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一修)
【정견망】
나는 중학교 교사인데, 여름방학 동안 시간을 쪼개어 대량으로 법을 공부하고 법을 베껴 쓰니(抄法), 부지불식간에 사부님께서 내게 많은 법리를 깨우쳐 주셨다.
아이가 개학한 후 중학교 진학을 앞두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때 성적은 내가 보기에 대략 중위권 정도일 것 같았다(학교에서 석차를 공개하지 않는다). 나는 날마다 중학교에서 어떻게 아이의 성적을 향상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비록 아이의 성적과 운명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학부모이자 교사로서 아이의 공부에 아예 무관심하고 방임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아이에게서 존재하는 문제점을 보면서 나는 종종 미망과 곤혹에 빠지곤 했다. 매일 바쁘게 지내다 보니 나는 집에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고, 집은 또 더럽고 어수선했다.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서 또 하나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바로 공부에 대한 열정과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소극적으로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방법을 찾아 아이의 학습 열정을 북돋워 주어야 할까? 원래 공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게 공부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내 머릿속 스쳐 지나간 몇 가지 방법 속에서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았다. 오직 행동으로 옮기고 정념으로 마주하기만 하면 일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때 머릿속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단어가 있었다. 바로 “선대일체(善待一切)”였다!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일과 모든 사물까지도 선하게 대하는 것이다.
“선대일체”하려면 정념으로 모든 것을 대하고, 좋게 하려 노력하며, 가급적 잘 해내고, 가급적 가장 잘 해내야 한다.
집 안을 둘러보니 탁자 위의 어지러운 물건들, 주방의 기름때와 오염물, 싱크대에 산더미처럼 쌓인 식기들이 보였다. 나는 눈앞의 현실에 안주하며 대충 살아서는 안 되고 모든 것을 다 좋아지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깨끗하고 정돈된 것 역시 전통문화이며, 더럽고 지저분한 것은 당문화(黨文化)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8, 90세 된 노인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방 안을 깨끗하고 정돈되게, 질서 있게 배치하고, 이불을 가지런하게 개며 침대 위를 먼지 하나 없이 쓸고 닦는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라. 이미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잃어버렸다. 이 모두가 당문화의 독해 속에서 사람들의 관념이 변했기 때문이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흐름을 따라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이전에 동수가 쓴 회상 문장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글에는 사부님 댁에 손님으로 갔을 때 사부님께서 썰어놓으신 오이 채가 아주 가늘고 가지런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그 대목을 보았을 때는 감탄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감탄하는 것에 그쳤을 뿐, 사부님의 생활 태도와 언행일치를 본받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물며 어떤 물건이든 모두 하나의 생명이다. 나는 그것들을 아껴야 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좋게 하려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가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집안의 환경,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이 모두 우리의 수련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떤 동수는 어떤 음식을 만들든 매우 공을 들였고, 복잡한 공정도 번거로워하지 않으며 완벽을 기하고자 했다. 나는 예전에 그 동수가 너무 인간적인 것에 집착한다고 여겼으나, 이제 나는 이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다음에 밥을 지을 때, 나는 감자채를 채칼에 민 후에 수년 동안 한 번도 씻지 않았던 감자 필러와 채칼을 안팎으로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밥솥 외부에 수년 동안 매달려 있던 때를 닦아냈고, 밥솥 뚜껑에 낀 해묵은 기름때도 깨끗이 닦아냈다.
최근 수련에서 얻은 약간의 인식이니, 층차의 한계로 인해 부당한 부분이 있다면 동수 여러분께서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6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