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古韻)
【정견망】
역사상 많은 과학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마치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장형(張衡)의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 제갈량(諸葛亮)의 목우유마(木牛流馬), 노반(魯班)의 목연(木鳶) 등이 그러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를 복원하려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후한서》 기록에 따르면 후한 사람 장형의 자는 평자(平子)다. 그는 후풍지동의 한 대를 제작했다. 지동의는 일종의 지진계로 정련한 구리로 주조되었다. 원의 지름은 8척이며 덮개는 높게 솟아 있어 형상이 커다란 술잔인 존(樽)과 같았다. 위에는 장식으로 전문(篆文), 산귀(山龜), 조수(鳥獸) 등의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중앙에는 하나의 기둥이 있고 주위 여덟 개의 작은 기둥과 기관(機關)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겉에는 여덟 마리의 용 머리가 있었다. 각 용의 입에는 구리 구슬 한 알을 물고 있었으며 아래에는 웅크리고 있는 두꺼비가 입을 벌리고 이를 받으려 하고 있었다.
그 내부의 작은 기관은 정교하게 제작되어 모두 존의 내부에 감추어져 있었으며 덮개를 덮으면 매우 엄밀하여 틈이 전혀 없었다. 만약 지진이 발생하면 존이 움직여 내부의 기관을 작동시키고 용이 구리 구슬을 토해내면 두꺼비가 입으로 그것을 받았다. 진동이 격렬하면 이를 관찰하던 사람이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았다. 한 마리 용의 기관이 작동할 때 나머지 일곱 마리는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그 방향을 찾아 지진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동의가 지진을 측정하는 것은 마치 신령한 물건처럼 매우 정확했다. 사서와 전적의 기록 중에서 후풍지동의와 같은 기구는 일찍이 없었다.
한번은 한 마리 용의 기관이 작동했는데 그 방향이 가리키는 곳에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당시 경성의 학자들은 처음에 지동의가 측정한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며 나무랐다. 며칠 후 역리(驛吏)가 보고하기를 그곳에 과연 지진이 발생했다고 했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지동의의 신묘함에 탄복했다. (《후한서》)
오늘날 사람들은 현대 실증과학의 기점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고 사고한다. 사실 이것은 하나의 오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장비가 가동될 수 있는지를 볼 때 에너지 문제를 고려한다. 전기, 가스, 혹은 석탄을 사용하는지 따져본다. 물론 오늘날 많은 장비는 핵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고대의 과학 방식은 달랐으며 사용한 에너지도 달랐다. 현대인이 오늘날의 과학 기점에서 문제를 사고하여 고대 과기를 복원할 방법을 찾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대인의 과기는 매우 선진적이었으며 에너지는 더욱 높은 층차의 것이었다. 오늘날 속인의 인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6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