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존께서는 《정진요지》 〈도법(道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직 수련 성취되지 않은 일면이 어찌 주사상(主思想)을 억제하며, 이미 법을 얻은 일면을 억제할 수 있는가?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滋養)하여 그것이 법의 틈을 타게 한 것이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心性(씬씽) 또는 행위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임(放任)한 틈을 탄 것이 틀림없다.”
나는 수년 동안 수련해 오면서 도대체 나의 어떤 생각이 사악에 이용당하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약간의 깨달음이 생겼다.
많은 경우, 우리에게 사람 마음이 있을 때면 늘 사람 마음과 사람 생각으로 문제를 고려하곤 한다. 예컨대 콧물이 흐르면 즉시 ‘옷을 너무 얇게 입었나’ 하고 생각하고, 배가 아프면 ‘음식을 잘못 먹었나’ 하는 식이다. 명백히 대법제자가 교란과 박해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사악에게 박해할 구실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함정을 파는 격이 아니겠는가? 사악에게 박해할 구실을 주는 셈이다. 일단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사실 자기 스스로 이미 그것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명백한 일면도 이러한 사악을 청리해 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왜 마난 속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는가? 바로 자신이 그것들의 존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정법(正法)의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교란은 대법제자의 제고에도 이롭지 않고 법을 실증하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아니며, 신우주(新宇宙)가 선택한 방식도 아니다. 정법이 요구하는 것에 부합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니라면, 왜 그것들을 청리해 버리지 않는가?
사존께서는 《전법륜》 제5강에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셨다.
“노(老)ㆍ병(病)ㆍ사(死) 역시 일종의 마(魔)이지만, 이 역시 우주특성을 수호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에서는 “속인은 병이 있게 마련이며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속인의 법칙(規律)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속인으로서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하지만 대법제자는 속인이 아니다. 만약 사람 마음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에 의해 교란을 받게 된다. 그것들이 고의로 교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람 마음이 그것의 표준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에서 벗어나 정념(正念)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마난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그것들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닌데, 왜 교란당하도록 방임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단 말인가?
개인의 작은 깨달음을 써서 동수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존께 머리 숙여 절을 올리며, 사존의 자비하신 구도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