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清風)
【정견망】
손빈(孫臏)과 방연(龐涓)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매우 익숙하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방연이 산을 내려올 때 스승인 귀곡자가 그에게 준 여덟 글자, 즉 “양을 만나면 영화롭고, 말을 만나면 고달프리라(遇羊而榮,遇馬而瘁)”라는 예언이 결국 모두 그대로 응험했다는 사실이다.
역사가 이 이야기를 남긴 함의 중 한 가지는 질투심이 결국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는 이치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방연은 자신의 생명으로 이 이치를 연기했으며, 사람들이 역사상 질투심의 사례를 언급할 때 신공표(申公豹) 외에 대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바로 방연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득도한 고인(高人)인 귀곡자는 손빈과 방연이 산을 내려간 후 무엇을 만나게 될지, 방연이 손빈을 어떻게 대할지, 그리고 그들 각자의 최종 결말이 어떠할지를 사실 완전히 알고 있었다.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생생하게 다 내다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를 얻은 고인으로서 자비로운 마음이 일어났을 법하고, 손빈이 무릎뼈를 깎이는 고통이 더없이 극심했을 것임이 분명한데, 왜 손빈에게 제때에 피하라고 일러주거나 방연을 제지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 역사라는 연극의 대본이 그들 자신의 업력에 기타 요소가 더해져 더 높은 층차의 생명에 의해 편성되고 정해진 것임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바꿀 수 없었으며 감히 바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 자신마저도 이 연극 속의 한 배역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번은 전등을 갈러 갔을 때의 일이다. 전등이 높아 의자를 딛고 올라서야 손이 닿았는데, 발을 의자에 디디자마자 갑자기 무릎 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엄습해 왔다. 나는 의자에서 거의 떨어질 뻔했다가 이를 악물고 겨우 버텨냈다. 몇 분 후 머릿속으로 다섯 글자가 스쳐 지나갔는데, 바로 ‘손빈과 방연’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역사상 방연을 연기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심성을 지키며 병원에 가지 않고 이를 자신이 넘겨야 할 관(關)으로 보았다. 약 2주가 지나자 무릎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에 대해 나는 몇 가지 감오(感悟)를 얻었다.
1. 역사는 도도히 흘러왔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의 수는 인류 전체 총수에 비하면 봉황의 깃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극히 드물다. 그들은 모두 오늘날의 대법제자들이 연기한 것이다. 덕을 쌓았든 업을 지었든 그 결과는 모두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덕을 쌓은 것이야 당연히 좋겠지만, 업을 지은 경우는 비참해진다. 다행히 사존께서 자비로우시어 우리를 위해 대부분을 감당해 주셨다. 내가 연기했던 이 방연의 경우만 보더라도, 만약 온전히 나 혼자서 그 업을 갚아야 했다면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것은 내가 연기했던 수많은 좋지 못한 역사적 배역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2. 만약 어떤 집착심 때문에 역사 속에서 쓴맛을 본 적이 있다면, 이번 생에 그 집착심을 버리기는 비교적 쉽다. 나 자신도 질투심 방면에서는 아주 일찍, 그리고 비교적 철저하게 버릴 수 있었다. 반대로 역사 속에서 그 집착심으로 인해 곧바로 과보를 받지 않아 오히려 그것이 강화되었다면, 이번 생에 그것을 버리기는 비교적 어려워진다. 내가 색욕심(色慾心) 방면에서 바로 이랬는데, 번복이 심하고 미련을 떨며 깔끔하게 끊어내지 못했다.
3. 사존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제거한다”고 하신 것은, 단지 이번 생에 접한 오색찬란하고 형형색색의 것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생세세에 각종 역사적 배역을 연기하면서 생명 깊은 곳에 남겨진 흔적까지도 포함한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몇 마디 말이 아니며, 사존의 감당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정진(精進)해야만 사존의 고도(苦度)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