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성(畢成)
【정견망】
요 며칠 우리 소조는 함께 스물여덟 해 전의 ‘북경 방송국 사건’을 기념했다. ‘북경 방송국 사건’은 1998년 5월 23일 북경 방송국의 《북경 특쾌(北京特快)》 프로그램이 중국과학원 원사이자 과학 건 하조휴(何祚庥)의 파룬궁 공격 언론을 사용하고, 파룬궁 수련생을 인터뷰한 화면을 단장취의(斷章取義)로 조합해 인터뷰 녹음을 왜곡해 대중을 오도하고 기만하며 대법을 먹칠하고 비방한 사건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북경 지역을 위주로 한 대법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북경 방송국에 찾아가 사실 진상을 확실히 알렸다. 1998년 6월 2일, 북경 방송국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후, 이는 방송국 개국 이래 가장 심각한 실책 중 하나라 여겼으며, 이후 다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파룬궁을 새로이 정면적으로 보도했다. 이로써 북경 방송국 《북경 특쾌》 사건은 타당하게 해결되었다. 이것이 지금 중문 명혜망 첫 페이지 《핫이슈 특집(熱點專題)》 코너에서 첫 번째에 위치한 ‘북경 방송국 사건’이다.
[역주: 《핫이슈 특집(熱點專題)》에 425 천안문 분신 사건 등 파룬궁 기본 진상 핫이슈들을 선별해 모아놓은 게시판이 있는데 여기서 첫번째 주제가 ‘북경 방송국 사건’이다. 현재 이 코너는 중문 명혜망에만 있고 한글 명혜망에는 없다.]
우리 지역의 일부 동수들도 다행히 ‘북경 방송국 사건’에 참여했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잇따라 경문 《뿌리를 캐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와 《창춘보도원법회설법》을 발표하셨다. 우리는 함께 동수들의 회고 문장을 검토하며, 당시 이 사건에 참여했던 동수들이 중대한 고험에 직면했을 때 자아를 내려놓고 대법을 수호한 정념정행(正念正行)의 장거를 다시금 느꼈다.
당시 많은 동수 역시 이 일을 알았으나, 모두 각종 원인으로 북경 방송국에 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곳이 정부 부처이기에 두려워하는 마음과 우려하는 마음이 있어 가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이 아니므로 가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으며, 어떤 이들은 이것이 우리 개인 수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여겨 가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뿌리를 캐다》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은 이 일 자체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이런 일을 통해 일부 사람들을 폭로했는데, 아직도 근본적으로 속인의 관념을 개변하지 못했고, 아직도 사람이 사람을 수호하는, 그런 유의 관념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가지 않은 그 동수들 중 일부는 사람의 기점에 서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기에 속인의 관념을 바꾸지 못한 것이니, 한 속인이 사악한 당(邪黨, 공산당)에 직면하면 확실히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기 마련이다. 가지 않은 다른 일부 동수들은 오직 개인의 원만(圓滿)만을 중시하는 일반 수련인의 각도에 서 있었으니, 이러한 동수들 역시 똑같이 이러한 일에 참여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자신을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창춘보도원법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견정실수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당신의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여러분이 모두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참여하지 않았으며, 당신 자신은 ‘견정실수 했다’는 이런 뜻인가? 말 속에는 자신이 원만(圓滿)에 이를 기회를 잃어버린 이유와 근거를 찾는데, 나에게까지 마음을 썼다. 나는 이치를 이미 다시 더 분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말했다. 매 한 차례의 일, 이렇게 큰일이 나타났을 때는 모두 다 가장 좋은 고험이며 수련생이 그 원만으로 걸어 나오는 가장 좋은 한 걸음이고, 가장 좋은 시기이다. 우리 어떤 사람들은 바로 걸어 나올 수 있지만, 어떤 사람, 그는 또 자신이 실수(實修)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원만(圓滿)을 이루는데도 당신은 움직이지도 않는다니,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어쩌자는 것인지, 당신은 원만을 이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수련만 하다니, 무엇을 위해서 수련하는가? 원만이 아닌가? 실제로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 구실을 찾고, 당신의 다른 한 마음을 위해서 구실을 찾고 있다. 실수(實修)하며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평소 표현이 정말로 그렇게 실수하고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가?”
사람의 기점에 서서 수련하며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기 위한 것이라면, 오직 사람의 것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일단 중대한 문제에 부딪히면 필연적으로 개인의 득과 실을 제일 첫자리에 놓게 되며, 얻는 것은 소위 개인의 안전, 이익이 손실을 입지 않는 것뿐이다. 반면 개인 수련의 각도에 서 있다면 자연히 자신의 원만을 제일 첫자리에 놓게 되므로, 자신의 수련에 영향을 주거나 개인 수련과 필연적인 연계가 없는 것은 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수련인은 여전히 이전에 구세력(舊勢力)이 안배한 ‘사(私)’를 기점으로 하는 구우주의 수련 형식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마찬가지로 구우주 ‘사’의 범위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불성무루(佛性無漏)〉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나는 진정한 대법 수련자만이 중대한 고험 앞에서 모든 속인의 관념을 내려놓고 자신을 대법 속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법 속의 한 입자(粒子)로서, 자연히 대법을 개인의 위에 놓을 것이며, 자연히 대법을 수호하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융하는 것이 제일 첫 번째임을 알 것이다. 개인 생각에, 이것이 대법 수련과 과거 개인 수련 형식의 본질적인 구별이다.
내가 보기에 ‘북경 방송국 사건’은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속인의 관념을 내려놓고 사람에게서 걸어 나오며 사람과 결별하는 마디와 같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뿌리를 캐다〉에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늘 나에게 위로 이끌게만 하고 당신들 스스로 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법을 명시적으로 말해야만 당신들은 비로소 움직이며,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거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이런 행위를 수련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
만약 당시에 대부분의 동수가 사람과 결별하는 중요성, 개인 수련에서 정법(正法) 수련으로 전향하는 중요성을 명백히 알았더라면, 이후의 4·25, 7·20, 《구평공산당》의 탄생, 그리고 지난해에 나타난 법난(法難) 속에서 더욱 많은 동수가 참여하여 더 큰 작용을 발휘하고 정법 노정을 따라잡았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고험들 역시 정법 노정이 끊임없이 추진되는 전환점이었다. 우리가 모든 속인의 관념을 내려놓고 사람에게서 걸어 나와 진정으로 대법의 한 입자가 되어야만,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더욱 잘 이해하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융할 수 있다.
스물여덟 해가 흘렀다. ‘북경 방송국 사건’을 기념는 이유은, 한편으로는 대법이 충격을 받고 사부님께서 모함과 비방을 당하실 때 대법 속에서 닦아낸 지혜와 확고함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대법을 수호한 당시 대법제자들의 정념정행에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사람 속에서 걸어 나와 사람의 각종 관념과 철저히 결별하고, 진정으로 무사무아한 신우(新宇)의 정각으로 변하자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 함께 서약(誓約)을 이행해 사부님을 따라 신기원을 개척하자!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