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어(心語)
【정견망】
《증광현문(增廣賢文)·상집(上集)》에 이런 말이 있다. “의도하고 심은 꽃은 피지 않고, 무심코 심은 버드나무는 그늘을 이루네(有意栽花花不發, 無心插柳柳成蔭).”
많은 사람이 이 구절을 읽을 때 흔히 ‘무의식중에 일을 하는 것이 더 성공하기 쉽고, 의도적으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버드나무는 원래 생명력이 극히 강해서 가지 하나를 흙에 꽂아두고 물만 만나면 쉽게 살아난다. 반면 꽃은 대부분 연약해서 정성껏 길러도 순조롭게 자란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진짜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의도(有意)’와 ‘무심(無心)’이 아니라, 심은 대상 자체의 차이이다.
하나는 본래 살아남기 어려운 꽃이고, 다른 하나는 극히 잘 살아나는 버드나무 가지인데, 두 대상의 조건이 처음부터 다른 것을 어떻게 동일한 기준에 두고 비교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 유행했던 유머가 하나 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서 첫 번째 학생에게 물었다.
“하늘에 태양이 몇 개 있지?”
학생은 쉽게 대답했다. “한 개요.”
이어 두 번째 학생에게 물었다.
“하늘에 별이 몇 개나 있지?”
두 번째 학생은 당연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결과를 두고 첫 번째 학생은 똑똑하고, 두 번째 학생은 어리석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질문 자체의 난이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전제 조건을 간과한 채 결과만 보면 이처럼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쉽다.
어릴 적 집에 전기담요를 하나 샀는데, 사용해 보니 온도가 너무 낮아 백화점에 가서 교환을 요구했던 기억이 난다. 판매원은 당연히 바꿔주기 싫어했기에 그 자리에서 직접 시연을 해 보였다.
그녀는 내가 가져온 (문제가 있는) 전기담요는 접어서 덮어두고, 새 전기담요는 완전히 펼쳐놓은 채 동시에 전원을 켰다. 십여 분 뒤, 그녀는 나에게 온도를 비교해 보라며 두 제품의 온도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접어둔 전기담요는 열이 모이기 쉽지만, 펼쳐놓은 전기담요는 열이 대량으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두 담요의 상태가 완전히 다른데 전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결국 매니저를 찾아가 교섭한 끝에야 새 전기담요로 교환할 수 있었다.
그 판매원도 전기담요에 문제가 있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 단지 조건의 차이가 만들어낸 착시를 이용해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던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바라볼 때 결코 결과만 보아서는 안 되며, 일이 발생한 기본적인 조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건을 떠나 결과를 논하면 대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대법 스승님께서는 《전법륜》 제4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에게 빌지 않고 향을 피우지 않아도, 진정하게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수련하면, 그가 당신을 보기만 해도 특별히 기뻐한다. 당신이 밖에서 나쁜 짓은 다 하면서 당신이 그에게 향을 피우고 절을 한다면, 그가 당신을 보기만 해도 괴로워하는데, 바로 이런 이치가 아닌가? 진정한 수련은 자신에 의거해야 한다.”
수련의 관점에서 볼 때, 한 사람이 법(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심성(心性)을 제고한다면 신불(神佛)은 자연히 도움을 줄 것이다. 반대로 나쁜 짓을 일삼는다면 아무리 많은 향을 피우고 절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이는 신불이 누구를 편애하거나 차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가 다르므로 그에 따라 생겨나는 결과가 자연히 다른 것일 뿐이다.
이러한 점을 가지고 다시 “의도하고 심은 꽃은 피지 않고, 무심코 심은 버드나무는 그늘을 이루네”라는 구절로 돌아와 보면, 이 말이 결코 ‘무심함이 의도함보다 성공하기 쉽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일의 성공 여부는 그 일이 지닌 자체의 법칙과 조건에 부합하는가’에 달려 있음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사물 자체의 속성을 망각한 채, 성공은 그저 ‘무심코’ 한 덕분이라 하고 실패는 ‘의도했기’ 때문이라 탓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본질을 버리고 말단만 쫓는 격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어떤 이들은 고의로 개념을 바꿔치기하여 이 구절에 담긴 본래의 이치를 왜곡하곤 한다. “추구할수록 실패하고, 흐르는 대로 둘수록 성공한다”라며 이를 타인을 오도하는 데 쓰기도 한다.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지 않고 표면적인 결과에만 머물러 있으니, 이러한 이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