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朱同)
【정견망】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련을 처음처럼 하면 도(道)를 반드시 이룰 것이다!”(《대만교류회에 보냄》)라고 하셨다. 최근 이 구절 법에 대해 깨달은 바가 있어, 이를 써내 교류하고자 한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부디 법을 스승으로 삼으시기 바란다.
우리의 수련은 가장 미시적인 것에서부터 가장 표면(表面)까지 이른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처음처럼 수련하는 ‘수련여초’(修煉如初)를 해내지 못했는데, 그것은 잘 닦이지 않은 표면에 교란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련을 시작할 때는 나의 능력이 강한 가장 미시적인 곳에 있었으므로 표면의 교란을 느끼지 못했고, 그리하여 돌비맹진(突飛猛進)하며 법을 공부하고 수련함에 모두 교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제고하려면 잘 수련된 부분이 격리되어야 하는데, 격리된 후에는 반드시 잘 닦이지 않은 마음을 느끼게 된다.
조금 강할 때 그것들은 모두 형체가 있으며, 검은색을 띤 자신의 모습인데 특히 그것들을 자신으로 오인하거나 그것들의 사상을 자신의 생각으로 오인하기 쉽다. 그것들은 모두 인체를 좌우할 수 있어 누가 올라오면 누가 주인이 되므로, 주의식(主意識)이 반드시 강해 그러한 교란에 대항해야지 인체의 통제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무위(無爲)와 공(空)의 도리를 명백히 알아야 하는데, 주의식이 공(空)하고 무위해야만 집착심과 업력(業力)의 교란을 느낄 수 있으며, 교란과 대항하는 것이 바로 그것들을 소멸(消)하는 과정이므로 그것들은 갈수록 약해질 것이다. 반드시 법(法)으로 가늠해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본체(本體 번티)의 감당이 없으면 본체의 변화도 없다. 내 인체의 이 일면(一面)은 매우 우둔해서, 결가부좌를 연마한 지 30년이 되었어도 아직 내놓을 만한게 없어 부끄러우며, 발정념(發正念)을 할 때도 자주 교란을 받는다. 자주 인체가 매우 괴롭고 무거우며 더럽다고 느껴져 연공을 견지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것들은 모두 착각이다. 정상적으로 연공하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법을 배울 때 간격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잡념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나타날 수 있고 또 정상적인 현상이다. 마치 연공할 때 입정(入定)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고정해 버리고(우리가 입정할 때는 일념을 지켜야 한다), 계속해서 법을 배우면 된다.
수련여초를 말하려면 처음의 상태를 돌아 보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근기(根基)가 아주 좋은 부류에 속하는 제자라 할 수 있다. 때로 나는 자신이 아주 오랜 연대 이전에 이미 대법제자였고, 이번 생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보관해 주셨던 파룬(法輪)을 다시 내게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처음 《전법륜》을 보았을 때는 반도 보지 않았을 때 반개오(半開悟) 상태가 되어 대법의 진실한 체현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때는 사부님의 법신(法身)이 시시각각 나를 지켜보셨고, 문제가 있을 때는 사부님께서 직접 대답해 주셨다.
그러나 어느 날 집착심이 일어나 사부님의 법신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해주시길 바랐더니, 법신이 그 뒤로 잘 현현(顯現)하지 않으셨다. 아…… 사부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이처럼 큰 집착심이라니, 보이든 보이지 않든 다 집착해서는 안 되며, 법에 따라 수련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 그때는 정말 너무나 편안하고 너무나 행복해서 때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그 경지에 머물고만 싶었다. 법을 배우고 공을 연마하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과거 진상 사이트에서 교류하러 온 한 동수를 만났는데, 그녀는 자신이 수련을 더는 견지하지 못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당시 나에게는 수련에서 ‘견지(堅持)한다’는 느낌이 없으며, 수련은 내게 가장 기쁘고 가장 재미있으며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 한동안 나의 문제는, 수련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주변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몰랐고, 매우 고독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어 주변 환경과 융합하지 못했던 점이다. 나는 당시에 동수에게 “견지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그녀 주의식의 생각이 아니며, 그녀가 교란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임을 말해줄 생각도 하지 못 했다. 또한 자세히 회상해 보니 나에게도 대략 몇 번 그런 교란이 있었는데, 이틀 쉬거나 밖에 나가 좀 놀거나 혹은 쇼핑으로 펑펑 쓰고 나면 괜찮아지는 느낌이었다. 비록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교란이 있든 착실하게 법을 배우고 공을 연마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떤 이는 그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신(神)의 경지의 감수(感受)를 조금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안다면 장담하건대, 단 1초라도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 나는 법을 위해 와서 신의 명(神命)을 포기한 생명들은 모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의 말로 표현하는 것을 허락해 준다면 모두 대단한 캐릭터들이다. 물론 이 한 부의 대법 역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며, 그를 아는 이들은 모두 고급 생명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두고 “바퀴 공(輪子功)”이라며 비아냥거리는데, 나는 사실 그가 가련하다. 그는 파룬이 얼마나 신성한 고급 생명인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얼마나 큰 기연(機緣)을 놓쳤는지 알지 못한다. 대법을 말할 때 이미 ‘위대하다’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나는 파룬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 아무리 많은 지면을 할애해도 파룬의 구체적인 체현을 명확히 묘사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이것 역시 내가 본 일부에 불과하고 내 경지를 초월한 것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므로 사람 이곳에서는 말할 방법이 없다.
그때는 수련에 매우 부지런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법 배우는 데 썼고, 다섯 가지 공법을 매일 한 번씩 연마하려고 노력했으며, 거의 매 순간 수련 제고에 관한 일을 생각하느라 함께 놀던 좋은 친구들과도 왕래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의 잘못을 범한 것인데, 바로 친척, 친구, 동료들을 전혀 돌보지 않고 매일 필수적인 업무 외에는 다른 것을 일절 관여하지 않아 타인에게 너무 차갑다는 느낌을 주었던 점이다. 이는 대법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우리는 최대한 속인에 부합해 수련해야 한다. 균형을 잘 잡아야만 어떤 환경에서든 원융(圓容)할 수 있다.
지금 다시 어떻게 수련여초를 해낼 것인가를 보면, 사람 몸을 잘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교란은 마치 모두 신체에서 발생하는 듯한데, 인체가 없으면 이곳에 머물 수 없다. 한번은 운전을 하다가 횡단보도 위의 한 소녀를 보았는데, 긴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려 아주 예쁜 모습이었으나, 나는 그녀가 완전히 홍진(紅塵) 속에 미혹되어 있음을 느꼈고 그 때문에 한동안 꽤 괴로웠다. 그 미혹은 마치 물질처럼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인체를 소유하면 반드시 교란이 있을 수 있는데, 칠정육욕 등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련 시간이 길어지면 그것들은 갈수록 옅어져 옅고도 옅은 존재가 된다. 만약 교란을 받았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교란받기를 원한 것이고, 스스로 교란을 허용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의식이 반드시 대법에 동화되기를 원해야 한다는 점이며, 그 외의 어떤 일념(一念)도 모두 교란이다. 신체가 괴롭다거나 하는 등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정상적인 현상이니, 어떤 상황에서든 착실하게 법을 배우고 공을 연마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 된다.
아울러 우리는 모두 노제자(老弟子)들이니, 법을 배울 때는 다른 사람을 많이 이끌어 주는 것이 좋은데 특히 우리 아이들이다. 내가 혼자 연공할 때는 사부님께서 대개 현현하지 않으시지만, 아이를 데리고 함께 연마할 때는 사부님 법신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있으며 연공장이 나 혼자 연마할 때보다 훨씬 강렬하다. 아이가 만약 법을 듣기 싫다거나 연마하기 싫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이가 원치 않는 것이 아니라 교란을 받은 것이므로 몇 번 더 말해 주면 괜찮아진다. 만약 자신이 수련을 잘했다면 말하는 효과도 좋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