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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 수련 중의 심득체회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래에 내가 정법 수련 중에서 겪은 심득체회를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한다.

1. ‘근본집착’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

구우 ‘성(成)·주(住)·괴(壞)·멸(滅)’ 과정 중에서, 아직 정법(正法)에 동화되지 않은 생명은 모두 멸망 시기에 속해 있으며, 그들 자체는 구법(舊法)의 위사(爲私)한 특성을 띠고 있다. 물론 그들은 고층 생명이기 때문에 이러한 위사함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하는 일이 모두 위공(爲公)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주로 그들이 ‘가늠하는 표준(衡量標准)’에 이미 편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수련자도 수련하기 전에는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근본 집착’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은 실제로 구법(舊法 구우주)의 뿌리에서 사부님 대법(大法) 안의 뿌리로 전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빨간색 안경을 쓰고 어떤 방에 들어갔을 때, 사물의 진실한 색을 똑똑히 보려면 먼저 안경을 벗어야 한다. 이른바 우리가 법을 얻도록 인도한 근본 집착은 실제로는 구법(舊法)으로 구성된 이기적인 관념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찾아내어 버려야 하는데, 이는 마치 안경을 벗는 것과 같다. 오직 그것을 제거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대법을 인식할 수 있으며, 구법의 잡념(雜念)에 교란받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근본 집착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구우주의 관념 또는 특성을 가지고 대법을 이해하기 쉽다. 우리가 ‘위공(爲公)’이라고 생각하며 했던 많은 일들도, 이 ‘위공’이 대법으로 가늠한 것인지 아니면 구우주의 표준으로 가늠한 것인지를 명확히 볼 필요가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동안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당초 생각인지, 사람의 이 마음이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정진요지 2》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2.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心不動)’에 대한 이해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처럼 큰 것을 연마(煉)하는데, 우주를 연마하는 것과 같다.” (《전법륜》 〈제1강〉)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바로 그로써 가늠한다.”(《전법륜》 〈제1강〉)

“견정한 수련인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경문 《베트남 수련생들에게》)

“우리는 겨냥성이 있기에, 진정하게 그 마음을 집어내어 그 마음을 제거하는데, 그러면 수련이 매우 빠르다.”(《전법륜》 〈제5강〉)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心不動]’에 대한 나의 이해는 바로 속인 마음이 없는 것이다. 마치 입자가 원자에 닿을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이 존재하는 경계가 입자의 경계와 다르기 때문에 비로소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층차 제고와 관계가 있다.

내가 깨달은 한 층의 내함(內涵)은, 우리 구우주 천체에 속한 모든 사물은 우리의 집착심이 변함에 따라 사부님에 의해 개변된다는 점이다. 우리 인류 이쪽에서 모순 속에서 안으로 찾을 수 있고, 집착심을 내려놓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에 도달한다면, 우리가 수련해 낸 대응하는 층차의 공간은 ‘표준이 변하지 않음’을 획득하게 되며, 그것이 곧 그 층차 중에서의 ‘도(道)’이다. 이 ‘도’는 그 층차 중의 ‘진·선·인’과 동화된다.

이때 이미 이 도에서 벗어난 생명[정부(正負), 좋고 나쁜 생명]은 모두 이 ‘도’로 바로잡힌다. 그때는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한 층의 내함이다.

3. 무신론의 기원에 대해

“그가 그처럼 높은 층차 중까지 수련하지 못했을 때, 그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층차가 결정하는 것으로서, 그의 사상도 승화해 올라갈 수 없다.” (《전법륜》 〈제2강〉)

우주의 기원을 말하자면, 도가(道家)에는 ‘무극이 태극을 낳는다(無極生太極)’는 이론이 있고, 불가(佛家)는 ‘사대가 모두 공(四大皆空)’임을 말한다. 도가의 ‘무(無)’와 불가의 ‘공(空)’에 따르면, 우주는 혼돈이자 질서가 없는 상태에서 탄생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식한 ‘무’와 ‘공’이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역시 일종의 생명이고, 일종의 물질이며, 일종의 신(神)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구우주의 그런 주신(主神)들은 자신보다 높은 신을 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위가 곧 허무(虛無)였다. 이로 인해 그들은 더 높은 생명이 존재함을 믿지 않게 되었고, 이 점이 그들이 정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이것이 삼계(三界)에 인류를 창조하여 많은 주신(主神)이 대법에 동화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운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류가 본래 구우주 멸(滅) 시기의 생명이기에 더 고급인 생명이 존재함을 믿지 않는 현상(무신론)이 체현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구우주 고층에서부터 반영되어 내려온 특성이다.

“말후(末後)가 도래하자, 창세주는 천체 중의 수많은 신ㆍ왕ㆍ주와 그리고 더욱 거대한, 천체의 한 지역을 주재(主掌)하는 각각의 대신(大神)ㆍ대각(大覺)들이 하세하여 사람으로 전생하도록 동의했으며, 그들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봉하고, 가장 고생스럽고 가장 무능력하고 지혜가 없는, 완전히 봉폐(封閉)된 인체 내에서 고생을 겪고 소업하게 하며, 고생 속에서 정념에 의거하여 선량한 본성을 지키게 하는데, 그래야만 뭇 신과 창세주에 의해 정시(正視)될 수 있고, 비로소 미래에 승인될 수 있다. 인류사회 중에서 반복해 전생하여 점차 죄업을 없애고 선덕(善德)이 갈수록 많아진 그런 사람들은 구도 중에서 반드시 선택되는 것으로, 말후(末後)의 말(末)에 구도를 시작할 때 반드시 창세주에 의해 신우주로 구도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인류사회 ‘미혹(迷)’의 존재 방식은 창세주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개창한 특수한 사회이자 생명이 생존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미혹 중에서 어느 누구에게 미혹을 타파해달라고 부탁해도 모두 소용이 없다. 하늘에서 땅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생명도 중생을 구도하는 이 환경을 감히 파괴하지 못한다.” (《인류사회는 왜 미혹의 사회인가》)

4. 반본귀진(返本歸真)에 관한 체회

소는 인류와 매우 가깝고 온순하며 선량한 동물이다. 많은 사람은 소가 인내와 역래순수(逆來順受, 역경을 순순히 받아들임)를 상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왜 소가 노자(老子)의 탈것으로 선택되어 대도(大道)를 싣는 상징이 되었을까?

청우(青牛)가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순진무구하고 질박한 본연의 상태이며, 아울러 일종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정신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그것이 선택되어 ‘도를 싣는(載道)’ 형상이 된 원인일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사회에 유행하는 ‘운명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과 완전히 상반된다. 질투심과 쟁투심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서로 경쟁하고 각축하며 더 높은 지위와 성취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관념은 사실 도가에서 말하는 자연스러움에 따르고 천도의 법칙을 따르는 것에 위배된다.

《서유기》 중에서 당승(唐僧) 사도가 청우정(青牛精)을 만나는 하나의 관이 있다. 청우정은 금강탁(金剛鐲)에 의지해 손오공 및 도우러 온 수많은 신선의 병기와 법보를 거의 전부 거두어 가 버렸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여기에는 한 층의 비유가 함축되어 있을 수 있다. 청우가 대표하는 ‘무사(無私)’는 중생의 ‘사심(私心)’을 제약하고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강탁에 의해 거두어진 병기(兵器)와 법보(法寶)는 어느 정도 중생이 집착하고 의지하는 자아와 사념(私念)을 상징하며, 이 ‘둥근 고리’ 속에 갇힌 것은 바로 각자의 사심과 집착이다. 진정으로 순정하고 무사한 경계에 직면했을 때, 이러한 자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역량은 곧 무능력해지고 만다.

우주의 성·주·괴·멸 과정 중에서, 이전에 나는 대법제자가 자기 우주 체계의 대표이며, 반본귀진은 생명의 근원으로 회귀하는 것, 즉 내가 대표하는 우주를 멸(滅)의 시기에서 성(成)의 초기 시기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렇게 하면 나는 내 생명이 위대하고 굉대(宏大)

하다고 느끼게 만드는데, 이는 실제상 바로 ‘위사(爲私)’이며, 구법리(舊法理)와 구우주의 특성이다.

현재 내가 깨달은 바로는, 대법제자의 뿌리는 사부님께 있으며, 나의 생명은 사부님께서 구도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반본귀진’은 사부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와 일치하고 사부님의 의지(意志)를 수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령 사부님께서 내가 한 포기 작은 풀이 되기를 바라신다 해도 나는 매우 영광스럽게 할 것이니, 왜냐하면 그것 역시 내가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와 일치하는 것이며, 그것이 생명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다.

“천체ㆍ우주ㆍ생명ㆍ만사만물은 우주 대법이 개창(開創)한 것인바, 생명이 그에 어긋나면 곧 진정한 패괴(敗壞)이고, 세인이 그에 부합할 수 있으면 진정 좋은 사람이며 동시에 선보(善報)와 수복(福壽)이 따를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그에 동화하면 당신은 바로 득도자(得道者) ⎯⎯ 신(神)이다.”(《전법륜》 〈논어〉)

미래의 법은 더는 성·주·괴·멸의 법이 아닐 것이며, 신우주는 또한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이 신우주 안에서 여러 주신들은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호탕한 불은(佛恩) 아래에서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상은 나의 제한된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