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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언니네 집에 일어난 기적

【정견망】

넷째 언니와 형부 두 사람은 90년대에 이미 파룬궁(法輪功)을 접했다. 그들은 주변의 친척들이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생기가 넘치게 변하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기에, 대법을 매우 인정하고 지지해 왔다.

1999년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은 사악함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박해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는 실천으로 대법제자들을 도왔다. 이러한 큰 선행 덕분에 그들은 하늘의 보살핌과 가호를 받았으며, 인생의 큰 난관에 부딪혔을 때마다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었다.

넷째 형부의 이야기

1999년 이후, 나는 공산당의 박해로 인해 갈 곳이 없어 줄곧 넷째 언니네 집에 머물렀다. 형부는 박해로 유랑하게 된 다른 대법제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들을 기꺼이 거두어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주었다.

당시 많은 대법제자가 함께 모여 심득을 교류하고 싶어 했으나 마땅한 장소가 없어 고심하던 중, 내가 언니와 형부에게 집을 교류회 장소로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형부는 한마디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그들의 집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류의 장이 되었다.

내가 스프레이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쓰러 나갈 때면 형부는 기사가 되어 나를 데려다주었다. 한 번은 형부가 삼륜차에 대법제자 몇 명을 태우고 교차로 다리 위에 ‘파룬따파하오’ 현수막을 걸러 간 적이 있었다. 현수막이 길어 여러 명이 협력하여 펼치던 찰나, 갑자기 경찰 몇 명이 그쪽으로 다가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형부는 동수들에게 “현수막은 여기 두고 어서들 피하게, 내가 대처하겠네!”라고 말했다. 동수들이 급히 현장을 떠나고 형부 혼자 차와 함께 남았다. 형부는 순식간에 현수막을 접어 차 안에 넣고는, 그 위에 누워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다가온 경찰들은 형부가 혼자 차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만 보고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자리를 떠났다.

이후 형부는 택시 기사가 되었다. 밤에 대법제자들이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나갈 때면, 그는 삼륜차 대신 자신의 택시를 몰아 그들을 곳곳으로 안내했다.

형부의 이러한 선행은 결국 본인의 복보(福報)로 돌아왔다. 2021년 4월의 어느 아침, 형부에게 갑작스러운 심장 대동맥 박리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온몸에 기운이 빠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출근 준비를 하던 언니가 이를 발견하고 급히 119 구급차를 불러 지역 중심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의사는 상태가 너무 위중하여 “치료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후 다시 구급차를 타고 선양으로 향했으나 그곳 의사들 역시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선양으로 가는 길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소식을 들은 딸과 사위는 창춘에서 선양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들은 다시 구급차로 형부를 창춘으로 데려갔다. 창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날 심야였다. 다음 날 오전 10시경 수술이 시작되었다. 심장을 체외로 꺼내어 진행하는 대수술이었으며, 8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병원을 옮기는 길에 언니는 나에게도 전화를 했다. 나는 전화로 “진심으로 대법 사부님께 가지를 구하고, 형부 곁에서 끊임없이 ‘9자 진언’을 염송하라”고 당부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언니 가족들은 수술이 끝날 때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진언을 외웠다. 결국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형부는 병실로 옮겨졌다. 당시 병실에는 형부와 같은 증상의 환자들이 몇 명 더 있었으나, 수술 후 그들은 모두 사망했고 오직 형부만이 살아남았다.

수술 후 의사는 형부에게 술과 담배를 끊고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형부는 개의치 않고 약도 먹지 않은 채 이전처럼 술과 담배를 가까이했다. 재작년 언니와 함께 창춘으로 재검진을 갔을 때, 의사는 “이런 식으로 생활하면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형부는 여전히 자신의 방식대로 생활하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주변의 한 자산가도 형부와 같은 병에 걸렸으나, 발병 후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형부가 겪은 일은 그야말로 인간 세상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언니의 이야기

넷째 언니는 말솜씨가 뛰어나고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며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대법에 대해 매우 확고한 정념을 지니고 있으며, 나에게도 각별히 잘해 주었다.

2001년, 많은 대법제자가 베이징으로 떠나면서 나에게 수많은 진상 현수막과 자료들을 남겼다. 나는 이를 속히 배포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홀로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자 언니는 내가 혹여 화를 당할까 걱정하며, 현수막을 걸고 자료를 돌리는 일에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

한번은 내가 사악한 무리에게 불법 체포된 적이 있었다. 언니는 동수들과 함께 국보대대로 찾아가 나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언니는 공안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인데, 당신들은 어째서 나쁜 놈들은 잡지 않고 착한 사람들만 잡아가는가?”라며 당당하게 항변했다. 공안들이 대법제자의 편을 드는 언니를 보고 “당신도 파룬궁 수련생인가?”라고 묻자, 언니는 “나를 너무 높게 봐주는군! 파룬궁을 하려면 가부좌를 틀어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아나? 나는 그런 고생은 못 하네!”라며 지혜롭게 대처했다.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가 발생했을 당시, 언니는 백화점 판매원이었기에 의무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했다. 결국 억지로 세 차례 접종을 받았고, 그 부작용으로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했다. 2024년 여름, 언니는 형부의 재검진을 위해 창춘 병원에 동행했다가 딸의 권유로 전신 검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 폐결절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지역 병원에서 소염제 처방을 받은 뒤 경과를 지켜보고, 결절이 작아지면 괜찮으나 커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연말 다시 검사한 결과 결절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고, 언니는 지체 없이 창춘으로 이동해 딸과 함께 폐결절 절제를 위한 미세 침습 수술을 받았다.

수술 도중 의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와 보호자인 딸에게 말했다. “환자의 폐를 절개하여 긴급 병리 검사를 한 결과 수치가 좋지 않습니다. 폐를 예정보다 더 많이 절제하기로 결정했으니, 가족과 상의한 뒤 서명하십시오.” 딸은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어떻게든 살려야 하니 제가 서명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결국 언니는 우측 폐의 2분의 1을 절제했다. 수술 사흘 뒤 정밀 병리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는 언니의 병명이 폐암이었다고 고지했다. 천만다행으로 수술이 매우 시기적절하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암세포가 완벽히 제거되었고, 위험한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입원 기간 중 언니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고, 딸 역시 퇴원할 때까지 어머니 곁에서 9자 진언을 염송했다. 퇴원 후 언니는 매우 빠르게 회복하여 현재는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며, 올해 다시 직장에 복귀했다.

언니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대법이 그녀를 보살피시어, 우연한 기회에 병명을 알게 하시고 적시에 수술을 받게 하셨으며, 암세포를 정확히 제거하여 큰 난관을 화해시켜 주신 것이다.

결어

대법의 진상을 깨달은 중생들이 위기의 순간에 구도되어 무사히 고비를 넘긴 기적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재난이 닥칠 때 정성껏 외우는 9자 진언이 생명을 보호한다는 사실은 선량한 중생들에 의해 끊임없이 증명되고 있다. 넷째 언니와 형부의 신기한 경험 또한 이러한 수많은 기적 중의 한 페이지로서 밝게 빛나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