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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과정 중의 단편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해 글을 쓸 줄 모르기에 딸이 대신 받아 적었다.

법을 얻어 수련하고 박해에 반대하며 중생을 구하다

나는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으로, 1998년 가을에 법을 얻었다. 법을 얻던 그해에 큰 병에 걸려 기운이 하나도 없고 걷기조차 힘들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결핵성 흉막염으로 물이 쌓이고, 담낭염, 위염 등의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이 병은 현상 유지나 할 뿐 한 번에 뿌리를 뽑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야말로 병은 산이 무너지듯 찾아왔으나 낫는 것은 실을 뽑아내듯 더디기만 했다. 눈앞에 쌓인 엄청난 약을 바라보며 마음이 참으로 괴로웠고,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 알 수 없었다.

손아래 시누이(지금의 동수)가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집에 병문안을 왔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는 시댁의 한 친척이 파룬궁을 연공하는데, 연공을 하고 나서 병이 다 나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병을 고치고 싶다는 마음과 살고 싶다는 갈망을 품고 나는 “그럼 우리 같이 보러 가요”라고 말했다. 우리 둘은 그녀의 친척 집으로 향했다. 마침 그 친척 집에서는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틀어놓고 있었다. 나와 시누이는 자리에 앉아 동수와 함께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자마자 법이 귀에 쏙쏙 들어왔고, 그 길로 나와 시누이 모두 법을 얻었다! 법을 다 듣고 나서 나는 이것이 병이 아님을 깨달았고, 집에 돌아와 약을 전부 버렸다.

법을 얻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내 신체에는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병증이 전부 사라졌고, 걸을 때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으며 온몸에 힘이 넘쳐흘렀다. 마침 그때가 가을 수확 철이었다. 흔히 봄철 사흘은 가을철 하루 바쁜 것만 못하다고 하듯, 농촌의 가을 걷이는 매우 바쁘고 힘들다. 벼를 베고, 묶고, 싣는 등의 힘든 일을 내가 모두 해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마차로 벼를 실어 날랐다.

마차에 짐을 실을 때 남편이 묶은 벼 단을 한 단씩 마차 위로 던져주면, 내가 마차 위에서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벼가 이미 아주 높게 쌓였을 때, 마차를 끌던 말이 갑자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관성에 의해 마차 아래로 고꾸라져 땅바닥에 심하게 부딪혔다. 남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서둘러 괜찮냐고 물었으나, 나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바닥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며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살펴보니 다친 곳이 정말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셨음을 알았고, 다시 계속해서 마차에 짐을 실었다.

법을 얻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사악한 당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탄압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단체 법공부와 연공 환경을 잃어버렸다. 마을 치안 주임과 서기가 대법제자들의 집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대법 서적을 몰수했다. 우리 집에 왔을 때 내가 책을 내놓지 않자, 그들은 아버지를 모셔왔다. 아버지는 수년간 공산당의 독해를 깊이 입으셨고 공산당이 사람을 정죄하는 악독함을 잘 아셨다. 내가 연루될까 봐 두려우셨던 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셔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책을 내놓으라고 핍박하셨다. 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나는 어쩔 수 없이 《전법륜》 한 권을 내주었다. 책을 내주고 난 후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사부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공산당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연공하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당시에는 그저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았을 뿐, 박해에 대한 이해는 깊지 못했다.

훗날 법리를 명백히 알게 되었고, 동수들도 하나둘씩 걸어 나와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동수들과 함께 사람을 구하고 대법을 입증하는 길에 나섰다. 동수가 진상 자료를 가져오면 함께 나가 배포했다. 우리는 보통 한밤중에 나가 자료를 돌렸다. 농촌에는 개가 매우 많아서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발정념을 했다. ‘마을의 개들은 짖지 말라, 우리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다’라고 염을 하면 개들이 정말로 짖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 아주 많았고, 당시에는 밤새도록 걸어도 지치는 줄 몰랐다.

그 시절 사악의 기세는 매우 등등했다. 어느 여름날 한낮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농촌의 여름은 방 안이 더워 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 있었다. 내가 주방에서 밥을 푸고 있을 때, 파출소 직원들과 마을 치안 주임이 우리 집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를 납치하러 온 것이었다. 나는 얼른 손에 쥐고 있던 밥주걱을 던져버리고 뒷문으로 나가 뒷마당 서쪽 담벼락을 향해 달렸다. 속으로 ‘서쪽 담벼락은 집 문과 바로 마주 보고 있어 그들이 나를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몸을 돌려 동쪽 담벼락으로 달렸다. 동쪽 담벼락은 아주 높아서 손을 뻗어야 겨우 담장 꼭대기에 닿을 정도였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뛰어넘지 못했다. 이때 그들은 이미 우리 집 방 안으로 들어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우리 집 개도 미친 듯이 짖어댔다. 다급한 상황에서 내가 힘을 주자, 한 가닥 강한 힘이 단숨에 나를 위로 솟구치게 도와주었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나는 담장 밖으로 뛰어내려 이웃집 뒷마당에 있는 창고로 달려갔다. 짚단 더미 위에 앉아 발정념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깥의 개 짖는 소리도 멈추고 사람들의 고함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사악의 박해가 사부님의 보호 속에서 해체된 것이다. 이웃집 오빠가 우리 집 마당에서 사람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 와보았다가, 가마솥에 밥이 끓고 있는 것을 보고 대신 밥을 퍼주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그 높은 담장을 결코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늘 제자의 곁에서 제자를 보호해 주고 계신다.

가족들이 진상을 알고 박해를 제지하다

당시 딸은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아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는데,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농사지어 버는 돈으로는 도저히 아이들의 학비를 댈 수 없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야 했다. 동수들은 내 어려움을 보고 저마다 원조의 손길을 내밀어 나를 도와주었다. 마을 서쪽 끝에 사는 여자 동수는 자신이 아끼고 저축한 돈을 가져와 아이들 학비에 보태라며 건네주었고, 서쪽 마당의 한 노동수는 우리 집 농사에 마차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선뜻 자신의 마차를 빌려주었으며 우리 집 농사일과 벼 운반을 도와주었다. 동수들의 아무 조건 없는 무사(無私)한 도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오늘날처럼 돈과 이익을 다투는 사회에서 어디에 이토록 좋은 사람들이 있겠는가? 오직 우주대법만이 이처럼 순수하고 선량한 생명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동수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그 힘든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지금은 형편이 좋아져 두 아이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있다. 게다가 두 아이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고 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지지하며, 무슨 일이 생기면 대법의 기준으로 가늠해 보기도 한다. 딸이 대학교 2학년 때 학비를 내려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았다. 총 1만여 위안을 인출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통장을 확인해 보니 돈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3만 위안이 더 늘어나 있었다. 딸은 조금 전 행원의 업무 실수가 있었음을 직감하고 곧바로 은행으로 차를 돌렸다. 행원을 찾아가 돈을 돌려주자 행원은 연신 고마워했다. 나는 딸의 올바른 행동에 기뻤고, 딸이 대법 속에서 수익을 입었음을 알았다. 딸의 가장 큰 소원은 장차 은행에서 일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정말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졌다. 졸업 후 실제로 은행에 취업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딸이 대법이 좋음을 믿고 복보(福报)를 받은 것임을 안다.

아들은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교제하는 대상이 생겼다. 그런데 상대방 어머니가 내가 파룬궁을 연공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 혼사를 반대했고, 결국 두 아이는 헤어지게 되었다. 남편은 이 사실을 알고 매일 나에게 화를 내며 내가 아이의 앞길을 막았다고 원망했다. 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오직 사부님만을 믿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 앞뒤의 모든 일을 모두 사부가 당신에게 책임져 주고 있는데 당신이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가? 당신이 걱정한다고 될 일인가? 당신이 배치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말해서 될 일인가? 나는 여러분에게 이 이치를 말하지 않았는가? 그에게 복이 없다면 당신이 무엇을 배치하든지 모두 소용이 없다. 그러나 사부는 오히려 당신에게 배치해 줄 수 있으며, 있든지 없든지 나는 모두 배치할 수 있다. 당신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기만 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모두 당신에게 책임져 줄 것인데, 이를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당신들이 수련을 잘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다.”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그렇다, 사부님께서 다 관할해 주시는데 내가 무엇을 걱정한단 말인가?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겼고, 사부님의 안배가 가장 좋은 것이다. 결국 두 아이는 다시 화해했고 그녀의 어머니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공산당의 이른바 ‘청령(清零, 수련자를 영으로 만들겠다는 소위 강제 전향 공작)’ 행동이 있던 해에, 마을 간부들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에게 보증서를 쓰게 하라고 압박했다. 아들은 그 자리에서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아들을 위협하고 공갈했으나, 아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았다. 전화로 통하지 않자 사악은 직접 성도(省都)에 있는 아들의 직장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엉뚱한 부서로 찾아가는 바람에 그 부서의 상사에게 “그 친구 어머니가 연공하는 게 그 사람과 무슨 상관이요? 당신들은 할 일이 그렇게 없소?”라는 핀잔만 들었다. 결국 그들은 코가 납작해져서 잿빛 안색으로 쫓겨 갔다.

하지만 사악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현성(縣城)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딸의 직장으로 찾아갔다.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딸에게 나와 주고받은 영상 채팅 내용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며 화면을 캡처해 제출하라고 압박했다. 내 딸은 그 자리에서 거절하며 말했다.

“첫째로 저희 어머니가 동의하지 않으시니 드릴 수 없고, 둘째로 이것은 시민의 초상권에 속하므로 제가 임의로 당신들에게 넘겨주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짓입니다.”

그들은 강압적인 태도가 통하지 않자 감언이설로 딸을 구슬리려 했으나, 딸은 그들의 사술에 넘어가지 않았다.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화를 내거나 다투지도 않으면서 당당하게 그들과 대화했다. 그들은 결국 이번에도 아무런 소득 없이 멋쩍게 물러갔다.

훗날 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날 어떤 신비로운 힘이 나를 가호해 주는 것 같았어요. 제 사로(思路)가 그렇게 명석했던 적이 없었어요.”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가지(加持)임을 알았고, 딸은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렸다. 마을 간부들은 두 아이의 방어벽을 뚫지 못했고, 이 일은 결국 흐지부지 끝났다. 그 이후로 그들은 나를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겨울, 그 마을 서기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맺음말

정법(正法)은 이미 마지막에 이르렀다. 제자는 더욱 정진하고 또 정진할 것이며, 지난 세월 동안 보호해 주시고 가호해 주신 사부님께 엎드려 절을 올린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