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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련이야기

낙락(樂樂)

【정견망】

1. 은행카드가 돌아오다

우리 집은 농촌에 있고 나는 혼자 생활한다. 겨울이 되면 딸은 내가 추울까 봐 현에 있는 자기 아파트에 와서 지내라고 한다. 겨울이 되면 나는 은행카드와 모든 대법 서적 등을 포함해 사용하는 물건들을 다 챙겨 아이 집으로 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챙겨 돌아온다. 올해는 외손자가 대입 시험을 마친 후 딸이 남쪽 지방으로 가면서 집을 세놓겠다고 하여, 나는 은행카드를 포함한 모든 물건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가을이 되어 은행카드에서 돈을 좀 찾으려는데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다 챙겨왔는데 왜 안 보일까 싶어 아이들에게 카드를 보았는지 물었지만 모두 못 봤다고 했다. 카드가 한 장이 아니었기에 나는 마음이 좀 급해졌다. 집안을 다 뒤지고 책장도 한 장씩 넘겨가며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못 찾겠다고 하니 아이들은 걱정하지 말고 새로 만들라고 했다.

어느 날 동수에게 이 일을 말하니 동수도 새로 만들라고 권했다. 나는 동수와 함께 은행에 갔으나 결국 만들지 못했다. 요즘은 무엇을 하든 실명제인데, 내 은행카드는 아이들이 만들어준 것이라 당장 집에 없는 아이들 없이는 재발급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이 카드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다가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운반공(搬運功)에 관한 법이 생각났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저는 대운반공은 못 하지만 소운반공은 쓸 수 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제자가 소운반공을 사용해 은행카드를 옮겨오게 해달라고 청했다. 잠시 발정념을 한 후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카드 생각을 잊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후 비닐하우스를 보수하려고 비닐 테이프를 찾았다. 이 테이프들은 평소 내가 보관하다가 아이들이 필요할 때 내게 달라고 하던 것들이다. 테이프를 넣어두는 작은 장을 열어 찾으려는데, 문을 열자마자 내 은행카드가 작은 상자 옆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당시 나는 너무 기뻐서 사부님께서 은행카드를 옮겨다 주셨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전에도 이 작은 장을 매일은 아니더라도 며칠에 한 번씩은 열어 물건을 찾았고, 카드를 찾을 때도 이 장을 몇 번이고 뒤졌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카드를 찾았다고 알렸다. 아들이 어디서 찾았느냐고 묻기에 나는 “운반공이란다, 사부님께서 옮겨다 주신 거야”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대법을 수련했기에 가족들은 진상을 알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날 동수가 우리 집에 왔기에 은행카드를 찾았다고 하니 동수도 어디서 찾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웃으며 “운반공이죠”라고 하자 동수도 웃고 나도 웃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법이 너무나 신기하고 사부님이 너무나 위대하시다는 점이다. “운반공이죠”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사부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2. 사부님은 바로 내 옆에 계신다

며칠 전 한 동수가 치통이 있어 치과에 가보겠다고 하기에 나도 마침 어금니가 반쯤 부러져 밥을 먹을 때마다 볼 안쪽이 쓸리던 차라 같이 가기로 했다. 나는 이 기회에 그 치아를 뽑으려 했다. 치과에 도착해 마취를 하고 뽑으려는데, 동수의 치아는 1분도 안 되어 뽑혔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자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정말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는 집게로 뽑으려 해도 안 뽑히더니 나중에는 망치로 살 속을 때리고 다시 집게를 쓰는 식이었다. 쾅쾅 소리를 내며 내리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심장이 요동쳤다. 옆에 있던 동수도 겁을 먹을 정도였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겨우 뽑았는데, 동수의 치아는 뿌리가 하나였지만 내 것은 뿌리가 세 개였다.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오자 마난(魔難)이 시작되었다. 치아를 뽑은 자리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잠시 그러다 말겠거니 했으나 피는 점점 더 많이 쏟아졌고 어떻게 해도 멈추지 않았다. 오후에 동수가 전화를 걸어 치통은 어떠냐고 묻기에 아직 피가 난다고 했더니 치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제야 다시 치과를 찾았다. 의사는 거의 하루가 다 되어가는데 왜 이제 왔느냐며 약솜을 물려주고는 염증이 생기면 큰일 나니 어서 가서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나는 수련인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입안의 약솜은 피로 흠뻑 젖었고, 방에 들어서자 피가 멈추지 않아 화장지만 두 롤을 썼다. 오전부터 굶은 상태였지만 저녁도 먹지 못했다.

피가 계속 나자 문득 치아 하나 뽑았는데 이렇게 피가 많이 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치아와 소통했다. ‘너도 내 몸속의 하나의 생명인데, 네가 좋지 않아져서 내가 너를 뽑은 것이니 더 이상 피를 내지 마라.’ 잠시 기다려도 효과가 없어 이번에는 선해(善解)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부님의 선해에 관한 법을 외웠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이때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종이로 닦아낼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닦는 것을 멈추고 바닥에 비닐봉지를 씌운 상자를 놓은 뒤, 침대 머리에 엎드려 피가 아래로 흐르게 두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사부님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소통해도 안 되고 선해도 안 된다면, 아! 알았다.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시는구나. 사부님께서 제자의 몸속에 있는 좋지 않은 것들을 정리해주시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사부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그때가 이미 밤 9시가 넘었고 밥도 못 먹은 데다 피를 많이 흘려 몸에 기운이 없었다. 나는 베개 위에 비닐봉지와 화장지를 깔고 침대에서 비몽사몽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치아에서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베개와 비닐봉지 위는 피로 가득했다. 하루 밤낮 동안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후 일어나 먹을 것을 찾다가 거울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치아를 뽑은 쪽 얼굴은 크게 부어 있었고, 반대쪽 얼굴은 살이 쏙 빠져 있었다. 음식을 좀 먹었으나 여전히 기운이 없어 침대에 쓰러져 다시 잠이 들었다. 오후가 되니 몸이 훨씬 좋아진 느낌이었고, 저녁이 되자 얼굴의 부기만 좀 남았을 뿐 다 나았다.

이 기간에 나는 혼자 지내며 아이들에게 전화하지 않았고 동수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런 일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번거로워질 것임을 알았고, 나는 수련인이기에 사부님께서 보살펴주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틀 후 동수가 와서 왜 이렇게 살이 빠졌느냐고 묻기에 그간의 과정을 말해주었다. 동수는 아이들이 몰랐기에 망정이지 알았으면 얼마나 걱정했겠느냐고 했다. 나는 사부님이 계시니 괜찮다고 했고 동수도 맞다며 이번에 관을 하나 넘긴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나도 내가 관을 넘겼음을 안다. 치아 하나 뽑고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여기까지 쓰니 눈물이 난다. 좋은 말을 할 줄은 모르지만, 여기서 사부님께 큰절을 올리며 감사를 드린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