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약매(若梅)
【정견망】
중화 전통문화에서 평화(平和)는 일종의 철학 사상이자 처세 경지로, ‘음양평형(陰陽平衡)’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일종 ‘도(道)’의 표현이자 유가 ‘중화(中和)’ 사상의 체현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에게 그것은 30년 수련 속에서 침전되어 나온 이성과 성숙이며, 고압 속에서의 확고함과 침착함이고, 역경 속에서의 태연자약함이며, 홍진(紅塵) 속에서의 내면의 안녕이다. 이 모든 것은 사존(師尊)의 은혜와 대법의 불광보조(佛光普照)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래는 ‘진선인(真善忍)’의 혜택을 입은 어느 60대 노인의 행복한 시간이다.
1. 다이어트
퇴직 후 먹고 입을 걱정이 없고 건강하며 자손들이 효도하니, 상인의 말로 하자면 ‘누워 지내도(躺平) 될’ 만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일한 마음이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자라났다.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여 저녁 설거지를 다음 날 아침까지 미루었고,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는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 변했다. 내가 동수들 중에서 비교적 젊은 편이라, 동수들은 심성(心性)상의 문제든 기술적인 문제든 나와 교류하기를 좋아했는데, 원래 나는 주동적이고 인내심 있게 참여했었다. 나중에는 심지어 다섯 가지 공법을 한 번에 다 연마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몸무게도 어느 덧 75kg에 달해 3층만 올라가도 숨이 찼고, 쪼그려 앉기가 힘들었으며 행동이 둔해졌다. 나는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살을 빼야 했다. 반드시 빼야 했다. 수련인의 다이어트는 속인의 다이어트와 완전히 다르다. 며느리도 살을 뺀다며 대대적으로 소동을 피우며 결심을 하고, 자료를 찾고, 영상을 보고, 다이어트 식품을 사고, 보름치 식단을 인쇄해 식탁 옆에 붙여 놓았다. 밤에는 배를 문지르며 초조하게 서성이고 고통스러워했으며, 음식에 대한 탐욕을 억제하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반면 수련인의 다이어트는 평화롭게 집착심을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하여 나는 안일한 마음, 음식을 탐하는 마음, 색욕심, 나이가 들었다고 인정하는 마음을 찾아냈고, 주동적으로 수련하여 닦아버렸다. 하루에 두 끼를 먹고(시간을 아껴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기 위해) 저녁 식사 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으니 몸무게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67.5kg이 되었을 때 동수가 이제 더 빼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내 사상 속에서도 ‘이만하면 됐다’는 일념이 일어나 현재는 줄곧 이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60대인 내게 16세의 심장과 체력을 주시고 ‘몸이 제비처럼 가벼워지게’ 해주신 사존께 감사드린다.
2. 기이한 만남
진상 달력 항목을 하던 동수가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소모품을 구매할 통로가 끊어졌다(단선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한 동수가 조급해하며 나에게 “아직 연락이 닿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닿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저력은 우리가 사존의 제자라는 점과 대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수년간의 수련 속에서 사람을 구하는 항목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신적(神跡)이 나타났고, 사존께서는 해결 방법을 내 머리에 넣어 주곤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전에는 ‘할 줄 모른다’, ‘안 된다’ 같은 단어가 없다. 오직 ‘할 것인지 아닌지’와 ‘할 수 있는지 없는지ㅣ’가 있을 뿐이다.
사존께서는 《북미 제1기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얼마나 큰 곤란이 발생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정확하게 대해야 하며 매우 온화한 심태(心態)로 그것을 대해야 한다.”
나는 먼저 조급한 마음을 닦아버리고 마음을 안정시키기로 생각했다. 나는 성격이 강하고 급한 편이다. 얼마나 급한가 하면, 매년 진상 달력에 들어가는 《길상와와(吉祥娃娃)》와 《송복보보(送福寶寶)》 및 다른 문서는 며칠 간격으로 명혜망에 발표되곤 했다. 그런데 지난해 《길상와와》는 9월 14일에 발표되었고, 《송복보보》는 10월 2일에 발표되었다. 우리는 8월부터 준비를 시작했는데, 《길상와와》가 발표되자마자 당장 해보려고 부추기며 마음속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다. 먼저 《길상와와》를 만들고 있으면 며칠 뒤 《송복보보》 문서가 도착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필요한 수량을 다 마쳤는데도 《송복보보》가 오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에게 《길상와와》만 발송하게 되었다. 비록 그렇다 해도 나를 질책하는 동수는 아무도 없었으나, 동수들의 관용 앞에서 나는 스스로 더 자책했고 너무 자기 생각만 중시했다고 느꼈다. 수련은 뭔가 거창하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 소리 없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내가 연락해야 할 A 동수는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을 뿐이며, 그의 이름도 구체적인 주소도 몰랐고 그저 다른 도시에 산다는 것만 알았다.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며 특히 이성은 더욱 그렇다.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힌 후, 내 의념 속에 나더러 다른 동수의 집으로 가라는 생각이 나타났다. 그 동수의 집은 내가 사는 곳도 아니고 A 동수가 사는 곳도 아니었다. 나는 동수와 함께 자신만만하게 찾아 나서는 길에 올랐다. 차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큰길에서 한 사람과 스쳐 지나갔는데, 머릿속에 홀연히 이 사람이 바로 A 동수라는 생각이 반영되었다. 이때 우리는 이미 여덟아홉 걸음 떨어져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나는 뒤를 돌아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的好)!”를 외쳤다.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나를 향해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단숨에 그 앞으로 달려가 곧바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 후…… 눈물이 흐르는 가운데 사존의 교묘한 안배에 감사드렸다. 사존의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는 법에 대해 또 한 층의 깨달음이 생겼다.
3. 설 쇠기
어머니에게는 두 아들과 한 딸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큰남동생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이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명절이 되면 친지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기 마련이므로, 작은 남동생이 외지로 일하러 간 후 딸인 내가 자연스럽게 온 힘을 다해 어머니를 돌보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나에 대한 어머니의 교육 이념이 생각났다. “너는 집안의 맏이이니 이 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나는 그야말로 ‘남동생을 돕는 마귀(扶弟魔)’가 되어 줄곧 착취당했다.
한번은 아들이 나에게 “아빠가 그러는데 두 분이 이혼한 건 모두 외할머니 때문이래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이해하지 못했다. 명백히 남편이 스스로 바람을 피워놓고 핑계를 대는 것이라 여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내 잘못이었다. 내 마음속에 친정집만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징조가 여기에 있었음을 알게 되자, 검고 어두운 원한의 덩어리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원망하는 마음을 없애려면 먼저 그것이 자신의 잘못임을 인식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무조건 안으로 찾는 것이다. 그런 다음 틀린 원인을 찾아내어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마지막으로 가능한 한 만회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늘 말하는 ‘해내는 것이 수련이다(做到是修)’라는 것이다.
아들이 전화를 걸어 나와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셔 설을 쇠자고 했다.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과 돈봉투, 사진 촬영 등으로 어머니를 매우 즐겁게 해드렸다. 설날 함박눈이 펑펑 내렸는데, 나와 어머니는 동수 집으로 션윈(神韻)을 보러 가려 했다. 아파트 문을 나서며 내가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모자를 씌워 주자, 어머니는 필요 없다고 말하며 내 손을 가로막았다. 비록 결국에는 모자를 썼지만 내 마음은 다소 편치 않았다. 저녁에 내가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누군가 마작을 하자고 부르는 전화였다. 나는 마작을 그야말로 ‘뼈에 사무치게 싫어’했다. 어머니는 이것 때문에 수련의 기연을 잃었고, 또 하나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늘 이것 때문에 싸웠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뇌출혈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어머니는 마작을 하러 가려 했다. 나는 간청하는 말투로 “어머니, 오늘은 설날이니 우리 오순도순 설을 보냅시다,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서둘러 밥을 먹더니 밥그릇을 내려놓고 곧장 나가버렸다.
마음이 너무 괴로워 눈물을 참으며 사존의 《정진요지》〈수련자 금기〉 중의 설법을 외웠다.
“육친정(親情)에 집착함은, 기필코 그로 인해 지치고 얽매이며 마에 사로잡히게 됨이라, 그 정사(情絲)를 잡아 쥐어 일생토록 방해받으니, 나이가 들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몇 번을 외우자 조금 평온해졌고, 어머니에 대한 정뿐만이 아님을 느꼈다. 사존의 《스위스법회설법》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항상 이런 이치를 말하는데, 바로 우주 중의 일체는 모두 평온한 것이다. 당신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틀어짐이 생기고, 다른 사람과 틀어지고, 주위의 일체가 모두 잘 되어 가지 않는 것 같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긴장이 생겼다. 이때 스스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당신이 자신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아주면 일체가 평온해지고 또 꼬인 것이 풀어짐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무슨 쟁론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에게 정말로 번거로움이 나타났고, 보기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불공정하게 대하고 있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아마 당신이 전생에 다른 사람에게 진 빚일 수 있으므로, 좀 참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을 어머니에게 강요했기 때문에 거절당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마작을 하는 즐거움을 누리려 하는데 내가 왜 거스르려 했을까? 나는 즉시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놀고 싶으면 노세요, 엄마만 기쁘다면요.” 이 외에도 나는 어머니에 대해 관념이 있었고, 원망이 있었으며, 질투심(어머니가 남동생만 편들어 내 마음이 불평형했던 것)이 있었다.
심태가 평화로워지니 명리장(名利場)에서의 암투도 없어졌고, 정에 대한 자승자박의 번뇌도 없어졌으며, 생활 속의 닭싸움 같은 소란도 없어졌다. 있는 것은 온화하고 공순(恭順), 안정과 조화, 편안삼이며, ‘서서히 느리고 둥글게’ 진아(真我)로 돌아가고, 5월의 화창한 봄바람 속에서, 대자재(大自在) 속에서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