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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와 같은 사부님 은혜로 대법에서 혜택을 입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올해 내 나이 여든여섯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우리 가족은 공산사당(共產邪黨)의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사당의 박해로 인해 우리 집은 내 어릴 적부터 큰 변고를 겪어야 했고, 그 상처는 평생 나를 따라다녔다. 대법을 얻어 수련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아픔에서 진정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하해와 같은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린다! 사존께서 나를 구해주셨고, 대법이 나를 구했다!

1. 어린 나이에 가족이 사당의 잔혹한 박해를 받아

나는 대대로 책을 가까이한 서향명문(書香門第)이자 부유한 집안의 큰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학식이 깊고 교양이 있으셨으며, 겸손하고 선량하여 전통적인 도덕을 준수하셨다. 그러나 사당의 잔혹한 박해로 인해 부모님은 잇따라 세상을 떠나셨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사당의 박해가 시작되기 전, 우리 집에는 전형적인 중국 전통식 대원(大院)이 있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이 대원이 청조 때 큰 관직에 계셨던 조상님께서 지으신 것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고 했다.

전체 대원은 일진오중(一進五重, 다섯 개의 마당과 건물이 안으로 깊숙이 이어지는 구조)의 배치였다. 큰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양옆으로 돌 탁자와 돌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무 대문 바로 위에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현판에 조각된 용과 봉황의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했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일진오중의 대청이 펼쳐졌고, 대청 양옆으로는 횡청(橫廳)과 상방(廂房, 안채 좌우의 곁방)이 딸려 있었다.

첫 번째 대청은 네 개의 거대한 홍목(紅木) 기둥이 받치고 있었고, 나머지 네 개의 대청은 모두 여덟 개의 홍목 기둥이 받치고 있었다. 다섯 개의 대청 사이, 그리고 각 대청과 좌우 횡청 사이에는 천정(天井)과 연못이 있었다. 홍목 기둥 사이의 가로보와 천장에는 모두 용과 봉황, 꽃과 새가 조각되어 있어 고색창연하고 지극히 정교했다.

각 대청의 좌우 양옆에는 상방이 있었고, 2층은 목조 누각이었다. 목조 누각 곳곳에도 용과 봉황, 꽃과 풀, 벌레와 물고기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귀중한 문물도 많이 진열되어 있어서, 어릴 적 나는 그 2층 목조 누각에서 놀고 잠자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상방의 침대 역시 전통 목공예로 만든 기둥과 지붕이 있는 침대였는데, 침대틀 곳곳에도 용과 봉황이 조각되어 있었다.

대원은 비록 지어진 지 오래되었으나 파손된 곳이 전혀 없었고 낡아 보이지도 않았다. 조각된 용과 봉황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했고, 나무에 칠해진 옻칠은 광택이 나며 산뜻했다.

아버지는 형제가 모두 일곱 분으로 대가족을 이루고 사셨다. 둘째 숙부와 셋째 숙부는 황포군관학교에서 공부하셨고, 여섯째 숙부는 시골에서 글을 가르치셨다. 다른 백부님들은 농사를 짓는 외에 소규모 장사도 하셨으며, 부지런한 백모님들은 집에서 베를 짜고 옷을 지으며 자수를 놓으셨다. 온 가족이 서로 돕고 화목하게 지내니 그 즐거움이 가득했다.

내 항렬에서 온 가문을 통틀어 딸은 나 하나뿐이었기에, 나는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 대가족 안에서 나는 이 집에서 밥을 먹고 저 집에서 잠을 잤으며, 백부님과 백모님들이 사주시고 만들어주신 옷과 신발은 평생 다 입지 못할 정도였다. 백모님들이 만들어주신 꽃신을 신고 수놓인 치파오를 입은 내 모습은 영락없는 명문가 규수였다. 여섯째 숙부는 내게 글을 가르쳐 주셨고, 어른들로부터 꾸지람 한 번 들은 적 없이 온 대가족이 매우 화목했다.

그러나 사당이 정권을 찬탈한 후, 우리 대가족의 좋은 날은 끝이 났고 온 집안이 심연으로 추락했다.

당시 둘째 숙부는 황포군관학교를 막 졸업하고 국민당 관리로 1년간 재직했다는 이유로 사당에 의해 어두운 감옥에 갇혀 ‘반혁명 분자’로 몰려 잔혹한 박해 끝에 사망하셨다. 셋째 숙부는 당시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한 상태였음에도 사당의 검은 감옥에 갇히셨다. 비록 매를 맞아 돌아가시지는 않았으나, 출옥하셨을 때는 피골이 상접하여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몇몇 고마운 이들의 간청 덕분에 겨우 임업장에서 대나무 숲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셨으나, 1년 뒤 쇠약해진 몸을 이기지 못하고 억울함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글자 한 자도 모르는 사당의 마을 관리 곽(郭) 모 씨가 사당의 ‘위광정(偉光正, 위대하고 광명하고 올바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파사구(破四舊, 낡은 사상·문화·풍속·습관을 타파함)’라는 명목하에 사람들을 이끌고 와 우리 집 대원을 통째로 때려 부수었다. 재물을 찾겠다며 대원의 주춧돌을 석 자나 파헤쳤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소중한 유물들을 모조리 약탈해 갔다. 용과 봉황이 조각된 거대한 홍목 기둥과 목기, 목판들은 그 무지한 사당 분자들에 의해 사당이 주도하던 이른바 ‘대련강철(大煉鋼鐵, 토법고로를 이용한 철강 대량 생산 운동)’의 화로 속으로 던져졌다고 한다.

그 정교하고 아름다운 전통 문물들이 그렇게 무지하고 극악무도한 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버렸다. 이웃 주민들은 그 모습을 보며 오직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집이 사라지자 대가족의 백부님과 백모님들은 살기 위해 사방으로 도망쳐야 했다. 아버지는 겨우 그 자리에 작은 흙집 한 칸을 짓고 나물과 나무껍질, 쌀겨로 하루하루를 버티셨다. 전족을 하여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집단 농장’으로 끌려가 거칠고 힘든 농사일을 강요당하셨다. 굶주림에 심신의 피로와 박해가 더해져, 어머니는 마흔 살 남짓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나는 스무 살 안팎의 한창 꽃다운 나이였으나, 사당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 겪은 집안의 변고와 어머니의 사별로 인해 이미 노파처럼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당시 나는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생계를 위해 홀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겨우 2년 만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사당의 잔혹한 박해와 연이은 집안의 변고는 내게 너무나 큰 타격이었다.

이후 친척들의 도움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도 얻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겨우 2년 만에 직장의 인원 감축령이 내려졌고, 나와 남편은 출신 성분(집안 배경) 문제로 인해 시골로 하방(下放)되어 거친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남편은 원래 직장으로 복귀해 일하게 되었으나, 시골에는 나 혼자 남아 농사를 지으며 병석에 누우신 지 8년이 된 시어머니를 수발하고 세 아이를 키워야 했다. 남편은 직장 일이 바빠 일 년에 집에 몇 번 오지도 못했다. 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뼈가 부서지도록 일했으나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돈도 늘 부족했다. 노인과 아이들을 살려내기 위해 나는 머나먼 인생길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 쳤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쉰 살까지 버텨냈고, 겨우 아이들을 키워내어 첫째와 둘째를 출가시켰을 무렵 남편마저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오랜 세월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몸은 이미 골병이 들어 온통 병투성이였다. 병마의 고통은 나를 말할 수 없이 괴롭게 했고, 세상에 대한 염증이 자연스레 피어올라 줄곧 차라리 죽어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죽으려 해도 쉽게 죽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출가하여 절에 들어가 수련하면 세상의 번뇌를 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선량한 고향 언니를 찾아가 출가하여 절에서 수련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그 언니는 나를 말리며 “지금 절은 진짜 수련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정 그렇다면 파룬불법(法輪佛法)을 수련해 봐”라고 권해 주었다. 그렇게 그녀의 인도 덕분에 나는 성스러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2. 기쁘게 대법을 얻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다

1996년, 그 고향 언니의 도움으로 대법의 보서(寶書)인 《전법륜》을 모셔 올 수 있었다. 나는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밤낮으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연공을 병행하자 겨우 몇 달 만에 온몸을 감싸고 있던 질병이 깨끗이 사라졌고, 평생 처음으로 병이 없는 몸이 얼마나 가볍고 행복한지 그 즐거움을 진정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1999년 ‘7.20’ 당시 사당이 발동한 그 사악한 박해는 내 의지를 꺾지 못했고, 오히려 끝까지 수련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줬다. 박해가 시작된 이래 악질 경찰들이 우리 집을 세 차례나 가택 수색했고, 2005년에는 직장의 이름을 빌려 내게 7,000위안의 벌금을 부과했으며, 세 번이나 붙잡혀 심문을 받았다. 이 거대한 관난(關難)의 시험 속에서 사존의 가호 하에 나는 모두 정념(正念)으로 이런 마귀의 관을 돌파했다. 이러한 고난들은 나를 더욱 청성(淸醒)하게 만들었고 수련의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해 주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진상을 알리고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내 주변의 몇몇 이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하해와 같은 불은(佛恩) 아래에서 커다란 혜택을 입었다.

첫 번째 이야기

2020년, 친정 조카 서(徐) 모가 성도(省都)의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조카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조카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으나, 의사가 앞으로 3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며 슬퍼했다. 나는 괜찮을 것이라 위로하며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파룬따파하오를 믿으라고 했다. 그는 매우 선량하여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대법이 좋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늘 진상 자료를 가지고 가서 주변 시골 마을에 돌리곤 했는데, 그는 트랙터를 운전하는 사람이었기에 내가 다 돌리지 못한 자료를 몇 번이나 대신 전해주기도 했고 먼 시골 마을까지 가서 배포해 주기도 했다. 그는 진상 자료를 전하는 좋은 일에 여러 번 힘을 보탰다.

하루는 내가 호신부(護身符)를 꺼내어 그에게 주며 말했다. “네가 참 선량하여 나를 도와 그렇게 많은 선한 일을 해 주었구나. 네 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없지만 오직 우리 사부님만이 너를 구하실 수 있단다. 매일 정성 어린 마음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 9자 진언을 외우려무나.” 그는 내게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카 부부는 둘 다 삼퇴(三退)도 마쳤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몸이 완연히 회복된 듯한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아가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고, 의사는 이것이 그야말로 기적이라며 놀라워했다.

현재 그 조카 부부는 성도로 이사하여 아들의 집에서 손자를 돌보며 살고 있다. 조카는 성도에서 경비원 직장도 얻어 출근하고 있다. 지난번 내게 새해 인사를 하러 왔을 때, 그는 상의 주머니에서 호신부를 꺼내어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9자 진언을 늘 외우고 있으며, 이 호신부를 수년 동안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지니고 다녔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이야기

시댁 고향에 모(毛) 씨가 있었다. 그녀가 현(縣)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에 찾아갔더니, 두 딸이 병실에서 간호를 하고 있었다. 딸들은 내게 “어머니가 불치병에 걸리셔서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다”라며 낙담했다. 60대의 모 씨는 침대에 누워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내가 다가가자 아주 미약한 목소리로 겨우 몇 마디를 건넸다. 나는 예전에도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켜준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호신부를 쥐여주며 마음속으로 늘 9자 진언을 정성껏 외우라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뒤에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내가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나를 보고 무척 기뻐하며 즉시 침대 위로 번쩍 일어나 앉더니, 두 손을 모아 합장(合掌)을 하고 소리 내어 외쳤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이후 그녀는 퇴원했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지금은 다시 채소밭을 일구고 농사일을 거뜬히 해내며 여느 건강한 사람과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린다!”라며 인사를 전하곤 한다.

세 번째 이야기

마찬가지로 시댁 고향 사람인 장(張) 모 씨가 있는데, 그는 의사였다. 나중에 위암에 걸려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다. 나 역시 그에게 진상을 알린 후 매일 9자 진언을 지극 정성으로 외우라고 당부했다.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으나 그는 여전히 매우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시댁 고향에 갈 때마다 그는 나를 보면 늘 이렇게 말한다. “대법 사부님께서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들은 모두 진상을 명백히 안 후 대법의 보호 속에서 커다란 혜택을 입은 이들이며, 한결같이 대법 사부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거듭 표현하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