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친
【정견망 2026년 7월 4일】
어젯밤 새벽, 남편의 절친한 친구인 샹거(祥哥)의 아내 아쉐(阿雪)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샹거가 얼마나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갈등과 서러움에 대해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이튿날, 남편이 샹거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샹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저 고향에 내려가 둘째 형을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끝내 허락을 받지 못했어. 아쉐와 둘째 형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게 우리 부부의 해묵은 불씨가 되었거든. 싸울 때마다 그녀는 토라져 차를 몰고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기곤 해. 나는 한밤중에 정처 없이 사방을 찾아 헤매다 동이 틀 무렵에야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곤 하지. 이런 상황이 너무 자주 반복되니 정말 심신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샹거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부 사이의 집안일은 예로부터 외인에게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양쪽 말이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니, 이른바 ‘청관(淸官, 명판관)도 집안일은 판결하기 어렵다’는 말이 딱 맞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서, 친구가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는 것뿐이다. 그 후로 우리 집 초인종은 밤마다 심심찮게 울려댔고, 집 안은 잠시 시끌벅적해지곤 했다.
사실 샹거는 착하고 낭만적인 사람이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개인적으로 물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당신 혼자 고향에 다녀올 순 없나요? 꼭 아쉐의 허락이 있어야만 하나요?”
샹거는 씁쓸하게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의 허락을 받지 않고 가면 끝도 없이 꽥꽥거릴 거야. 가정의 화목을 위해 늘 내가 물러서는 쪽을 택했지. 하지만 30년 넘게 그러고 나니, 마음속에 남은 건 질식할 것 같은 허무함뿐이야.”
나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듣자 하니 이 결혼 생활에서 많은 결정이 아쉐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네요. 하지만 오늘날 이런 상황이 된 데는 당신의 책임도 일부 있어요. 당신이 매번 동의하고 물러서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에요.”
샹거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조언했다. “때로는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용기 있게 고집할 줄도 알아야 해요. 상대방에게 평온한 목소리로 ‘당신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일만은 정말 중요해요’라고 말해보세요. 확실하고 단호한 태도가 중요해요. 싸우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미 갈등이 발생했다면 상대가 울고 불고 떼를 쓴다고 해서 바로 물러서지 마세요. 그러면 문제는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에요. 그녀가 화를 내더라도 당신은 아픈 둘째 형을 보러 고향에 다녀올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하세요. 소통은 이기고 지는 것을 가리는 게 아니라, 서로의 진짜 필요를 알게 하는 과정이에요. 한번 시도해 보세요.”
그런데 내 조언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 부부가 나란히 팔짱을 끼고 우리 집에 나타났다.
샹거는 나에게 살며시 말했다. “성공했어. 이제 아쉐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됐어.”
그 말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 나는 샹거에게 당부했다. “부부를 멀어지게 하는 건 다툼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심 어린 소통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거야. 많은 결혼이 갈등 때문에 깨지는 게 아니라, 침묵과 억압, 그리고 서운함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거든.”
남편은 절친한 친구가 어둠 속에서 벗어난 것을 보고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해서 많이 변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나와 샹거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야. 아마 둘이서 바닷가를 서성이고 있었겠지.”
남편의 농담에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부가 수십 년을 살면서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왜 없겠는가. 수련은 나에게 ‘안으로 찾기(向內找)’를 가르쳐주었다. 갈등이 생기면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먼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원망은 줄이고 포용은 늘리며, 비난은 줄이고 이해를 넓히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포용이 무조건적인 양보는 아니며, 배려가 나 자신을 잃는다는 뜻은 아니다. 부부 사이에는 포용도 필요하지만 존중도 필요하며, 배려도 필요하지만 경계도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굽히고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며, 가정의 화목을 유지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을 영원히 억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래가는 결혼은 한쪽이 끊임없이 양보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마음속 진실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갈등 속에서 이해와 배려를 배우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부부 사이에서 가장 귀한 것은 영원히 다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투더라도 여전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가 한 배를 탄 동반자임을 잊지 않는 것 말이다. 어쨌든 다투는 것은 다투는 것이고, 잘 지내는 것은 잘 지내는 것이다. 이 둘은 본래 별개의 문제다. 관계를 길게 이어가는 사람들은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마찰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서로의 손을 꽉 잡고 단호하게 나란히 걸어갈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