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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날 조용히 이끌어준 그 시절의 동수들

통위안(桐圓)

【정견망 2026년 8월 1일】

어느 날 《홍음(洪吟)》을 암송하다가 〈동화원만(同化圓滿)〉에 이르러 “우주는 맑고 맑아 법광에 동화되네, 원만 이루어 날아갈 때 함께 천당으로 돌아가리라”라는 몇 구절이 외워지지 않았다. 나중에 반복해서 암송하며 영문판과 대조해 보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 시절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었던 동수들이 떠올랐다. 심지어 어떤 동수들은 만난 적도 없고, 인터넷으로 영상과 음성만 보내주었지만 당시의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격려가 되었다.

나는 또한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이며, 내가 수련의 서로 다른 단계에서 서로 다른 동수들을 만나 수련 길에서 도움을 받게 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며, 늘 순간순간 우리 곁에 계신다. 나는 동수들과의 만남을 기록으로 남겨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잘 다잡으며, 동수들과의 신성한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사촌 언니의 인도로 수련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사촌 언니네 집은 소매업을 하고 있었고 내 학교와 아주 가까웠다. 언니는 자주 나를 집에 불러 밥을 먹이곤 했는데, 영양가 있는 밥상을 차려주어 내 두뇌 활동을 돕고자 했다. 언니는 내게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며 《전법륜(轉法輪)》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았고 공부도 잘해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때 편두통이 있었는데,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아주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법을 얻었다. 매일 아침 등교하기 전에 《홍음》의 시 한두 편을 외우고, 하교 후에 《전법륜》을 읽으며 법광 속에 푹 빠지는 마음에 비할데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 당시 박해가 시작된 지 이미 6년이 지났을 때였다. 사촌 언니네 집은 자료점 역할을 하고 있었고, 많은 동수들이 그곳에 와서 《명혜주간》 등의 자료를 가져갔다. 언니네가 소매업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드나들어도 동수들이 자료를 가져가고 보내는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나 역시 사촌 언니네 집에서 자료를 가져와 각 아파트 단지의 위아래 층을 돌며 배포하곤 했다. 당시에는 정념이 꽤 강해서 사악에게 한 번도 발각된 적이 없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하지만 당신은 온몸이 가벼움을 느끼고, 길을 걸어도 바람에 나는 듯할 것이다”라는 경지를 체감하기도 했다.

사촌 언니네 집에서 나는 어떤 언니 동수와 아주머니 동수를 만났다. 이 언니 동수는 당시 40세가 채 되지 않았는데, 우리 둘은 아주 죽이 잘 맞았다. 언니의 아들과 남편이 집에 없을 때면 나를 불러 그 집에 머물게 했고, 우리는 함께 법을 공부하고 발정념을 했다. 그 시절은 정말 특별히 아름다웠다. 언니가 밥을 지을 때 내가 《정진요지2》의 〈이성(理性)〉을 암송했던 기억이 난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며, 츠뻬이(慈悲)로 홍법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된 것이 너무나 행운이라고 함께 감탄했다. 그 언니는 직장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렸던 이야기도 내게 들려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다른 도시로 대학을 갔고, 그 언니와의 연락은 잦지 않게 되었지만, 연락이 닿을 때마다 여전히 아주 친근했다. 어느 날 언니는 내게 자신이 병업 관(關)을 겪고 있으며 이미 꽤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속인(常人)의 층차에서 보면 폐결핵이었다. 언니는 그것을 돌파하려고 애쓰며 자신의 많은 마음, 특히 정(情)을 찾아냈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남편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또 색욕심(色欲心)도 있어서 거리에서 예쁜 여자를 보면 두 번씩 더 쳐다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언니는 심리적 부담이 아주 컸고, 사부님의 구도에 면목이 없다고 느꼈다. 가족, 동료, 이웃들이 모두 자기가 수련인임을 아는데 정작 자신은 폐결핵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몇 번이나 대화를 나누었고, 언니는 늘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 즉

“이 사람이 연공(練功)하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아는데, 사무실 사람도 알고 동네에서도 알고 이웃 간에도 그가 연공하는 것을 다 안다.”는 말씀을 되뇌었다.

나중에는 언니의 병업 관이 점점 더 커져서 입원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어머니가 언니를 돌보았다. 어느 방학 때 내가 그 도시로 언니를 보러 갔는데, 놀랍게도 그때가 우리가 만난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무렵 나에게도 병업 가상(假象)이 나타났고, 나는 당시 언니에게 사부님과 법을 믿으면 반드시 관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했다. 하지만 언니는 결국 사악에게 생명을 빼앗기고 말았다. 나는 그때 무척 슬펐고, 동수를 도울 수 없음에 안타까웠다. 아울러 수련의 엄숙함을 체감하기도 했다.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틈을 눈을 부릅뜨고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그 아주머니 동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아주머니는 가정 형편이 꽤 좋았다. 그녀는 나를 집에 초대했는데, 집안의 방 한 칸이 온전히 사부님 법상을 모시는 곳이었고 그 앞에는 과일이 가득 차려져 있어 내게 엄숙함과 신성함을 느끼게 했다. 또한 그녀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가진 경건함과 존중에 감동받았다. 아주머니는 내게 동수 간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도와 함께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바깥의 사악이 아주 창궐하니 반드시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나를 몇 번 큰 법공부에 데려가 주기도 했는데, 당시의 하늘을 덮는 것같은 박해 상황 속에서 모든 동수들이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음을 나 역시 체감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그 동수가 사악에게 박해를 받아 불법적으로 체포되었다. 아주머니가 풀려난 후 우리는 한 번 만났다. 아주머니가 했던 말의 대략적인 기억은 이렇다. 동수들이 아주 그립고, 우리 반드시 잘 수련하여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후로 연락이 끊겼고, 아주머니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아주머니 동수는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이도 어렸던 내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아주머니를 통해 나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풍모를 보았다.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큰 도시로 와서 일하게 되었다. 요지경 같은 사회는 내게 큰 유혹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생활을 동경했고 명리정(名利情)에 집착했다. 비록 매일 법을 공부하고 연공을 했지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늘 자신을 실수(實修)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회사의 주선으로 홍콩에 출장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동수들이 진상 신문을 배포하고 가부좌하는 모습을 보았다. 해외에서 자유롭게 연공하고 대법을 널리 알리는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어서 무척 부러웠다.

몇 달 후 회사는 나를 일본으로 또 출장 보냈다. 나는 어느 공원에서 한 아주머니 동수를 만났다. 우리는 비록 일면식도 없었지만 만나자마자 옛친구 같았다. 아주머니는 이미 70세가 넘었지만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그때 나는 아주머니의 몸에서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고 오히려 일종의 신선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일찍이 국내 모 대학의 교원이었고, 《구구신(求救信)》의 주인공 썬이(孫毅)를 가르친 적도 있었다. 나중에 썬이가 해외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그것이 중공 특무의 암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나이든 동수로부터 그녀의 경험과 그녀가 아는 몇 가지 일들을 들으면서 무척 감탄했다. 대법이 성취한 생명은 역시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 생명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힘은 내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출장이 끝나고 대륙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이 아주머니 동수와 계속 연락을 유지했다. 다음 해에 아주머니는 내게 션윈(神韻) 표를 구해주었고,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서 션윈을 보았다. 그것이 내 인생 첫 션윈 관람이었다. 아주머니는 두 회차의 표를 끊어주었는데, 한 번은 앞자리에 앉게 하고 다른 한 번은 뒷자리에 앉게 했다. 그렇게 하면 서로 다른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션윈을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물었다. “어디 갔다 왔어? 어쩐지 뭔가 달라진 것 같아? 피부가 맑아지고 안색이 특별히 좋아졌네.” 바로 이 아주머니 동수와의 접촉과 션윈 관람이라는 계기들을 통해, 나는 해외로 유학을 가고 기술이민 방식으로 해외에 남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해외의 수련 환경만이 내가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발맞추게 해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학업 방면은 아주 순조로웠는데, 내가 늘 장학금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검사를 할 때 폐 부위에 작은 음영(陰影)이 나타났고, 해외 이민국에서는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추가 검사를 거쳐야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내게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나와 대화를 나눌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상인 친지들에게 말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터였고, 애초에 그들은 내가 여자의 몸으로 타국에 가는 것을 원치도 않았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왕래하는 동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바로 그때, 어느 날 위챗(微信)에서 우연히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우리가 먼 천체에서 왔다는 것이었는데, 내용은 매우 감추었지만 그것이 수련인이 만든 것임을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 영상을 올린 동수와 음성 통화를 하게 되었고, 상대방이 중년 여성인 듯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 머릿속으로 그녀는 우아하고 지성적인 사람일 거라고 상상했다. 나는 내가 겪은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그녀는 먼저 영상 내용의 내포를 대략적으로 나누어주었다. 나는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아주 맑고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폐부의 음영은 가상일 뿐이며, 마치 옷 한 벌과 같아서 벗어던지고 부정해 버리면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아주 간단한 비유였지만, 나는 마치 막혔던 혈이 뻥 뚫리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몇 달 뒤, 이민국이 지정한 우리 도시의 병원에서 면담을 하러 오라고 했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 한 명과 젊은 의사 한 명이 내게 폐 CT 영상을 보여주었다. 연세가 있는 의사가 말했다.

“당신의 이 상태는 아주 흔한 겁니다. 어렸을 때 폐결핵을 앓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나아서 칼슘화되었을 수 있어요. 괜찮습니다. 돌아가서 비자를 기다리세요.”

하지만 몇 달의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원래 지원했던 대학의 개학 시즌은 이미 지나버렸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도시의 다른 대학을 다시 지원해야 했다. 나중에 나는 순조롭게 해외로 건너올 수 있었다.

해외에서 몇 년간 생활하며 현지 동수들과 협조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대 법공부팀에 참여하면서, 나는 내가 현재 있는 바로 이 도시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학교도 처음에 지원했던 곳보다 더 좋았고 졸업 후의 직장도 아주 훌륭했다. 알고 보니 모든 것이 다 안배되어 있었던 것이다. 병업 가상은 표면상으로 내가 해외로 가는 시간을 몇 달 지연시킨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내가 최종적으로 공부하고 일하게 될 도시가 더 적합하여 대법 프로젝트에 더 잘 참여할 수 있게 하신 것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위에 언급한 모든 동수들과의 만남은 하나같이 사부님의 자비롭고 절묘한 안배였으며, 수련 길에서 나를 도와주고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대륙에서 동수들과 접촉했던 경험 때문에 나는 동수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졌고, 늘 동수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고 수련 시간이 더 길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이 장년(長年)에 해외에서 일부 젊은 동수들과 협조할 때 많은 모순이 생겼고 서로를 낮춰 보기도 했다.

어느덧 나는 수련한 지 2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좋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많아 환희심(顯示心), 질투심, 투쟁심 등이 자꾸만 반복해서 나타나며 질척거린다. 사부님께서는 우주 대법을 우리에게 전수해 주시고, 내내 우리를 보살펴 주셨으며, 안으로 찾는 법보를 하사해 주셨는데, 나는 여전히 이렇게 못나기만 하다. 늘 동수들의 결점만 주시하고, 내가 보기에 정진하지 않고 오성이 떨어지고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하는 동수들과는 프로젝트를 협조하거나 법리 교류를 하려 들지 않았다.

위의 경험을 글로 써내는 것은, 동수들과의 인연을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일깨우기 위함이다. 어떤 동수들은 어쩌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수련 길에서 우리를 성취시켜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내가 협조하기 싫어하는 동수들은 바로 나의 집착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이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업을 소멸하고 제고시키도록 안배해 주신 것이다. 앞으로는 동수들을 선하게 대하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길을 바르게 걸어 나갈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동수 여러분 고맙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