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 대법제자
【정견망】
들어가는 말
1992년 5월 13일,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이 ‘진·선·인(眞·善·忍)’ 우주 대법을 장춘(長春)에서 처음으로 전했다. 지금까지 이미 34년이 흘렀다. 1999년 ‘7·20’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깡패 집단이 파룬궁(法輪功)을 잔혹하게 박해하기 시작했고, 장쩌민은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소멸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 27년이 지난 지금, 파룬궁은 소멸되기는커녕 오히려 150여 개 국가와 지역으로 널리 전파되었으며,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은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보급되었다.
지금까지 파룬따파는 여러 국가에서 수천 개의 포상(중국 정부의 ‘변연과학진보상[邊緣科學進步獎]’, 92 동방건강박람회 ‘스타공파[明星功派]’ 등 다수의 상 포함)을 받았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가 중생이 구도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점점 더 인식하고 이해하게 했다. 파룬궁 수련생들로 구성된 8개의 ‘션윈예술단(神韻藝術團)’은 매년 전 세계를 순회 공연하며 중화 전통문화를 선양하고 공산당 이전의 중국을 재현하여, 세계 각 민족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 최고의 쇼’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2004년 《구평공산당(九評共產黨)》이 출간된 이후 일어난 탈당 열풍으로 지금까지 4억 6천만 명이 넘는 용감한 이들이 중국공산당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해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한다[天滅中共]’는 천상(天象)이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이 없는 새로운 기원이 곧 도래할 것이다!
1994년 8월, 파룬따파가 운남(雲南)에 널리 전해졌다. 지금까지 32년의 과정을 걸어오며 파룬따파는 이미 운남 각 민족 백성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성장했으며,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수많은 중생이 대법의 구도를 받았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스스로 수련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눈물겹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남겼으며, 파룬따파의 초상(超常)성과 신성함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대법 홍전(洪傳) 35주년을 맞이해, 우리 운남 일부 수련인들이 법을 얻고 스스로 수련하여 제고하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 이야기를 모아 ‘운남 파룬따파’ 시리즈 보도로 정리하여, 파룬따파가 운남에 널리 전파된 이 위대한 시기를 기록하고 인연 있는 이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인연 있는 이들이 파룬따파가 널리 전파되는 이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겨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를 기대한다!
운남 파룬따파 : 대법의 홍전(洪傳)
운남은 26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성(省)으로 민풍이 순박하고, 인구는 4천여 만 명, 면적은 4만 제곱킬로미터이고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운남에는 ‘세계지질공원’, ‘세계자연유산풍경’으로 지정된 ‘석림(石林)’이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여강고성(麗江古城)’이 있으며, 홍하주(紅河州) 건수현(建水縣)에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공자묘(孔廟)가 있다.
또한 청초 오삼계(吳三桂)가 온통 구리로 만든 ‘금전(金殿)’이 있고, 유명한 불교 성지인 운남 빈천(賓川) 계족산(鷄足山) 등이 있다. 운남은 또 ‘유색금속의 왕국’, ‘식물의 왕국’으로 불리며, 서하객(徐霞客)이 운남 전역에 남긴 발자취가 있다. 운남성의 성도 곤명시(昆明市)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800리 전지(滇池)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산(西山)의 잠자는 미인 형상을 배경으로 사계절이 봄과 같아 ‘봄의 도시[春城]’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운남은 또 비교적 특수한 곳이다. 역사적으로 도가(道家)의 조사 장삼풍(張三豐), 왕중양(王重陽)이 모두 운남에 도량(道場)을 두어 많은 ‘신화’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석가모니의 대제자 대가섭(大迦葉) 존자는 스승의 위탁을 받들어 2500년 동안 줄곧 운남 대리(大理) 계족산에서 고생스럽게 수련하며,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도래하여 우주 대법을 널리 전하고 중생을 구도할 때 석가모니가 남긴 의발(衣鉢)을 바쳐 불주(佛主)의 증명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1997년에는 멀리서 온 ‘북경 파룬따파연구회’의 대법제자들이 대가섭 존자를 배알하러 간 적이 있었다.
역사 사진: 민국 시기 운남성도 곤명


곤명 성문과 호성하(護城河)


거리와 민가


유명한 금마·벽계방(金馬·碧鷄坊)과 전지(滇池) 옆 대관루(大觀樓)
1. 운남 중생의 영원한 유감
1994년 초 ‘북경 파룬불법연구회’는 ‘곤명시 기공협회’에 서신을 보내 리훙쯔 사부님께서 운남에 와서 ‘파룬따파 설법전공반(講法授功班)’을 개최하는 문제를 상의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소식을 듣고 등록했으나, 곤명시 기공협회 관련자들이 중시하지 않고 회신을 미루어 개최 시기를 놓쳤고, 결국 리훙쯔 사부의 ‘설법전공반’을 유치할 기회를 잃었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광주(廣州)에서 국내 마지막 설법전공반을 개최해 저 유명한 《광주설법(廣州講法)》을 남기셨다. 운남 중생이 사부님께서 우주 대법을 전하시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영원한 유감이 되었다. 때문에 운남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직접 들은 수련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1998년 9월 리훙쯔 사부님께서 곤명에 오셨을 때, 13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위대하고 자비로운 사부를 뵙는 영광을 누렸으며, 그들은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에게 운남 전체 파룬궁 수련생의 염원과 대법을 굳건히 수련하겠다는 결심을 말씀드렸다.
2. 대법이 운남에서 전해지기 시작하다
파룬따파는 1994년 8월 운남에서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다. 사천(四川) 출신 파룬궁 수련생 진영화(陳榮華 천룽화)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 사부님꼐서 성도(成都)에서 개최한 설법전공반에 참가하는 인연을 맺었고, 곤명으로 돌아온 후 곤명시 기공협회의 조직 하에 운남에서 대법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8월, 곤명시 노동자문화궁에 수십 명이 참가하는 첫 번째 연공장(煉功點)이 세워졌고, 9월 16일에는 운남성 임업학교(현 운남임업대학)에 두 번째 연공장이 세워졌다. 처음에는 20명 안팎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전교에서 연공하는 교사와 학생이 수백 명에 달했다. 그 후 파룬궁 연공장은 우후죽순처럼 운남 각지에 신속히 건립되었다. 나아가 이웃 나라인 베트남, 미얀마 등 국가로도 전파되었다.
1995년 5월, 귀주(貴州) 파룬따파 보도소 소장 강수영(姜秀英, 사부님께서 《전법륜》 제5강에서 말씀하신 귀주 보도소 소장)과 수십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운남 중생에 대한 사부의 자비로운 배려를 안고 곤명에 와서 첫 번째 사부님의 ‘비디오 전법반(錄像傳法班)’을 열었다. ‘비디오 전법반’은 먼저 곤명시 문화궁에서 열렸으나 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장소가 수용하지 못하자 탁동(拓東) 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겼고, 200명 이상의 수련생이 강의를 들었다.
사부의 ‘비디오 설법’에 참가했던 수련생들의 회고에 따르면, 설법 비디오를 보는 과정에서 어떤 수련생들은 천목(天目)이 열려 다른 공간의 장엄하고 웅장한 광경과 부처의 세계를 보았고, 어떤 수련생들은 신통(神通)이 나타났으며, 대다수 수련생은 파룬(法輪)이 회전하는 것을 느끼고 대법의 신기함과 자비롭고 상화(祥和)함을 보고 체험했다. 9일간의 ‘비디오 설법반’이 끝난 후, 참가한 수련생들은 모두 신체가 정화되고 심성(心性)이 제고되었으며 인생관이 철저히 바뀌어, 진정으로 병이 없어 몸이 가벼운 느낌을 체험했다. 그 후 귀주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파룬따파 곤명보도소’가 설립되었다.
곤명보도소가 설립된 후, 파룬궁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며 전 성(省) 범위로 신속히 전파되었고, 새로운 연공장도 끊임없이 건립되어 각 공원, 광장, 거리 중심 정원마다 연공장이 생겼으며, 매일 새로운 수련생이 파룬궁 수련에 들어왔다.
파룬궁이 1994년 8월 운남에서 공개적으로 전해진 후 1999년 ‘7·20’ 전까지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대법의 전파는 이미 전 성의 모든 지구, 주(州), 시(市), 현(縣), 심지어 변두리 산골 마을까지 덮었으며, 동시에 이웃 나라인 미얀마와 베트남으로도 전파되었다. 전 성에 70여 개의 파룬궁 보도소, 575개의 연공장(단지 내 연공장은 제외)이 건립되었다. 파룬궁 수련생은 정부 기관, 기업 및 사업 단위, 공안·검찰·법원·사법 시스템, 학교, 공장과 광산, 농촌, 거리, 상점에 두루 퍼져 있었다. 수련생 중에는 위로는 성급(省級)·지급(地級)·현급(縣級) 관리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 개인 사업자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있었으며, 교수, 학자, 과학기술자, 의사, 교사, 군인, 경찰, 노동자, 농민, 기업가, 노점상, 청소부, 가사도우미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학자, 전문가, 교수 등 고학력·과학기술 인력이 다수 있었다.
파룬궁은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기이한 효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수련자가 진·선·인 우주 특성을 기준으로 삼아 마음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이다. 파룬궁 수련자들의 심신 건강은 사회의 정신문명 건설에 극히 큰 촉진 작용을 하여, 당시 관련 정부 부처와 지도자 및 사회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운남 사회의 정신문명 건설을 촉진하고 치안 상황을 개선하여 전체 사회가 건강하게 앞으로 발전하도록 했다.
3. 대법을 널리 전하던 행복한 나날
1995년, 곤명 파룬따파보도소가 성립된 후 첫 번째 《전법륜》을 맞이했다. 대법보도소는 돈을 저축하지 않고 물건을 쌓아두지 않으며 의무적으로 모두를 위해 봉사하라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정성껏 받들어, 속인식의 업무 기구가 아니며 형식적인 것을 하지 않고, 진정으로 모두가 실질적으로 법을 배우고 수련하도록 돕고 이끌었다. 동시에 대법 서적이 필요한 수련생들을 위해 통일적으로 대법 책을 주문해 주었다. 보도소가 설립된 후, 대법 수련생들을 조직하여 운남의 각 지구, 주, 현, 구로 가서 대법을 알리는 홍법(洪法) 활동을 진행했다. 보도소는 어떤 수련생에게도 참가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모두 각 수련생이 자원해서 주동적으로 참가한 것으로, 파룬따파를 아직 모르는 더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리고자 원한 것이었다. 게다가 필요한 비용은 모두 각 수련생이 자비로 부담했다. 이 과정에서 수련생들의 발자취는 운남성의 각 주와 현, 시구에 미쳤으며, 그 속에는 너무나 놀랍고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1) 대법을 널리 전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
1996년 10월에 나는 퇴직했다. 두 딸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에, 나는 파룬따파를 더 많은 사람에게 널리 전하겠다는 일념을 발했다. 그리하여 밖에 나가 홍법(洪法)하는 일만 있으면 모두 참가했는데, 간 곳은 대부분 외딴 농촌 지역이었다. 우리는 《전법륜》과 사부의 설법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가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연공을 가르쳐주고 사부의 설법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매번 한 곳에 가면 9일 동안 머물며 그들이 9일간의 설법 비디오를 다 보게 했다. 매번 가는 비용은 자신이 부담했으며, 가장 저렴한 곳에서 묵고 가장 저렴한 음식을 먹었다.
그때는 내 퇴직금도 높지 않아 먹고 입는 것을 아껴 대법 책을 사는 데 썼으며, 어떤 곳의 사람들이 책을 살 형편이 안 되면 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1999년까지 3년여 동안 우리의 홍법 발자취는 운남의 가장 구석 마을 구석구석까지 미쳤다. 불법(佛法)의 진리를 갈망하던 그 사람들이 대법을 얻었을 때 마치 보물을 얻은 듯 기뻐하던 정경을 보며, 나는 마음속 깊이 그들을 위해 기뻐했다.
(2) 퇴역 군인의 대법에 대한 갈망
1998년 나는 성(省) 제1간부요양소에 홍법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모두 단장(團長)급 이상의 군 간부들이 있는 곳이다. 군단장이 군인에게 강당을 개방해 강당의 음향 시설을 통해 우리는 리훙쯔 선생님의 광주 설법 비디오를 방영했고, 리훙쯔 선생님의 다섯 가지 공법 교공(教功) 테이프를 방영했다. 100여 명을 수용하는 강당이 가득 찼는데, 많은 이들이 백발이 성성하고 백전노장들이었으며, 어떤 노부인은 손자를 업고 오기도 하여 장면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나라는 노병이 파룬궁의 복음을 운남의 고향 부모형제들에게 전할 수 있었기에, 나는 매우 큰 위안을 느낀다.
(3) 사부님의 격려
한번은 우리가 이문(易門) 동광 광산 지역으로 홍법을 하러 갔다가 그곳의 일정을 마치고 곤명으로 돌아올 때, 우리 일행 몇 명이 중형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 운남은 지세가 험준하고 산길이 구불구불하여 자동차는 실 같은 산길을 느리게 달릴 수밖에 없었으며, 산이 높고 길이 좁으며 고개가 험하고 굽이가 급해 얼마나 돌았는지 모를 때, 내 뒤에 앉아 있던 한 동수가 갑자기 놀라 소리쳤다. “빨리 큰 파룬을 보세요!”
우리가 막 고개를 들자 차의 앞 유리 앞에 차체보다 더 큰 거대한 청색 파룬이 나타난 것이 보였다. 색이 청색에서 자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자색에서 청색으로 돌아왔는데, 파룬은 차를 인도하고 있었으며 너무나 아름다웠다. 차 안의 동수들도 파룬이 비추는 속에서 얼굴과 몸이 때로는 자색으로, 때로는 청색으로 변했다. 이러한 경관은 40여 분간 지속되었고, 파룬이 사라진 후 우리는 길 양옆에 기이한 모양의 파랗고 아름다운 도형들이 많이 나타난 것을 보았으며, 동행한 어떤 동수들은 그 안의 기이한 광경까지 깊이 볼 수 있었다. 당시 운남 지역에서 대법이 널리 전파될 때 거의 모든 지역의 홍법 팀들이 여러 가지 천태만상의 기이한 현상들을 볼 수 있었다.
(4) 노승: “그들은 모두 부처님이다”
곤명 보도소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을 조직해 운남 대리 위산(巍山)으로 홍법을 갔을 때, 하루는 위산 팔보산(八寶山) 사찰에 가서 대중에게 홍법을 했다. 수련생들은 일찍이 사찰에 도착해 연공을 시작했고, 그들이 다섯 번째 공법인 ‘신통가지법(神通加持法)’ 가부좌를 하고 있을 때, 한 젊은 스님이 사찰 마당을 청소하며 일부러 수련생들을 쫓아내려 했다. 한 노승이 이를 더니 즉시 젊은 스님을 제지하며 말했다. “이분들은 일반 사람이 아닐세. 그들은 모두 부처님이며, 파룬불법을 전하러 오신 분들일세.”
(5) 모든 것은 중생이 구도 받게 하기 위함
1996년, 곤명 파룬따파보도소장 왕람(王嵐)은 여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이끌고 옥계(玉溪) 지구로 가서 대법을 널리 전했다. 그들이 옥계에 도착했을 때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그 지역의 한 기공 애호가를 찾아갔다. 이 사람은 꿈속에서 사부님의 점화를 받아 스스로 파룬궁을 독학해 연공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왕람 일행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만나기를 꺼리며 “자신은 연공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거절하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왕람 일행은 옆에서 한두 시간을 기다려 그가 연공을 마친 후 그와 함께 옥계 지구에 대법을 널리 전하는 일을 대화했고, 이로써 옥계 지구에서 대법의 홍전이 시작되었다.
(6) 대법을 얻는 것에 대한 중생의 갈망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이 대리주(大理州) 빈천현(賓川縣)으로 가서 대법을 널리 전했다. 빈천 계족산(鷄足山)은 불교 성지로 유명한 ‘가섭묘(迦葉廟)’가 있으며, ‘문화대혁명’ 전에는 동남아 국가의 불교 신도들이 찾아와 향을 피우며 예배하던 성지였다. 불교를 숭상하고 믿는 사람이 많고 근기가 좋았기에 대법은 매우 빠르게 전파되었고, 신속히 6개의 연공장이 건립되었고 매일 수백 명이 단체 연공을 했다.
어떤 마을은 거의 전 마을 사람이 와서 파룬궁을 배우고 연공했으며, 가져간 《전법륜》이 금방 동나서 부득이 밤을 새워 성도에서 운송해 와야 했다. 법을 얻는 사람이 많아 《전법륜》이 몹시 귀해졌고, 심지어 한 새로운 수련생이 대법 책을 얻기 위해 1만 위안을 내놓으며 《전법륜》 한 권을 청하겠다고 하는 일까지 있었다. 파룬불법에 대한 사람들의 절박한 갈망을 알 수 있다.
4. 대법 홍전 중의 기이한 만남
1999년 5월의 어느 날, 우리 연공장의 몇몇 동수들이 상의하여 주변 현의 향진(鄉鎮)으로 홍법을 하러 가기로 했다. 오후 4시경 우리가 모여 성도(省都)로 돌아갈 준비를 할 때, 한 동수가 말하기를, 어느 산골 마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향에 급여를 받으러 왔다가 우리가 홍법하는 것을 보고 파룬궁을 배우고 싶어 했으며, 그들의 마을에도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연공하고 싶어 하니 마을에 와서 가르쳐줄 수 있는지 물었다고 했다. 다음 날 주말에 우리는 공원에서 또 홍법 활동이 있었기에 당시 동수는 거절한 상태였다. 모두 그 이야기를 듣고 상의한 끝에, 중생이 법을 얻고자 하는데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며, 이 일도 우연이 아닐 것이고 사부가 법을 얻도록 안배하신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나와 그 동수는 즉시 그 교사를 찾으러 갔으나 그는 이미 떠난 뒤였다.
다방면으로 문의한 끝에 우리는 그 교사가 있는 산골 마을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게 되었고, 차를 몰고 가며 길을 물었다. 우리는 산골 공로를 한참 달렸으나 사람 한 명 마주치지 못했다. 모두가 다소 실망하고 있을 때 마침 한 청년이 작은 오솔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공로로 나왔다. 물어보니 그는 길을 지나쳐 왔다며, 다행히 멀지 않으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를 따라 되돌아갔고, 멀지 않은 곳의 갈림길에 이르러 청년은 우리를 데리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길을 통해 산속으로 들어갔다. 10여 분 후 한 길목에 도착하자 청년은 눈에 보이는 한 마을을 가리키며 가고자 하는 곳이 저기이니 이 길을 따라 잠시 걸어가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청년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으며,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마침 그 교사를 만나 그의 집으로 안내받았다.
우리가 간 마을은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마을에는 20~30가구, 100여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이 교사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고, 저녁 8시쯤 되자 교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략 70~80명의 사람을 차례로 불러 모아 그의 집 마당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부님의 교공 비디오를 틀어주고 파룬궁이 어떤 공법인지 소개해 주었으며 밤 11시가 넘도록 진행했다. 다음 날 또 홍법 활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고 성도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많은 사람이 우리를 배웅하려 차 있는 곳까지 따라왔다. 그러나 주차해 둔 곳에 가서 보니 뒷바퀴 하나가 바람이 빠져 있었다. 내가 예비 타이어를 꺼내 교체하려 보니 예비 타이어도 바람이 없었다. 칠흑같이 어둡고 산골 마을이라 여건도 되지 않아 당장은 떠날 수 없을 것 같았고 날이 밝으면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때 한 주민이 말했다. “당신들의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시 초등학교 교사의 집으로 돌아갔고, 동수들은 각각 그 교사 부부 및 남아있던 주민들에게 연공을 가르쳐주거나 파룬궁을 수련한 후의 체험을 대화했으며, 이는 새벽 3시가 넘도록 지속되었다. 교사의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인 후 우리는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자전거 펌프를 빌려 타이어에 바람을 가득 채웠고, 길을 순조롭게 달려 성도로 돌아왔다.
동수들을 공원에 데려다주어 홍법 활동에 참가하게 한 후, 나는 차를 정비소로 몰고 가 검사해 보니 두 타이어에 모두 큰 못이 박혀 있었다. 언제 박힌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정비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상하네요, 이걸 어떻게 운전하고 오셨습니까?” 지나고 나서 동수들은 이 일을 회상하며 모두 감개무량하여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다.” 비록 2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그때 홍법 활동에서 기이하게 만났던 정경을 회상하면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다.
5. 한 번의 잊지 못할 홍법 경험
1999년 5월, 곤명보도소는 한 작은 현성(縣城)으로 수련생들을 조직해 홍법을 하러 갔는데, 나는 직장인이었으나 다행히 이번 홍법 활동에 참가할 수 있었다. 우리는 통근 버스를 타고 다음 날 새벽 5시가 넘겨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 지역의 두 동수가 이미 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여관으로 데려다주어 정리하고 나니 날이 이미 완전히 밝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넓은 회의실로 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그 지역의 동수들과 대법을 알아보고자 하는 인연 있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이들은 수십 리 밖의 농촌에서 밤길을 몇 시간 동안 걸어서 도착했다고 했다.
수십 리 산길을 걸어와 발에 아직 진흙이 가득 묻은 한 남성 동수가 우리에게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글을 한 자도 모르는 농촌 부인이었는데, 반평생 동안 편두통에 시달려 살기보다 죽는 게 나을 정도였다. 마침 지난 달 우연한 기회에 법공부 장(學法點)에 갔다가 동수가 읽어주는 사부님의 《전법륜》 제1강을 들었는데, 편두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 두통병은 파룬궁이 고쳐주었다”고 말했다. 그해 4월이 그녀의 70세 생신이었는데, 다섯 형제가 어머니에게 무슨 선물을 원하는지 묻자 어머니는 눈물 어린 눈으로 아들들에게 《전법륜》 한 권을 갖고 싶다고 하셨다. 그녀는 지금 비록 글을 모르지만 사부님께서 지혜를 열어주실 거라 믿으며 반드시 대법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신 날, 다섯 형제는 어머니를 위해 《전법륜》 한 권을 청해다 드렸다.
이 남성 동수는 또 말하기를, 자기 마을에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노년 동수들이 많은데 글을 한 자도 모르다가 사부님의 대법을 배운 후 모두 글을 알게 되어 《전법륜》을 매우 유창하게 읽는다고 했다. 다만 대법 책이 부족하여 그들은 매일 밤 동수들이 함께 앉아 한 동수가 모두에게 읽어주는 방식으로 매일 밤 《전법륜》 한 강의씩 읽은 후, 다 함께 다섯 가지 공법을 연공하며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에 수십 명이 연공하게 되었는데, 과거에 고부 관계가 좋지 않던 이들이 지금은 좋아졌고, 마을에서 게으름뱅이라 불리던 어떤 이들도 부지런해져서 논밭의 농작물이 누구네 집보다 잘 자란다고 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 매우 신기해하며 사람을 보내 한 동수에게 과거에 자주 들리던 싸우고 욕하는 소리가 왜 지금은 안 들리는지, 그리고 농작물이 이웃 마을보다 잘 자라는데 무슨 비방이라도 쓴 것인지 물었다. 동수가 《전법륜》을 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바로 이 대법 경서가 우리 마을에 가져다준 복입니다.”
또 한 여성 동수가 그들 지역의 상황을 소개해 주었다. 그들의 마을은 산이 높고 땅이 가팔라 겨우 10여 가구밖에 살지 않았고, 전등이 없어 석유 등잔을 켜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마을에 세 쌍의 젊은 부부가 파룬궁을 연공하고 있었으며 그중 한 쌍의 부부는 막 수련을 시작한 상태였다. 수련하기 전 어느 날 저녁, 이 집의 아내가 실수로 오른손을 펄펄 끓는 돼지죽 통에 넣었다가 꺼냈는데 손 전체에 큰 물집이 잡혀 통증을 참기 어려웠다. 그녀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한 동수의 집으로 가 개기름을 조금 얻어 손에 바르려 했다.
동수는 이런 상황을 보고 간단히 처치해 준 후 말했다. “내가 사부님의 《전법륜》을 읽어드릴 테니 어쩌면 통증이 조금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어두컴컴한 석유 등잔 불빛에 의지해 이 동수는 《전법륜》 〈논어(論語)〉를 읽기 시작했는데, 채 다 읽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아프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감격해서 말했다. “너무 신기해요! 손이 아프지 않아요!” 그날부터 그들 부부도 파룬궁을 연공하기 시작했다. 연공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손이 완전히 나았고 흉터조차 전혀 남지 않았다. 이 소식은 10여 가구의 마을에 순식간에 퍼져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알게 했다.
그 후로 마을의 이 세 쌍의 부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망태기에 자신의 한두 살 된 아이를 업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산골짜기로 가서 천으로 아이를 감싸 땅에 눕혀 잠들게 한 후, 어른들은 연공을 시작했다. 그들은 건전지 두 개가 들어가는 카세트 라디오로 연공 음악을 틀어놓고 연공했는데, 매번 연공을 마쳐야 아이들이 깨어났다. 동수가 말하기를, 한번은 그들이 마침 두 번째 공법인 ‘복전포륜(腹前抱輪)’을 연공하고 있을 때 카세트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지 않아 보니 건전지가 다 닳아 있었다며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몹시 걱정했다고 했다. 한 동수가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 청해봅시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持해 주시어 연공을 마치게 해달라고 청합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세트 라디오의 음악이 다시 울려 퍼졌고, 그 순간 동수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날부터 이 건전지 한 쌍을 또 반년 넘게 사용했다! 사부는 정말 너무나 자비로우시다.
3일간의 홍법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으나, 대법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자 갈망하던 생명들의 미소는 내 기억 속에 고정되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6. 잊지 못할 순간


역사 사진: 1999년 4월 17일 운남 해경(海埂) 만인 법회 사진
1999년 4월 17일, 곤명 파룬따파보도소는 곤명 전지 해경(海埂)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 집체 연공 및 법학습 심득교류대회(운남에서 참가 인원이 가장 많았던 법회이자 박해 전 마지막 법회)를 개최했다. 법회에 참가한 파룬궁 수련생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이는 83세였고, 가장 어린 이는 생후 수개월에 불과했다. 23명의 수련생이 대회에서 발언 교류를 진행했다. 전체 법회 회장은 대법의 상화하고 자비로운 에너지 장 속에 잠겨 있었으며, 수련생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에서는 전체 법회 회장이 일곱 색깔 노을(七彩霞光)로 둘러싸여 있고 무수한 파룬이 수련생들 사이에서 회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천목이 열린 동수는 대회장 상공에 사부님의 거대한 법신(法身)과 호법신(護法神), 그리고 여러 신들이 참여한 것을 보았는데 매우 장관이고 수승(殊勝)했다.
수만 명이 모인 회의장이었으나 교통경찰이 차량을 지휘하지 않았고 전담 요원이 질서를 유지하지 않았으며, 뜨거운 태양 아래 여러 시간 동안 한 사람도 우산을 쓰지 않았으나 한 명의 일사병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람이 떠나고 장소가 비었을 때 바닥에는 종이쪽지 하나 남지 않았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도처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는 행위와 거동, 그리고 교류대회의 장관은 회장에 잠입했던 사복 경찰과 구경하던 대중을 크게 감탄하게 만들었으며, 사람들 사이에 아름다운 일화로 전해졌다.
당시 ‘4·17’ 법회에 참가했던 한 대법 수련생은 한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다음 날 우리는 일찍 해경 축구 훈련 기지에 도착했는데 겨우 6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기지에는 이미 사방에서 모여든 수많은 공우(功友)들이 집결해 있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일찍 왔는데, 어떤 이들은 이번 성회(盛會)에 참가하기 위해 밤을 새워 달려왔다고 했다. 이는 정말 나를 놀라게 했고, 모두의 주동성과 적극성이 이렇게 높다니 감격스러웠다!
대회장 내에는 파룬따파 음악이 방송되고 있었고, 모든 공우가 정연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제2장 공법인 파룬장법(法輪樁法)을 연공하고 있었다. 우리도 도착한 후 따라 연공했는데, 회장 위의 분위기는 정말 감동적이었고 어떤 소란이나 시끄러움도 없었으며 신체 느낌이 극히 편안했다.
아침 8시, 조직위원회 인원이 대회의 시작을 선포하자 전 기지의 동수 2만여 명이 즉시 바닥에 앉았고 순식간에 적막에 싸였다. 단상 인원은 대중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사부님께서 대회장에 직접 오지 못하셨다며, 우리 전체 운남의 대법제자들이 위대하신 사부님의 생신을 축하드린다고 알렸다. 이어서 제자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발언하며 대법을 배운 심득과 깨달음을 교류했다. 발언하는 동수가 정말 많았는데 그들은 엔지니어, 교사, 의료계 종사자, 노동자, 농민, 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온 이들이었다. 젊은이, 노인 모두 사부님의 대법에 자신을 대조해 보며 법에 대한 인식, 개인의 제고, 법을 배우고 실수(實修)한 후 자신의 격차를 찾아낸 깨달음과 어떻게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왔는지를 이야기했다. 이는 당시 막 수련에 입문한 나 같은 신수련생에게 정말 시야를 크게 확장시켜주었다. 이번 법회는 나의 수련과 제고에 매우 큰 촉진 작용을 했으며, 진정 사부님께서 《홍음》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
學法得法
比學比修
事事對照
做到是修
(《홍음》 〈실수〉)와 같았다.
이날은 만리 한 점 구름이 없었고 비록 봄철이었으나 태양이 불같이 뜨거웠는데, 우리 전장의 대법제자들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호하에 한 사람도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비록 따가운 햇볕에 피부가 검게 탔지만, 우리는 줄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껴 매우 편안했으며, 심지어 점심 식사를 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앉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금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사부님의 거대한 법신이 우리를 위해 장을 보아주고 계신다고 말했는데 정말 너무나 신기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제자들을 위해 마음을 다 쓰시고 온갖 고생을 겪으셨으니,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대로 당신이 진짜로 수련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당신을 책임지신다. 현장에 있던 우리 전체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 대한 정신(正信)에 의지해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르고 ‘진·선·인’을 닦아 좋은 사람이 되며, 최대한 속인에 부합해 수련하며 세세한 부분부터 실천했다. 대회가 폐회를 선포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으나 조금도 어지럽지 않게 질서 정연하게 대회장에서 퇴장했다.
나를 감동시킨 또 한 가지 일은, 2만여 명의 집회였음에도 해산한 후 장소에 뜻밖에도 쓰레기나 오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각자 자발적으로 자기 주변의 쓰레기와 오물을 봉투에 담아 회장 밖으로 가져가 쓰레기통에 넣었기에 전체 축구 훈련 기지는 마치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했으니 정말 불가사의했다! 사부님께서 전체 대법제자들을 가호해 주시어 우리가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다. 나는 내가 대법의 일원이 될 수 있었음에 깊은 영광을 느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