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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얻어 미망에서 광명으로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의 전반기 인생을 돌아보면, 마치 한 편의 고난 가득한 드라마와 같아서 장면마다 가슴 아픈 눈물뿐이었다.

나와 남편은 아주 머나먼 곳에서 인연이 닿아 만났다. 내 고향은 원래 흑룡강인데, 요령성의 이 도시로 와서 어쩌다 보니 그와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생의 행복이란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형제자매는 10명이었는데, 남편은 성격이 유독 폭력적이었고 목숨을 걸고 도박에 빠진 노름꾼이라 아무리 큰 도박판이라도 참가하곤 했다. 게다가 그에게는 법을 지키지 않는 남동생과 빚 독촉을 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남편이 도박에 빠진 출발점은 겉보기에는 좋아 보였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한 집착이었다. 바로 도박을 통해 자기 집을 잘살게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처럼 목숨을 아끼지 않는 집착 속에서, 남편은 나와 딸의 처지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도박 자금을 대기 위해 집안 돈을 모조리 가져갔고, 돈을 주지 않으면 나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욕설과 매질 속에서 그는 거칠게 말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나와 딸은 먹고 입는 것을 아꼈다. 한번은 장을 보러 거리에 나갔을 때 아이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가장 먼저 어느 것이 싸고 어느 것이 비싼지를 생각하며 비싼 것을 보면 사지 않았다. 나와 딸은 이렇게 힘들게 생활했는데, 남편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을 했고 아이는 나를 감싸 안았다. 목숨을 돌보지 않는 남편의 도박과 집안 생활의 곤경을 마주하며, 나는 한때 삶을 포기할 생각도 했으나, “엄마, 어디를 가든 나를 데리고 가, 나를 버려두지 마!”라고 하던 딸의 말이 떠올라 자살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이혼할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내가 떠나면 남편이 친정을 부수겠다고 했고, 내가 영원히 자기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남편도 내가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고 성격이 온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혼을 제기하기도 전에 벌써 나를 문밖으로 쫓아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나에게 “성격이 좋아서 말할 때마다 웃는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시의 남편은 나를 정말 괴롭고 가슴 아프게 했으니, 참으로 말로 다 하기 어렵다.

1996년, 나는 다행히 대법을 얻어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고, 내 삶의 고난이 지닌 인연 관계를 알게 되었으며,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생명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도리를 알게 되었다. 법을 배우고 난 후, 나의 두통, 심장 두근거림, 류마티스, 신경증이 모두 나아 정말 병이 없이 몸이 가벼워졌다.

나의 천지개벽하는 변화를 보고 남편은 처음에 의아해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변화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호기심을 품고 대법을 접하기 시작했다.

1997년 상반기, 남편도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고, 그때부터 도박 생활을 끊고 더는 나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성격도 좋아졌다. 사실 그는 나에게만 성질을 부린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반장 역할을 하는 단장(段長)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성질을 부려 아무도 그를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남편은 법을 얻은 후 360도 큰 변화를 일으켜, 마치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직장 사람들도 남편의 변화를 보고 모두 경탄했다. 어떤 신비로운 힘이 그를 환골탈태하게 하여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 부부가 대법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법을 얻어 혜택을 본 몇 가지 일을 말해보고자 한다.

1. 시어머니와 그 가족을 선하게 대하다

과거에는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크고 작은 일로 모두 남편을 찾았고, 나는 끊임없이 그 집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만나면 마치 원수 같았다.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 시어머니와 그 가족들을 다시 대할 때는 진·선·인(真·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일을 할 때 남을 먼저 고려했다. 나는 시어머니도 일생 동안 참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많은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입원했는데 남편의 자매들이 모두 병원에 가기를 원치 않아, 내가 큰동서와 함께 병원에 가서 시어머니를 돌보았다. 시어머니는 내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결벽증이 있는 것을 알고 미안해하며 내가 수발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누구나 늙는 날이 있는 법인데, 제가 무엇을 싫어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또 한번은 시어머니의 80세 생신이었는데, 나에게 먼저 1,000위안을 달라고 요구하며 나보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녀와 원수처럼 지냈으니 1,000위안은커녕 푼돈 하나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또 남편의 여동생이 우리 집에서 2,000위안, 6,000위안을 빌려 가고는 갚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먹고 입을 것을 아끼며 모은 돈이었지만, 그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나는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2. 딸의 가정이 대법의 혜택을 받다

우리 부부가 법을 얻은 후, 우리가 대법을 배우고 외우고 기억하자 딸도 따라 배웠다. 1999년 박해가 발생한 후, 나와 남편은 북경으로 상방(上訪)하러 가서 대법 사부님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딸은 집에서 어린 동창의 도움을 받아 음악 플레이어를 밖으로 메고 나가 사람들의 새벽 연공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나와 남편이 돌아온 후, 딸은 경찰이 연공장에 와서 연공을 못 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해 딸은 겨우 열 살이었는데, 공포스러운 분위기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딸이 나이가 들어 이후 가정을 이루고 결혼하여 사회에 진출했다. 비록 그녀는 우리처럼 법을 배우고 연공을 하지는 않지만, 어릴 때 우리를 따라 함께 법을 배울 때 익힌 법리(法理)가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딸의 가정은 생계를 위해 대형 트레일러 화물차 한 대를 장만했다. 수년 동안 그들 부부는 줄곧 이 운송 업무에 종사해 왔으나 시종 평안하고 무사했다. 이처럼 위험성이 따르는 일을 순조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녀의 마음속에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딸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는데, 길 위에서 차 머리와 뒤쪽 트레일러 차체가 분리되어 겨우 일부만 연결되어 있어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웠고, 이 대형 트레일러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생명체라고 생각하여 온 차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하여 딸과 사위는 순조롭고 평안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대법에 감사하기 위해 1,000위안을 내놓아 대법 자료를 인쇄하는 데 쓰이게 했다. 그 뒤로 그녀는 차에 타기만 하면 ‘파룬따파하오’를 외운다.

3. 파룬따파의 복덕을 타인에게 전하다

우리 온 가족이 가진 모든 복보(福報)는 전부 파룬따파가 준 것이다. 우리가 직접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은 세상 사람들도 대법의 진상을 알고 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모함하는 거짓말을 타파하여, 선량함과 정의를 선택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가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와 남편은 수년 동안 동분서주하며 논밭 길, 시골 마을, 거리와 아파트 단지를 다녔다. 우리 둘은 협력하여 진상을 알리고 삼퇴(공산당 3대 조직 탈퇴)를 권유했다. 그 과정에서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중국공산당의 탄압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며, 마음속에 사부님과 대법을 담고 정념정행하며 오직 중생이 구도될 수 있기만을 바라며 대법 진상을 인간 세상에 널리 전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 진상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진상을 이해한 세상 사람들 중에는 우리에게 밥을 대접하는 이도 있었고, 열정적으로 우리와 악수를 하는 이도 있었으며, 우리를 안아 주는 이도 있었다. 한번은 60대쯤 되어 보이는 어느 아주머니가 진상을 확실히 알고 난 후, 우리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려고 했다. 나는 얼른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우리에게 이러지 마시고,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말했다.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와서 파룬따파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