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령아(響鈴兒)
【정견망】
(1)
2002년 12월 하순, 광동 삼수(三水) 부녀 노동교양소 사악한 소굴에서 당시 나를 내부 초대소라고 속여서 데려갔다. 산장이라고 불렸으나 우리를 구금한 곳은 2층 건물(전체 건축물의 한 모퉁이였을 것이다)로, 상하 입구마다 감옥 문처럼 철문을 용접해 놓았다. 들어가면 여관 방 같은 방들이 몇 개 있었는데, 방마다 침대 두 개와 맞은편에 텔레비전 수납장, 텔레비전 등이 있었고 한 자 두께의 세뇌 교재(서적인지 DVD인지 알 바 아니었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가 있었다.
가소로운 것은 방 안에 처음부터 세로로 쓴 작은 종잇조각인 각종 ‘표어’가 가득 붙어 있었고, 심지어 텔레비전에도 이런 ‘수염(역주: 표어를 말함)’이 자라 있었는데 문화혁명과 매우 흡사했다. 이것이 바로 사악이 배치한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며칠 낮밤 동안 이른바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하며 계속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어야 했다. 우리를 ‘감시’하도록 강요받은(사악은 출소가 임박한 부녀 수감자를 골라 이를 협박 수단으로 삼았다) 수감자들은 모두 말했다. “우리는 20분도 못 버티겠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며칠 낮밤을 이렇게 견디나요.”
나중에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왜 바보처럼 남이 잡는 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이에 나는 문득 일어나 (대강 이런 뜻으로) 말했다.
“내가 왜 땅에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합니까, 나는 앉겠습니다.”
당시 장금제(張錦娣 당시 사악한 부녀 노동교양소 교육과장)는 나중에 이런 기세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당황해서 사람을 찾으러 갔고, 한참 후에 나보다 키가 작은 남자가 와서 나를 아래로 누르려 했다. 그때 나는 대법제자에게 뻗치는 이 손이 아주 무력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전기봉으로 미친 듯이 나를 지질 때, 나는 마음속으로 나직이 “사부님.”을 불렀다. 그러자 즉시 다른 공간에서 커다란 두 손이 한 번 휘두르는 것을 느꼈고, 이곳에서 나는 전기봉 위 두 개 전기 침의 찌르는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본래 전기봉이 아프지는 않았으나 발바닥 피부가 비록 두꺼워도 그 침이 찌르면 약간의 통증은 느껴졌었다.
나중에 경찰이 나에게 자신들이 온갖 방법을 다 썼으나 여전히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들은 “당신(들)을 보면 자비감이 느껴져요”라고 말했고, 어떤 경찰은 “반석과 같이 견고하다”라고 말했다.
어느덧 해외에서 생활한 지 20여 년이 되었다. 대법제자가 줄곧 사부님의 보살핌과 신의 주시 아래 오늘날까지 걸어왔음을 회상해 본다. 당시에 대법제자를 해치려던 자들은 그토록 무력했으며, 지금도 그렇다.
(2)
십여 년 전 내가 미국 동남부에 살 때였다. 어느 주말 이른 아침, 우리는 월마트 맞은편의 한 공원에서 연공하고 있었다. 연공이라는 것이 당연히 모두 눈을 감고 하는 것인데, 당시 우리는 가부좌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자가 있었기에 보통 공휴일에는 사람들이 이곳의 바비큐 그릴을 사용하거나 긴 탁자와 벤치에서 쉬기도 했고 주변에는 조깅 코스도 있는, 모두가 활동하러 오는 공원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앉아 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절(강소, 절강) 지역 말투가 들려왔다. “강택민은 정말 좋은 물건이 아니야. 사람들은 그저 연공을 할 뿐인데 기어이 사람들을 탄압하려 하니. 이 사람들은 멀쩡한데 사람들을 박해하려 들다니 천리가 없구나……”
여러 해가 지나 원문 그대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중국 남방 출신의 한 어르신이 (평온하게 연공하는) 사람들을 보고 의분이 북받쳐 참지 못한 것이었다. 아쉬운 점은 당시 내가 일어나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이들은 어떠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연공을 마쳤을 때 주변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니 시종 그 소리만 들었을 뿐 그분은 뵙지 못했다.
당시 그 지역 화인(華人)들이 우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는데, 아마 사람들이 중국 대륙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시종 양심이 있어 마치 거울처럼 정사(正邪)와 선악을 비추어 본다.
(3)
역시 20여 년 전, 우리가 맨해튼에서 반혹형전을 개최했을 때 전기 충격으로 얼굴이 망가진 여자 동수의 사진을 보고 한 여성 관광객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토록 오랜 세월 세상의 수많은 중생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겠다는 웅지를 품고 사해(四海)를 노닐며 천하를 집으로 삼아 왔다. 이 세상에서 유랑하는 아이들은 창세주께서 어느 날 우리를 천상의 고향으로 데려다주시기를 고대하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2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