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대법제자
【정견망】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똑같은 일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물으면 당신은 특별히 인내심 있고 열정적이라 가끔은 내가 닭살이 돋을 정도인데, 내가 물으면 왜 그렇게 엄격한 거야? 내가 보기에 이건 진(眞)이 아니야.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당신이야?”
남편이 언급한 문제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자신을 돌아보며 남편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생각했다.
나는 평소 스스로 한마디 거짓말도 하지 않으며 진(眞)을 실천하고 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지금 진실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나는 과연 진실하게 행동했는가? 만약 진실하다면 같은 일을 두고 상대에 따라 왜 내 태도가 그렇게 큰 차이가 났을까? 겉으로 보기에 낯선 사람은 처음 묻는 것이니 몰라서 묻는 것이라 여겨 인내심 있게 설명해 준다. 그러나 남편은 처음이 아니고 두 번, 세 번 묻는 것이었다. 즉, 처음에는 나도 인내심 있게 설명해 주었지만 그가 계속 이해하지 못하자 인내심이 바닥났고, 그가 정성 들여 배우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의 인내심 있는 설명은 남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내가 잘 알고 훌륭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가족은 이미 나를 잘 알고 있으니 굳이 나 자신을 과시할 필요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선의(善意)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 이것이 어찌 진(眞)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선(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부님께서는 일을 할 때 타인을 고려해야 하며,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남편이 같은 문제를 여러 번 묻는다는 것은 내가 아직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내 말을 그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했으면서, 오히려 그의 거듭된 질문에 심성(心性)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이런 마(魔)에 이끌렸으니 어찌 선(善)을 말하겠는가!
이것은 위선(僞善)이다! ‘거짓 위(僞)’ 자는 어떻게 쓰는가? 사람(人)과 행위(爲)가 합쳐진 것으로, 즉 인위적인 것이다. 문득 아침에 딸아이에게 《홍음》 〈무위(無爲)〉를 가르쳐준 것이 생각났다.
삼교(三敎) 수련은 무위를 중시하거니
마음 잘못 쓰면 곧 유위로다
착한 일만 한다 해도 역시 유위이거니
집착심을 제거해야 참된 무위로다
“착한 일만 하는 것”은 바로 인위적으로 행하는 선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위선이 아닌가! 타인에게 보여준 인내와 열정은 표면적인 것이었으며 사실은 위선이었다! 이를 깨닫고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 진(眞)과 선(善)을 실천한다고 자부했던 내가 사실은 진실하지도 선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침에 딸에게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사부님께서 나를 일깨워주신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세심히 안배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동시에, 대법의 신기함과 위대함, 원융불파(圓融不破)한 법력에 다시금 감탄했다!! 대법 중의 한 입자가 되어 대법 안에서 수련하고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 수련할 수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진정으로 무상한 영광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6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