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악을 제거하는 것이 정법(正法)을 하는 것이다’에 대한 짧은 깨달음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지혜가 열리다 보니, 평소 업무에서도 종종 초상적인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하지만 줄곧 질투를 살까 두려워 동료들 앞에서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고, 매일 업무량을 기재할 때도 그저 평균치만 적어왔다. 사실 대법제자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몸으로서 이것이 우선 ‘진(眞)’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번거로운 일이 생겨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실제로는 수련상의 허점을 사악한 존재들에게 잡혀 박해를 당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다 《션윈은 왜 사람을 구할 수 있는가》를 필사하던 중, ‘다른 종교가 모두 해내지 못한 크고 좋은 일을 한 것이다(做了一件其它宗教都没做到的大好事)’는 구절에서 ‘몰(没)’을 ‘몰유(没有)’으로 잘못 옮겨 적게 되었다. 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문득 깨달음이 왔다. 션윈이 선보이는 무용, 노래, 음악은 모두 완전히 새로운 창조이며, 다른 종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대법제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하나의 1인 미디어이자 세인이 대법을 알게 되는 창구와 같다. 정법의 과정이 인간 세상의 표면으로 돌파하기 직전인 이때,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사람 마음(人心)을 내려놓고 진정한 대법제자의 상태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법을 실증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일한 만큼 기록하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니 여러 번거로운 일이 생기긴 했으나, 모두 사소한 일들이었으며 비교적 수월하게 하나씩 해결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오후, 타 종교를 믿는 한 동료가 반장을 통해 나에게 일을 떠넘겼다. 꽤 까다로운 일인 데다 본래 그 동료가 해야 할 일이었음에도, 그녀는 할 줄 모른다며 우겼고 반장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전부 밀어버렸다. 살펴보니 앞뒤도 맞지 않아 그저 시간만 낭비하게 만드는 일들이었다.

이때 사부님의 설법이 떠올랐다.

“정법(正法)은 바로 우주의 과거 바르지 못한 법을 바로잡는 것”(《정진요지 3》 <길을 바르게 걷자>),

“참음(忍)은 나약한 것이 아니지만, 온갖 수모를 다 참고 견뎌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 대법제자의 참음은 고상한 것이다. 이는 생명이 위대하고 견고하여 꺾을 수 없는 금강부동(金剛不動)의 표현이고, 이는 진리를 견지하기 위한 관용(寬容)이며, 이는 아직도 인성(人性)이 있고 아직도 정념(正念)이 있는 생명에 대한 慈悲(츠뻬이)와 구원이다. 참음이란 이미 완전히 인성이 없고 정념(正念)이 없는 그런 사악한 생명의 무절제한 악행에 대한 무제한적인 방임이 절대 아니다.”(《정진요지 2》 <더는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이러한 방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질투, 불복심, 원망, 쟁투심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확고히 마음먹었다. ‘나는 대법제자다. 나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으며, 이런 좋지 않고 사악한 것들을 단호히 거부한다. 고집스럽게 방해하는 것들은 반드시 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내면과 외면 모두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하려 노력하며 약 15분 동안 버텼다. 반장은 여전히 나에게 그 일을 시키려 궁리 중이었는데, 그때 갑자기 그 동료가 달려와 말했다. “알겠어요, 그냥 제가 할게요.” 그 광경에 반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으나, 나는 마음속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사악한 생명을 처리하는 것도 인류와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다.”(《정진요지 2》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라는 말씀을 진정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