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올해 대륙에 방영된 션윈 공연 중 “서원 이야기(書院故事)”라는 무용이 있었다. 이 무용은 서당의 한 무리 학생들이 서당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 그가 노쇠했다고 여겨 허리가 굽고 등이 휜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생님이 뒤돌아보자 학생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어대고, 또 다른 학생은 선생님 손에 든 책을 빼앗는다. 당신은 늙고 재능이 없으니 차라리 우리끼리 배우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노선생님은 허허 웃으며 물러난다.
선생님이 떠난 후 학자들은 난제에 부딪혀 의혹을 풀지 못하자 노선생님을 찾아가는데, 뜻밖에도 노선생님이 무술을 연마하며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모습을 발견한다. 허리는 굽지 않았고 등도 휘지 않았으며 사유 전감 공능까지 있었다. 휘파람을 불어 새를 불러모으고 고난도 동작인 금계독립(金雞獨立)까지 해내자 학생들은 깜짝 놀라 공경히 노선생님을 다시 모셔온다.
무용의 함축된 의미는 노선생님의 공부(功夫)가 높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심성(心性)이 높고 지혜가 그 속에 있음을 가리킨다. 쫓겨나도 원망이나 한이 없고, 다시 청함을 받아도 놀라거나 기뻐하지 않으며 아이들과 시종 허허 웃으며 지낸다. 학생들에게 놀림을 당해도 조급해하거나 화내지 않고 시종 친근한 상태를 유지하며 상화(祥和)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나이가 어려 장난을 치는 것에 대해 정말로 화를 내거나 마음에 두지 않으며 윗사람으로서 권위 의식도 없다. 나중에 학생들은 자신들이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했음을 깨닫고 잘못을 즉시 고쳐 다시 노선생님을 모셔온다.
여기서 나는 수련인도 이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항목을 하는 중에 기술 전문 인재가 무시당해 합리적으로 기용되지 못하거나, 헌신을 많이 하고도 오해를 받는 등 노선생님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노선생님과 같은 경지를 갖출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인의 모습이다. 학자들의 표현에도 함축된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겉모습으로 판단해 노선생님을 내쫓았지만,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고쳐서 다시 공경히 노선생님을 모셔와 완벽한 전체를 이룬 것인데, 이것은 수련인이 거울로 삼아야 할 점이다. 아울러 동수 사이에도 분별심을 닦아버려야 한다. 가령 나이 들고 촌스러우며 문맹인 동수를 얕보는 것 등이다. 동수에게 말할 때 존경하지 않고 언사가 선하지 않으면 사람을 상하게 하기 쉽고 업을 짓기도 쉬운데, 신(神)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도 이 작품 속 학생들과 같은 교훈이 있다. 동수를 무시하고 사람을 깔보며 승복하지 않는 마음이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이 마음을 제거해 주시기 위해 자주 나와 동수 사이의 큰 차이를 보게 하셨다. 한 번은 내가 치통이 있어 동수와 교류하러 가던 길에 한 노동수를 만났다. 당시 내 심태는 무용 속 학생들처럼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물었다. “치아가 몇 개나 빠지셨나요?”
그녀는 “난 하나도 안 빠졌어요.”라고 답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그녀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 이 연배에 치아가 빠지는 것은 정상인데 어찌 하나도 안 빠졌을까 싶었다.
다시 물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그러자 “일흔여섯”이라고 했다. 나는 더 놀랐다. 나는 예순이 좀 넘었는데 치아가 5개나 빠졌는데, 그녀는 76세에 하나도 빠지지 않았고 정신도 나보다 좋으니 어찌 76세처럼 보이겠는가?
나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비록 치아가 빠지는 것으로 수련의 좋고 나쁨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말이 적어 구업(口業)을 적게 지으니 치아도 튼튼한 것이고 나는 그녀와 정반대였다. 그 후 나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관념을 버리고 성실하게 자신을 닦게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한 노동수는 거의 매번 만날 때마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어디가 안 되나요? 좀 지적해 줘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아마 수련을 잘 못 해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떠들어댔다.
“당신은 마땅히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합니다…….”
그러다 한 번은 그녀의 집 아래를 지나는데 그녀가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들어가 보니 탁자 위에 대법 서적과 필기장이 놓여 있었다.
“법을 베껴 쓰시나봐요?”
“네.”
“《전법륜》을 몇 번이나 베껴 쓰셨나요?”
“11번입니다.”
“각지 설법은요?”
“7번 베껴 썼습니다.”
나는 듣고 깜짝 놀랐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인가? 나는 각지 설법을 아직 7번 읽지도 못했는데 그녀는 7번이나 베껴 썼으니 그 차이가 얼마나 큰가?’
그 순간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런 그녀에게 지적을 해주었으니 정말 관우 앞에서 칼을 휘두른 격이다. 나는 감탄하며 “정말 정진하시네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들보다 수련을 못 하니 많이 지적해 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당신을 지적하라고요? 당신이 나를 지적해 줘야 맞지요.’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나는 어떻게 자신을 닦아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무엇이 정진인가? 정진은 묵묵함 속에 있고, 남이 알지 못하는 끊임없는 정진 속에 있으며, 초월적인 헌신 속에 있다. 정진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진함을 뽐내지 않고 늘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볼 줄 안다. 비학비수(比學比修) 중에서 나의 관념이 바뀌고 겸허함이 늘어가고 있다. 언젠가 나도 무용 속 노선생님과 같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층차에서의 짧은 소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