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화(桂花)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 (《홍음(洪吟)》).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을 공부하는 것에 대한 많은 동수(同修)들의 문장을 보았는데,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동수들은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고요히 하지 않고 법을 공부하는 것은 집착심을 품고 법을 공부하는 것이며, 그것은 수련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간 낭비일 뿐더러 심성(心性)도 제고할 수 없다고 했다.
나 역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을 공부하려 했다. 법을 공부할 때는 오직 법공부만 하고, 사람의 욕망을 눌러 내리며, 눈앞에 해야 할 일이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찰, 개인 이익 속에서의 충돌, 칠정육욕(七情六欲) 등을 생각지 않고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아 고요히 법을 공부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가 물욕이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수련하다 보니, 때때로 완고한 인심(人心)이 뒤집혀 나와 방해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먼저 정념(正念)을 발해 청리하고, 심태가 평온해져 사상에 잡념이 없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법을 공부했다. 또한 마음속으로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荡尽妄念)” (《홍음》)를 자주 반복해 외우며 집착심을 제거했다. 내가 끊임없이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며 고요히 법을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정념 또한 끊임없이 강화됨을 발견했다. 이제는 바르지 못한 사상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면, ‘제거한다, 제거한다, 제거한다’라는 일념만으로도 그것을 소멸할 수 있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특히 법 공부 중에서, 여러분은 반드시 참답고 참답게 배워야 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법 공부를 함에 많은 지역에서 일부 정황이 나타났다. 어떤 정황인가? 어떤 지역은 형식에 치우친다.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제고해야 할 때이건만, 오히려 마음에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진지하게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법을 잘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수련하면서 굽은 길을 걷지 않도록 인도해 주는 명등(明灯)이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세 가지 일 중 첫 번째 일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잘해 나갈 수 있는 근본적인 보장이며, 스스로 법리(法理)를 명백히 한 후 자신의 착실한 수련 실천을 지도하는 근거가 된다. 아울러 자신이 수련 중에서 일을 할 때 정념이 있는지 없는지, 법 속에서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신뢰할 수 있는 보증이기도 하다. 나는 반드시 법을 잘 공부해야 하며, 주의식(主意识)을 강화해 자신이 법을 공부하고 있음을 명명백백히 알며 법을 안으로 배워 가야 함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를 성취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파룬(法輪)과 내외의 기제를 심어주어 우리로 하여금 법이 사람을 연마하게 하셨으며, 매 순간 사부님의 법신(法身)이 우리를 보호하고, 보살피며, 끊임없이 점화(点化)해 주고 계신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修在自己 功在师父)” (《전법륜》).
이와 동시에 나는 다음과 같은 점을 체득했다. 우리에게 이런 사부님이 계시고, 우리 또한 법을 위해 온 생명인데, 법을 잘 공부하지 않을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우리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信师信法)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하고 있는가? 오직 법을 잘 공부해야만 사부님과 법을 믿는 정념을 강화할 수 있다. 마음을 고요히 하여 법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사부님을 공경하지 않고 법을 공경하지 않는 표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글자마다 그 뒤에는 사부님의 법신이 계시고, 겹겹이 쌓인 서로 다른 층차의 불·도·신(佛道神)들이 계셔 우리의 심성이 도달한 위치를 바라보고 계시며, 서로 다른 층차의 법리를 우리에게 점화해 주시기 때문이다. 만약 심성을 닦아 올리지 못하면 우주 특성의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오직 진지하게 법을 잘 공부하고, 심성을 제고하며, 능동적으로 법에 동화되어야만 매 시각, 매사에서 자신이 대법도(大法徒)임을 잊지 않을 수 있다.
법을 공부하는 심태가 법공부의 효과를 결정한다. 나는 법을 공부할 때 수량을 구하지 말아야 함을 깨달았다. 불가(佛家)에서는 공(空)을 말하고 도가(道家)에서는 무(無)를 말하듯,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오직 경건하고 공손하게 법을 공부하며 사상을 집중해야 한다. 대법은 소설이 아니기에 대충 보거나 듣는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법은 속인(常人 – 일반인)을 초월한 천법(天法)이다. 속인을 초월한 성실함과 믿음, 속인을 초월한 집중이 있어야만 비로소 대법의 진체(真谛)를 깨달을 수 있고 천법의 오묘함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착실한 수련의 과정이며, 해내는 것이 바로 착실한 수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반드시 모든 방해를 배제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바르게 걸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7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