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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중의 몇 가지 작은 일들

해외 대법제자 청계(淸溪)

【정견망】

이 기간 나와 동수는 계속해서 ‘션윈(神韻) 오타와 복귀’를 위한 서명 운동을 해왔다. 사실 나와 동수 모두 영어를 잘하지 못해 간단한 말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우리가 공원에서 서명 운동을 하며 겪었던 몇 가지 일이다.

사례 1

우리는 아주 소박해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났다. 나는 먼저 “Sorry to trouble you(실례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다음, “Could you please help me sign the petition?(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웃기 시작하며 아주 유창한 중국어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중국어를 할 줄 압니다.”

나는 무척 놀랐다. 그는 말을 이었다. 자신은 튀르키예 사람이며, 중국 상하이의 푸단대학교에서 유학한 적이 있고, 지금은 캐나다에서 일하며 이곳에서 막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그를 축하해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의 신부가 미소를 지으며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왔다. 아주 온화하고 예쁜 튀르키예 사람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당신은 참 운이 좋으십니다. 아주 훌륭한 남편을 만나셨네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기쁘고 수줍게 웃었다. 이 남자는 또 “나는 당신들에 대해 몹시 알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당연히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하며 그에게 파룬궁 전단지를 건네주었다. 그는 돌아가서 꼭 자세히 읽어보겠다고 말했다.

사례 2

우리는 인자한 인도인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당시 그녀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녀가 내가 든 전시판의 내용을 잘 볼 수 있도록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는 서명판을 보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자신은 영어를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했고, 연꽃 한 송이를 건네주며 연꽃 위에 적힌 영어는 ‘Falun Dafa is good(파룬따파하오), Truthfulness, Compassion, Forbearance is good(쩐싼런하오)’이라고 다정하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이 연꽃을 받아 가슴에 품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관광객인데 내일이면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런 선물을 받다니 정말 너무 기쁘네요.”

당시 내 마음은 순간 뭉클해졌다. 나와 이 할머니는 이번 생에 단 한 번만 볼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중생이 ‘파룬따파하오(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들을 수 있는 기연도 금생에 단 한 번뿐일지 모른다. 나는 사부님의 《홍음 3》 중 한 구절인 “그대는 이 말을 들으려 천년을 기다렸네”라는 시가 떠올랐다. 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며 중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의 책임과 사명이 너무나 막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례 3

이 덥룩한 콧수염을 기른 노인은 공원 잔디밭에 앉아 음악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 서명을 부탁하자 그는 망설임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에게 연꽃을 건네주며 “차량에 걸 수 있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NO”라고 말하더니 그 연꽃을 자신의 목에 걸었다. 정말 너무나 귀엽고 착한 사람이었다!

사례 4

공원 벤치에서 한 쌍의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먼저 사과의 뜻을 전하고 서명 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거절했고, 내가 막 자리를 뜨려던 참에 이 아내가 우연히 내가 들고 있는 션윈(神韻) 전단지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즉시 션윈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곧바로 우리를 위해 QR코드를 스캔해 서명을 마쳐주었다.

사례 5

우리는 한 가족을 만났다. 50~60대 부모와 그들의 딸이 길가에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들의 딸은 이미 다 자란 시각장애인이었고, 손에 잡고 있는 것은 맹인 안내견인 듯했다.

내가 서명판을 나이 든 아버지 앞으로 내밀자 그는 냉랭하게 거절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삶의 무게 때문에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매우 예의 바르게 초국가적 탄압에 관한 전단지를 건네고는 동수와 함께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십여 미터쯤 걸어갔을까, 그 아버지가 뒤에서 급히 우리의 방향으로 걸어오며 손짓으로 서명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알고 보니 그가 그 전단지를 읽고 진상을 알게 되어 우리를 지지하려 마음먹었던 것이다. 중생이 진상을 이해하고 정의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속 진심으로 기뻤다.

사례 6

어떤 노인과 젊은 아가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도 막 알게 된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단지를 건넸고 두 사람 모두 받아들였다. 우리는 또 젊은 아가씨에게 연꽃을 건넸고, 이어 노인에게도 하나 건네려다 고개를 숙여 보고는 조금 난처해졌다. 내 손에 분홍색 연꽃밖에 없었기 때문이지만 예의상 그 분홍색 연꽃을 건넸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I am a man, I don’t need flowers; those are things girls like(나는 남자요, 꽃은 필요 없소. 그건 여자들이나 좋아하는 것이지).” 그리고는 뽀빠이 같은 포즈를 취했고, 그의 유쾌한 몸짓에 우리 모두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사부님께서 《캐나다 법회에 보냄》에서 “여러분은 남은 일을 잘 하고, 당신이 후회하지 않을 수련과정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후회 없는’이란 글자를 보며 마음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후회 없다’고 감히 말할 수조차 없고, 너무나도 많은 후회스러운 부분들이 있다. 정말로 자신이 더욱 정진하여 앞으로의 수련 길에서 진정으로 ‘후회 없음’에 이르고 싶다.

후기

요즘 나는 어떤 상태가 나타난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뚜렷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을 때 연공을 하면 해결책이 떠오르거나, 혹은 발정념을 할 때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이 떠올라 아주 빠르게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최근의 서명 운동에서 나는 많은 인도인을 만났다. 처음에는 왜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부 인도인인지 조금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몇 년 전의 한 꿈이 떠올랐다. 꿈속의 나는 인도 공주였는데, 당시 40대의 나이였지만 아주 거칠고 성격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웃 나라를 시찰하고 있었는데 태도가 매우 오만했다. 꿈속의 나는 그녀가 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을 마치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그 공주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생의 나 역시 한때 아주 기가 센 사람인데, 지금까지도 이러한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나는 노력해서 이를 닦아내고야 말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쓸 때도 발정념을 하던 중에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 생각컨대 이는 사부님께서 나더러 쓰라고 하신 것일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