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올해 63세로, 1996년에 인연이 닿아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자신의 수련 여정을 돌이켜보니 만감이 교차하며 비바람 속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加持)를 떠날 수 없었으며, 한 걸음마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기울여 주신 심혈이 녹아 있었다. 온 천하가 함께 축하하는 5.13이라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날을 맞아, 지난 30년 수련 과정의 일부를 사부님께 보고하며 대법의 위대함과 사부님의 자비하심을 증명하고자 한다.
1. 인연이 닿아 법을 얻다
96년에 시어머니께서 먼저 법을 얻으셨는데, 보도원이 우리 집에서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상영하겠다고 하여 나도 함께 듣게 되었다. 사부님의 말씀이 너무나 좋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는데, 만약 모든 사람이 이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시어머니께서는 수련 후 원래 몸에 있던 병이 어느덧 사라졌고 심성도 좋아지셨다. 시어머니의 변화를 보고 온 가족이 함께 연공했다. 나는 당시 30대였고 신체가 건강하여 병을 고치기 위해 연공한 것은 아니었다. 수련 후 몸과 마음이 즐거웠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며 그 기쁨이 가득했다.
99년 사악이 대법을 박해한 후, 나는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다소 망설여지고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밖에서 못 하게 하면 집에서 하겠다,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라고 굳게 생각했다. 그래서 줄곧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다.
2. 업무 속에서 ‘쩐싼런’을 실천
나는 산부인과 의사인데, 몇 년 전 사악한 당이 ‘계획생육(산아제한)’ 정책을 집행할 때 과장이었기에 ‘유도분만(낙태)’을 여러 차례 시해해야 했다. 비록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으나 무지한 중에 많은 ‘업’을 지었다. 이번 생의 마난도 이와 관련이 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이것이 살생 행위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직장 지도자에게 더 이상 과장을 맡지 않겠으며 유도분만 업무도 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지도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당신의 기술이 가장 좋고 업무에 매우 적합한데 왜 그만두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지도자에게 “나에게는 신앙이 있고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살생하는 일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도자는 나를 이해해 주었고 내 요청을 들어주었다.
사무실에 동료 A가 있었는데, 줄곧 나의 업무 능력과 전문 수준을 질투하여 자주 등 뒤에서 나를 곤란하게 했다. 나는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요구하며 그녀를 진심으로 대했고 따지지 않았다.
우리 둘 다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동료 A는 자주 잘못 기재하여 지도자의 비판을 받았다. 지도자는 “당신의 보고서는 앞으로 아무개(나를 지칭)와 대조해 보고, 계산이 맞으면 그때 제출하라. 계속 틀리지 말고”라고 말했다. 그 후 그녀는 ‘영감’이 떠올랐는지 꾀를 부려 계산하지 않고 직접 나의 수치를 베껴서 보고했는데,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 해에 우리 여섯 명이 직급 승진 시험에 응시했다. 시험지를 제출한 후 감독관이 “이 사람의 시험지는 필수 항목이 빠졌고 신분증 번호가 없어 불완전하므로 무효 처리해야겠다”라고 말했다. 보니 바로 동료 A의 시험지였다. 나는 이전의 감정을 잊고 즉시 나가서 동료 A에게 알려주었고, 그녀는 급히 돌아와 보충했다.
나의 선한 마음이 그녀를 감동시켰고, 그녀는 진심으로 “대법제자는 믿음직한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직급 승진은 급여와 직결되는데, 우리 여섯 명이 시험을 쳤고 나만 과장이었으나 나는 승진하지 못했다. 나중에 한 동료가 내게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줄줄이 지도자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당신만 보내지 않아서 탈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요구하며 부정한 바람을 일으키지 않고 다투거나 싸우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따랐다. 나의 업무와 기술 능력은 모두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기에 내가 승진하지 못한 것을 지도자도 미안하게 생각하여, 나에게 승진한 사람들과 똑같은 급여를 지급했다.
3. 남편과의 연원(淵源)을 선해(善解)
남편은 나의 학교 선배로 재학 중에 알게 되었는데, 당시 그가 오랫동안 나를 쫓아다닌 끝에 교제에 동의했다. 우리의 결혼은 어느 정도 감정적 기초가 있었고 결혼 후에도 한동안 안정되고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온 가족이 연공할 때 그도 함께 연공했다.
남편은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는데, 사악한 당의 무신론 영향을 받았고 사회 풍조의 오염에 따라 단위의 한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서서히 나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참으면서 겉으로는 다투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그의 무정함에 화가 나고 원망스러워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대법은 내 마음속의 답답함을 풀어주었다. 나는 평화롭게 대법의 법리로 남편을 일깨워주며 이렇게 하는 것은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이로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겉으로는 대답했지만 내심은 변하지 않았고 뒤에서는 여전히 제멋대로 행동했다. 남편은 내가 더 이상 이 일로 고민하지 않게 하려고 나를 따라 계속 법공부를 하는 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추악한 행위를 감추기 위해 “안심해라, 나 대법 배우고 있으니 나쁜 짓 안 할 거다”라고 내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몇 년 후 남편에게 갑자기 ‘뇌경색’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선한 마음으로 그를 대하며 회복을 돕고 산책을 함께했다. 대법의 법리로 그를 이끌어주며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남편은 한때 상태가 호전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사부님께서 그에게 주신 개과천선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그 여직원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는데, 이것이 아마도 남편의 겁난이었는지 남편은 마음속으로 그녀를 내려놓지 못했다. 구세력은 남편이 대법을 이용하는 좋지 못한 마음을 보고는 가혹하게 손을 썼다. 그 후 다시 대면적 ‘뇌출혈’이 발생하여 병세가 더욱 심각해졌고 생활을 거의 자립할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아픈 10년 동안 나는 정성을 다해 남편의 일상을 돌보았다. 매일 배설물을 치우고 닦아주고 음식을 먹이고 몸을 뒤집어주며 곁을 지켰다. 그를 돌보느라 나의 체중은 한때 60kg에서 40kg으로 줄어들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 모든 피로는 대법 법리의 세탁 아래 점차 가련함과 자비로 변해갔고, 남편이 대법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가엽게 여겼다. 10년의 질병 고통 속에서 남편도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남편의 별세에 대해 나는 평온하게 ‘마음이 고요한 물과 같아(心如止水)’ 사랑도, 원한도, 원망도 없었다. 남편과 나 모두 해탈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선명한 꿈을 꾸었다. 남편이 높은 창가에 서 있고 나는 창가 옆에 서 있었는데, 그의 몸 무게중심이 온통 나에게 쏠려 있었다. 점차 내가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내가 피하면 남편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비켜섰고, 남편은 곧 땅으로 떨어졌다. 가서 보니 그는 떨어져 죽어 있었다. 깨어나서 나는 깨달았다. 아마도 어느 생 어느 세상에서 내가 그에게 상처를 주었기에 남편이 이번 생에 빚을 받으러 온 것이며, 모든 것에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동수들은 내가 병든 남편을 10년 동안 돌본 것을 알고는 감탄하며 말했다.
“며칠 전 가족이 입원해서 우리 네 명이 보름 동안 교대로 간병했는데 반년처럼 길게 느껴졌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당신 혼자서 거동 못 하는 남편을 10년이나 돌봤으니 정말 쉽지 않고 대단하다.” 파룬따파가 내가 이 10년의 풍파와 마난을 지나오도록 지탱해 준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성취시키기 위해 고심하여 안배하신 것으로, 역사 속에서 나와 남편의 은원(恩怨)을 이용하여 내가 이 업력을 소멸하게 하시고 또 마난 속에서 제고하게 하신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남편이 좋은 곳으로 가고 다시는 윤회의 고통을 겪지 않기를 묵묵히 빌었다.
4. 법을 잘 배우는 것이 수련의 근본 보장
남편을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지쳤고 당시 아이도 어렸다. 하지만 나는 쓰러질 수 없었다. 이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동수들의 영향으로 나는 법공부 소조에 참가하여 진지하게 법을 배우고 외웠다. 오직 대법만이 나를 강하게 할 수 있고, 나를 마난 속에서 이끌어주며 생활에서 부딪히는 모순과 고통을 수련의 각도에서 바라보게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안으로 닦으며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고 조금씩 자신을 닦아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었으며, 수련 중에서 점차 성숙해졌다.
나는 시간을 아껴 법을 배우고 외웠으며 조금의 시간도 지체하지 않으려 했다. 법을 잘 배우고 많이 배우며 발정념을 많이 하는 것에 더욱 치중했다. 동수들의 교류 문장을 보고, 법을 외울 때는 한 단락씩 외우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한 절씩 외웠다. 지금은 하루에 한 강의를 외울 수 있으며 매일 사부님의 각지 설법도 공부한다. 이미 몇 년째 견지하고 있다.
5. 일상생활 속에서 법을 실증
박해 초기에는 동수들과 함께 표어를 붙이고 진상 자료와 시디를 배포했으며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는 일을 인연에 따라 계속해 왔다. 처음에는 제삼자의 신분으로 진상을 알렸는데, 두려운 마음이 있을 때는 당당하게 법을 실증하지 못했다. 동수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법에 부합하지 않음을 의식했고, 점차 두려움을 없애니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떠난 후 나는 아이를 따라 타지에 거주하게 되어 기본적으로 혼자 수련하는 독수(獨修) 상태였다. 동수가 준 ‘자유문’으로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었고 명혜라는 ‘집’과 계속 연락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인터넷 접속 시 보안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 아이의 속인용 컴퓨터로 명혜망에 접속하고 션윈을 보았다.
아이는 어릴 때 연공을 한 적이 있어 대법이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고 생활 속에서 대법의 요구대로 자신을 다스렸다. 대학 졸업 후 대도시에서 아주 순조롭게 이상적인 직장을 찾았다. 한번은 우리 둘이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우리가 산 것은 비싼 가격의 토마토였으나 계산원이 저렴한 가격으로 계산했다. 마트에서 나온 후 아이가 영수증을 보고 가격이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아이는 “우리 돈을 돌려주고 차액을 보충해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잖아요(不失不得)”라고 말했다.
계산원은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며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요? 다들 돈을 적게 내길 바라는데”라고 말했다. 우리는 계산원에게 “우리는 신앙이 있고 쩐싼런을 믿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줄곧 동수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동수를 만나 교류하기를 희망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보살펴주고 계셨다. 어느 날 고향 동수와 연락이 닿았는데, 동수를 보니 정말 친척을 만난 것처럼 기뻤다. 그 후 우리 둘은 자주 짝을 지어 공원에서 대면 진상을 했다. 한번은 식당에서 식사하며 동수와 협력해 식당 여주인에게 진상을 알리기도 했다.
나는 새 컴퓨터를 샀고 동수가 암호화 시스템 설치를 도와주었다. 그제야 이전에 속인용 컴퓨터를 쓸 때 사부님께서 나의 안전을 보살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는지 알게 되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와 교류하며 동수는 나에게 법을 외우고 자신의 수련 경험을 정리하여 교류 체험기를 써보라고 격려해 주었으며, 앞으로의 수련 길을 더욱 명확히 해주었다. 도움을 준 동수에게 감사한다.
맺음 말
법을 얻은 지 30년, 수련한 지 30년,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만약 내가 법을 얻지 못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대법은 새로운 나를 만들어 주어 생사를 담담히 보고 명예와 정, 이익을 내려놓으며 생활 속의 모든 것을 태연하게 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대법에 감사드리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이토록 오랜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시고 얼마나 감당해 주셨는지 알 수 없다. 나를 지옥에서 건져내어 깨끗이 씻어주시고 법을 얻어 수련하도록 인도해 주셨으며, 나를 위해 산더미 같은 업력을 감당해 주시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 가르쳐 주셨다. 한결같이 보살펴 주신 사부님께 은혜를 느낀다!
제자는 보답할 길이 없으니 오직 수련의 길에서 더욱 정진해 조속히 각종 사람마음과 집착을 제거하고 합격한 제자가 되어 마지막 정법의 길을 안정되고 바르게 걸어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사부님을 따라 성결한 천국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