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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노교소를 걸어 나오다

길림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7년 11월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당시에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대법을 접하게 되었다. 아들은 신경성 두통으로 휴학한 상태였고, 어떤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매일 고통스럽게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내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그래서 아들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그 누구의 말이라도 다 믿으려 했다.

당시 우리 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바쁘지 않을 때면 동종 업계 이웃들이 우리 가게에 와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어느 날 왕(王) 씨 아저씨가 찾아와 나에게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파룬궁을 수련해 보세요.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을 고칠 수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물었다.

“그렇게 신기한가요? 약을 안 먹고도 병이 낫다니요? 파룬궁이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거죠?”

아저씨는 “우리 집이 바로 법을 배우는 학습장이니, 오늘 저녁에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오시면 알게 될 겁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고 참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곧장 아들과 딸을 데리고 아저씨네 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우리 집에서 약 8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대여섯 명의 사람이 온돌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으며, 나를 보자 모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왕 씨 아저씨는 우리 세 사람에게 책을 찾아주며 함께 앉아 소리 내어 읽도록 했다.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한 단락씩 책을 읽어 내려갔는데, 사부님의 말씀이 너무나 훌륭하여 읽을수록 더 배우고 싶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비바람이 불어도 거르지 않고 두 달 넘게 법공부를 이어갔다. 폭설이 내리는 날에도 우리는 거르지 않고 서로 팔짱을 낀 채 광풍을 뚫고 아저씨네 집으로 향했다. 전혀 힘들거나 지치지 않았고 마음은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법을 배운 지 두 달 만에 아들의 병은 완전히 나았고 정상적으로 등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재발하지 않았다. 사존의 구도에 감사를 드린다.

2001년 7월, 나는 현지 파출소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구치소에 20일간 수감되었다. 이후 간수가 찾아와 “당신은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으니 내일 이송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으며 매우 담담했다. ‘나는 사부님의 안배를 따를 뿐이며, 당신들의 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내가 어떤 차에 타고 있었고 누군가 운전하여 나를 데리고 아주 큰 한 바퀴를 돌더니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주는 꿈이었다. 잠에서 깬 후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가 정념으로 관을 넘기도록 점화(點化)해 주신 것이니, 내일 반드시 정념정행(正念正行)하여 이 관을 잘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8시가 넘자 교도관이 와서 “짐을 정리해라, 노동교양소로 이송될 것이다”라고 했다. 당시 내 마음은 매우 평온했고 두려움이 추호도 없었다. 잠시 후 간수는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 차를 기다리라고 했다. 이때 내 둘째 백모님과 조카가 면회를 왔다. 그들은 나에게 “자네 아들은 장사를 하다가 물건을 다 잃어버렸고, 딸은 과민성 천식이 도져 학교도 못 가고 집에 누워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노동교양소에 가거든 고분고분하게 행동하라며, 큰오빠가 밖에서 손을 쓰고 있으니 그곳에서 두세 달만 버티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고, 조카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해도 내가 귀담아듣지 않는 것을 보고는 어머니의 말을 만류했다.

이윽고 차가 도착하자 교도관이 나를 태웠다. 차 안에서 나는 사부님의 《홍음》 중 〈무존(無存)〉과 〈위덕(威德)〉을 반복해서 외웠다. 마음은 줄곧 평온했으며, ‘나는 노동교양소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당신들이 나를 태우고 간 것처럼 다시 나를 태우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노동교양소에 도착해 신체검사를 받는데, 의사가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수용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렇게 신체 부적격으로 노동교양소에서 수용을 거부당했고,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 주신 결과임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나를 다시 차에 태워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에게 환희심과 과시심이 일어났다. ‘이것이 관을 뚫고 나온 것이로구나’ 하고 자만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 마음(人心) 때문에 사악에게 틈을 내주게 되었다. 군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나를 집으로 보내주지 않고 오히려 다시 구치소에 수감시켰다. 그러고는 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5,000위안을 내야만 풀어준다고 협박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집에 있던 전 재산인 4,600위안을 공안국에 지불한 후에야 나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수련이란 엄숙한 것이며, 관건적인 순간에 약간의 사람의 것을 섞어서도 안 되며 늘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이치(人理)를 써서 대법 일을 해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사악이 틈을 타게 됨을 깨달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