 사람의 이치는 매우 완고하여 과정이 필요했다. 안으로 찾는 동시에 가끔 자신도 모르게 원망심이나 남을 얕보는 마음이 솟구쳐 상대방의 부족함을 보게 되는데, 사실상 다시 속인 속에 빠져든 것이었다. 자신의 집착심을 닦아야 함을 분명히 보고 있으면서도 그 때문에 집착을 제거하는 힘이 약해져 늘 닦아내도 깨끗이 닦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법공부를 강화했다.

사부님께서는 《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에서 “당신 개인수련 중에서 대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데까지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바 당신의 적을 용서하는 것을 포함해서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마음의 용량을 넓히니 심성 또한 끊임없이 높아졌다. 나는 대법제자인데 어떻게 속인에게 화를 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나의 이 마음을 닦을 때가 아닌가?

나는 강력한 정념을 내보냈다.

‘이 원망하고 남을 얕보는 마음 등 집착심을 나의 공간장에서, 미시에서 거시에 이르기까지 층층 해체하고 소멸하여 모조리 없앤다. 그것은 내가 아니며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을 해체하고 소멸한다. 사부님 제자를 가지(加持)해 그것이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러한 사람마음과 집착을 찾아내고 그것을 원치 않으며 닦아버리기로 결심하자, 집착심들이 점차 옅어지거나 사라졌고 체위성 어지럼증도 완전히 사라졌다. 이것은 사부님의 성스러운 은혜이자 더할 나위 없는 은혜이다! 늘 보살펴 주시고 구도해 주시는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