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속인의 정의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거나 능력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을 보고 눈이 붉어져 기분 나빠하거나 심리적 불균형을 느끼는 것이 질투심이다. 수련인이 말하는 질투심의 범위는 이보다 더 넓다. 남을 얕보거나 원망하는 것 역시 질투심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련인들 사이에서도 매우 흔히 볼 수 있으며, 본문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종류의 질투심이다.
법(法)에서 이러한 질투심의 형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내가 처한 층차에서 이해한 바로는 네 가지 원인이 있다.
1. 인과관계를 반대로 놓지 못함
남을 얕보는 것은 결국 상대방이 하는 일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저 사람도 수련인인데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지? 법공부를 어떻게 했길래 속인만도 못한가?” 혹은 상대의 능력이 자신보다 못한데도 고집을 부릴 때, “그렇게 하면 일을 망칠 뿐인데 내 권고를 듣지 않더니, 보라지, 또 사고를 쳤네?”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사람의 이치로 보면 상대방이 한 일이 확실히 틀렸을 수 있다. 사람의 이치로 가늠하면 인과관계는 이래야 한다. “당신이 틀렸으니 당신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야 한다. 당신은 능력이 부족하니 내 말을 듣고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인이므로 수련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 삼계(三界)의 이치는 우주의 이치와 반대다. 속인의 눈에 보이는 ‘원인(因)’은 수련인의 눈에는 ‘결과(果)’여야 한다. “나의 어떤 원인 때문에 그가 나에게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며, 나의 어떤 원인 때문에 그가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내 권고를 듣지 않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어떤 원인”이란 많은 경우 질투심이다. 자신이 잘났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자신을 높였기에, 남을 볼 때 자연히 낮게 보이는 것이다.
2. 눈에 보이는 것이 확실하다는 관념을 타파하지 못함
왜 “자신이 남보다 강하다”는 이런 일념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불러오는가? 모든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이며, “자신이 남보다 강하다”는 이 질투심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도 영체(靈體)다.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에너지를 수송해 주어야만 생존하고 강대해질 수 있다. 끊임없이 “나는 남보다 낫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에 에너지를 주는 행위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장 일으키기 쉬운가? 당연히 상대방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자신보다 못한 모습을 보일 때다.
질투심이란 이 영체의 능력은 사람보다 높아서 사람을 조종하기란 매우 쉽다. 수련인의 일념(一念)이 바르지 못할 때면 역시 그것의 조종을 받게 된다. 구체적인 과정은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매우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다.
“특히 공(功)이 있는 사람이 가서 절을 하면 더욱 위험하다. 연공인(煉功人)이 무엇을 구한단 말인가? 돈을 구한다고. 여러분 생각해 보라. 연공(煉功)하는 사람이 무슨 재물을 구하겠는가? 육친(親人)에게 재난을 없애고 병을 없애달라고 비는 것도 모두 육친정(親情)에 대한 집착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려 하는데,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있다! 당신이 그것에게 절을 하면서 중얼거린다. “돈을 좀 벌게 저를 도와주십시오.” 좋다. 그것이 당신을 돕는데, 그것은 당신이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빌기를 간절히 바란다. 많이 빌수록 그것이 당신의 것을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데, 등가교환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에게 준 돈이 시주함에 가득하기에 그것이 당신에게 얻게 한다. 어떻게 얻는가? 문을 나서면 돈지갑을 줍거나, 직장에서 상여금을 좀 주거나, 어쨌든 온갖 방법을 다해 당신으로 하여금 돈을 얻게 한다.”
수련인에게 있어 바르지 못한 생각이 나왔는데 제때 인식하고 제거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것에 절하는 것과 같으며 그 좋지 않은 영체가 당신을 관장하게 된다. 사부님께서 드신 예에서 수련인을 조종하는 영체는 재물을 구하는 한 속인의 생각에서 기인했다. 그렇다면 수련인이 바르지 못한 일념을 내보냈을 때 그 영체의 힘이 얼마나 클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속인은 문밖에서 지갑을 주우면 우연이라 여기고, 보너스를 받으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 일을 잘해서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즉 겉모습만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만 생각하며,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나 좋지 않은 점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수련인은 문제를 이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수련인이 만나는 그 어떤 일도 우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 자신의 수련과 관련이 있다.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 한다. 타인의 잘못을 대할 때도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야 한다. 물론 상대방도 보통 같은 집착심이 있기에 그 일에 휘말린 것이므로, 모순의 양측이 모두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이치를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영체가 사람을 조종하는 것은 아주 진실한 일이다. 하지만 매사에 겉모습만 본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 실재라는 관념에 갇혀 일의 본질과 진실한 면모를 볼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실재라는 관념을 없애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는 것이다.
3. 사유방식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흔히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바로 타인의 좋지 않은 면을 보는 습관이다. 타인의 좋은 면은 보지 않거나 당연하게 여기면서, 좋지 않은 면은 예민하게 감지하고 마음속에 담아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질투심이 생겨나는 온상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당신이 지나치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로 집착하여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씀하셨다. 현재 내 층차에서 이해하기로, 타인의 좋지 않은 면을 중시하는 것은 사실상 구하는 것이다. 당신이 타인의 좋지 않은 면을 보기를 구하면 타인의 좋지 않은 언행이 끊임없이 당신에게 오게 되니, 이것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사람은 대부분 천상에서 내려온 신(神)이다. 좋지 않은 언행은 단지 후천적인 저층차의 오염일 뿐인데 이런 오염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는가? 마치 어떤 사람과 사귈 때 왜 상대방 옆에 있는 쓰레기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놓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상대방이 머지않아 버릴 물건이다!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유방식을 돌려세우도록 주의해야 한다. 타인의 장점을 많이 보고 단점은 가급적 보지 말아야 한다. 농담 삼아 말하자면, 단점 보길 좋아한다면 자기 자신을 보라. 매번 큰 수확이 있을 것이며 한 무더기의 단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이미 이렇게 한 무더기가 있는데, 남의 밭에 가서 파헤치느라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4. 전통문화의 결핍
한자는 신전문화(神傳文化)이며 내포가 박대정심하다. 자신이 남보다 강하고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에 대해 옛사람들은 ‘팽창(膨脹)’이라는 단어를 써서 형용했다.
이 단어는 정말 정확하다. 인체는 소우주인데 팽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자기 훼멸이다. 사부님께서는 《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알다시피, 팽창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체는 폭발하기 전에 팽창하게 되는데, 팽창하다 일정한 정도에 도달하면 한순간에 터지고 만다.”
자신이 남보다 강하고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은 ‘자아(自我)’이며 가장 근본적인 사(私)이자, ‘자심생마(自心生魔)’로 통하는 첫 번째 계단이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자심생마의 문제를 말씀하실 때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어느 날 그는 천목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 아주 똑똑히 본다. 그는 생각한다. ‘이 연공장(煉功點)에서 나만 천목이 잘 열렸는데, 나는 일반인이 아닐 수 있잖은가? 내가 리(李) 선생님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울 수 있고, 나는 이처럼 잘 배울 수 있어 누구보다도 나은데, 나는 일반인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사상은 이미 옳지 않다.”
전통문화에서 사람들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았으며, 천지를 경외하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았다. 자아를 중시하는 팽창은 설 자리가 없었으며 사람들이 추앙한 것은 겸손(謙卑)이었다. 《주역(易經)》에서 오직 겸괘(謙卦)만이 여섯 효가 모두 길(吉)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농담조로 《주역》 64괘 중 ‘최고인기상’을 뽑는다면 당연히 겸괘가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통문화 속에 겸손하게 사람을 대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고 훌륭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전통문화를 많이 공부하면 질투심은 자연히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전통문화는 속인들만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다. 수련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전통문화를 공부하는 것은 사람의 일면이 바로 잡히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이상은 개인 층차에서의 이해이며,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1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