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올해 85세이며,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가끔 아들, 손자, 손녀들이 와서 보는데, 내가 매우 건강한 것을 보고 모두 매우 즐겁게 생각한다.
나는 매일 아침 3시 정각에 일어나 연공을 하며, 다섯 가지 공법을 한 번에 다 하는데 매일 이와 같다. 아침 식사 후에는 집으로 오는 몇 명의 대법 동수들과 함께 사부님의 대법을 통독한다. 법을 다 배운 후에는 동수와 함께 밖으로 나가, 세상 사람들을 만나면 대법의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권하며 진상 저널을 배포한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비록 가끔 위험한 상황을 만나기도 했지만, 모두 매우 평온하게 걸어왔다.
1. 대법에 따라 수련하며, 친척을 선하게 대하다
나는 1997년에 사부님의 대법을 얻었다. 당시에 나는 온몸에 병이 있었는데, 특히 심장이 좋지 않았고 위장도 좋지 않았으며 결장염도 있었다. 병증의 고통으로 인해 정신도 매우 쇠약했다.
법을 배우고 연공을 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파룬이 회전하는 것을 보았다. 그 후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연공함에 따라, 나의 온몸의 병증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졌으며 정말로 병이 없어 온몸이 가벼워졌다!
대법의 지도하에, 나는 가족들과 접촉할 때 매 순간 진·선·인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고려했으므로 친척들과 매우 화목하게 지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자식들의 보살핌과 부양이 필요했다. 어머니 슬하에는 다섯 딸이 있었는데, 상의를 거쳐 어머니를 교대로 보살피기로 했으나, 한 사람도 장기적으로 부양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당시 어머니는 78세였고 골반을 다쳐 걸을 수 없었으며 생활비가 없었으므로, 어느 딸과 살든 모두 매우 무거운 부담을 감당해야 했다.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했고, 어머니를 보살피는 것은 바로 자신이 도리상 사양할 수 없는 책임이자 의무이며, 이는 자식으로서 마땅히 다해야 할 효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매들에게 “내가 엄마랑 살께, 교대로 보살피지 말고”라고 말했다. 자매들은 말로만 하면 안 되니 각서를 쓰자고, 후회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모두 친자매인데 내가 한 말은 책임질 것이니 무슨 각서를 쓰느냐고 말했다.
나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이미 결혼했고 나머지 둘은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에 비록 나와 남편 모두 실직해서 생활비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 한 분은 아직 부양할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두 아들이 안방에 거주하게 하고, 나와 외부로 일을 다니며 돌아온 남편이 식모방에 살았다.
어머니는 대퇴골을 다치셨기 때문에 대소변을 모두 방에서 해결해 방 안 냄새가 심했다. 다행히 두 아들이 외할머니에게 매우 효성스러워 이를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나와 어머니는 6년을 함께 살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지속되었다.
2. 대법이 난을 만났을 때, 저지를 돌파하고 공정한 말을 하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 사악한 당이 대법과 대법 사부님을 겨냥해 악독하게 공격하고 비방했을 때, 나는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북경으로 상방가고자 했다. 처음에 아들들은 내가 북경에 가려는 것을 몰랐으나, 나중에 내 셋째 여동생이 아들에게 알려주었다. 아들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전도에 영향을 줄까 봐 내가 북경으로 상방하러 가는 것을 저지했다. 북경에 가겠다는 나의 확고한 태도를 보고,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내가 거처하는 식모방의 창문 유리를 부수었다. 나는 간섭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의연하게 동수와 함께 북경으로 갔다.
북경 상방에서 돌아온 후, 나는 아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말해주었고, 정의롭고 위엄 있게 아들들에게 알려주었다. “금생금세(今生今世)에 나는 확고하게 대법을 수련할 것이다!” 두 아들은 나의 정념 어린 견지 하에 더 이상 나를 간섭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들은 진·선·인이 좋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매우 인정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이 이전에 가입했던 사악한 당 조직에서도 모두 탈퇴했다.
나의 큰아들과 셋째 아들이 갈등이 생겨, 조카(큰아들의 아이)가 결혼할 때 셋째 삼촌에게 알리지 않았다. 셋째 아들은 조카가 결혼하는 날에 이르러, 자신도 진·선·인에 따라 일을 처해야 하며 큰형이 자신에게 한 태도를 따지지 않겠다고 말하며, 스스로 큰형 집의 경사에 참석하여 앞장서서 뛰어다니며 큰형 가정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일했다. 마지막에 두 형제는 다시 화목하게 지내며 화해했고, 게다가 아들은 내가 밖에 나가 진상을 말하고 사람을 구하며 탈퇴를 권하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인정하게 되었다.
3. 대법을 공경해 가족이 복을 받다
아들들은 비록 대법을 수련하지는 않지만, 내가 진상을 말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사악한 당의 선전 때문에 대법에 대해 부면적인 사고를 품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손자, 손녀는 모두 대법 사부님을 존경한다.
큰아들의 아이는 5년 전 제남대학교를 졸업한 후, 순조롭게 강소성 무석시 공무원에 합격하여 화이트칼라가 되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아이가 대법에 대해 가진 정념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며, 또한 내가 대법을 수련하여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의 딸인 손녀는 2023년 심양농업대학교를 졸업한 후, 이어 천진 남개(南開)대학교에 합격하여 대학원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손녀는 시험과 면접을 보기 전날, 사부님 법상 앞에 한 대의 향을 피우고 사부를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며 매우 경건했다. 손녀는 심양농업대학교에서 이과를 전공했으나, 천진 남개대학교에 합격한 후 다시 문과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녀의 이후 전도에 매우 유익하다. 사부님께서는 《논어》에서 “인류가 세간에서의 대법의 표현에 대해 마땅히 있어야 할 경건(虔誠)과 존중을 체현할 수 있으면, 사람과 민족 혹은 국가에 행복 또는 영예(榮耀)를 가져다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의 손자, 손녀는 바로 대법을 존경하는 이념 속에서 각자 복을 받았다.
4. 난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다
2011년 어느 날, 나는 아주 먼 동수의 집에서 법을 배우고 나온 후, 자전거를 타고 사거리를 주행하고 있을 때 삼륜 농기계 한 대가 나를 향해 달려왔는데, 나는 피하지 못했고 농기계가 나의 자전거를 긁었으며, 차량 손잡이가 갑자기 돌아가며 허리를 들이받았다. 격렬한 통증 속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아무 일 없다, 나는 대법 수련자다!’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4강〉에서 말씀하셨다.
“그 수련생이 땅에서 천천히 일어난 후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들은 가보세요.” 먼지를 툭툭 털며 남편을 이끌고 갔다.”
사부님께서는 이 일화를 통해 우리 수련자들에게, 갑작스러운 상해를 만났을 때 대법 수련자로서 정념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해야 함을 알려주셨다. 내가 만난 일은 법에서 말씀하신 이야기와 거의 비슷했으므로, 나는 즉시 사부님의 법리를 생각했다. 나는 차주에게 무엇을 책임지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그에게 대법의 진상을 말해주며 그에게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하라고 권했다. 차주는 매우 감동하여 기꺼이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맺음말
내가 비록 이미 85세의 노인이지만, 시력이 약간 좋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신체가 줄곧 매우 건강한데, 이는 모두 대법의 은혜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수많은 세월 동안, 사악한 당이 대법과 대법제자들을 겨냥해 박해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록 놀라움은 있었으나 위험은 없었으며, 시종일관 평온하게 수련의 길을 걸어왔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자비로 보호해주셨기 때문이다. 사부님 탄신일을 맞아 나의 짧은 이야기를 써내어 사존께 한 부의 답안지를 제출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