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오늘 여러분과 함께 최근에 작은 병업관을 넘었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유사한 경험이 있는 동수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신체는 줄곧 아주 튼튼해서 병업관을 넘는 일이 드물었다. 동수들이 병업관을 넘은 교류를 읽을 때마다 나는 정념을 가지고 관을 넘는 그들의 모습에 깊이 감탄했으며, 그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느꼈다. 매번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부딪힌다면, 이 관을 넘을 수 있는 충분한 정념이 내게 있을까?’ 많은 경우 나는 내 자신이 확신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마음에 늘 어떤 병업이 내 몸에 닥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일요일, 나는 우연히 치아 구조와 보건을 소개하는 숏폼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치아를 잘 보호해야지, 문제가 생기면 절대 안 돼. 안 그러면 너무 고통스러울 거야.’ 그런데 그날 밤, 나는 뜻밖에도 치아의 극심한 통증에 잠이 깨고 말았다. 통증은 얼굴로까지 번졌고 머리까지 찢어지는 듯이 아팠으며, 아무런 전조도 없이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 제6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두려워하는 것도 병이며 역시 집착심으로,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것은 과연 내 마음이 바르지 못해 불러들인 번거로움이었다.
월요일, 나는 어떤 속인에게 치통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들은 신념(神念 신이 보내는 생각)을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만약 믿는다면 신념을 보내봐요, 효과가 있을지.”
나는 그녀가 발정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나를 일깨워주신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당시 나는 그것을 그리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고, 결국 그날 밤 다시 치통으로 잠이 깨고 말았다.
화요일이 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출근하여 집을 나서기 전에 나는 점심 가방에 목캔디 몇 개를 넣으면서, 운전할 때 하나 먹으면 그 속의 박하가 아주 시원해서 잇몸 붓고 아픈 것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가방에 넣었는데 차에 탄 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쩌면 먹지 말아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고 깨달았고, 그렇다면 먹지 말고 더 이상 찾지도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내 정념은 여전히 진정으로 일어 서지 않았다. 오후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치과의사 동수에게 왜 갑자기 치아가 아픈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발정념을 해서 치아와 소통하면 그만이고 그렇지 않으면 속인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을 하나의 연공인으로 대하고 정념을 가져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퇴근길 운전 중에 명혜방송을 들었는데, 동수가 사부님께서 당시에 법을 전하셨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웬일인지 무척 감동스러워 눈물이 계속 흘렀다. 집에 돌아와 연공을 하는데 연공 음악이 울리자마자 또 눈물이 났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도 없고 그냥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 진정한 자신의 일면이 사부님의 자비를 느꼈거나, 제자의 수련 깨달음이 부족한 것을 두고 안타까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밤에 동수들과 함께 법을 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2015년 미국 서부법회 설법》에서 하신 다음의 법을 읽게 되었다.
“당신의 매 한 가지 집착은 모두 당신을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매 한 가지 집착은 모두 당신의 신체에 상황이 나타나게 할 수도 있으며, 대법에 대한 견정한 신념에 동요를 조성할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누구도 당신들을 수련 성취하게 할 생각이 없으며 또한 누구도 당신들이 수련한 것이 어떠한지 고려하지 않는다. 구세력은 오로지 그것들이 완성하고자 하는 것을 완성하려 할 뿐인데, 단지 이뿐이다. 구체적으로 파괴한 것들, 부면 작용을 일으키는 데 참여한 것들, 그것들은 바로 당신들을 떨어져 내려가게 하고, 바로 이 일을 파괴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이 일의 최종 결과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악은 곧 사악일 뿐이다. 오직 사부만이 당신들을 수련 중에서 원만으로 나아가게 하였으며 오직 사부만이 진정으로 이 일을 한다.”
읽고 또 읽으면서 왜 그런지 또 눈물이 솟구쳤다. 법공부를 마친 후, 나는 진지하게 나의 수련 상태를 반성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진정한 수련인인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요구하셨는데, 나는 과연 그중 어느 하나를 진정으로 잘 해냈는가?’ 정념 발휘의 경우, 자주 네 번의 정각(整點) 중 세 번밖에 하지 못했다. 법공부는 매일 하고 있지만 글자마다 마음속으로 들어간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연공 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매일 5세트의 공법을 끝까지 견지하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건강한 신체를 구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진상알리기 측면에서는 행사가 있고 동수가 나를 찾으면 가고, 행사가 없으면 나는 거의 자발적으로 하려 하지 않았으며, 핑계는 자신이 일이 너무 바쁘다는 것이었다. 과연 나는 평소에 비교적 바쁘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비록 시간이 있을 때조차도 나는 거의 자발적으로 걸어나가지 않았다. 나는 자신이 사부님의 요구에서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마음속으로 무척 부끄러웠다. 이번에 나타난 병업은 나에게 나태해지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토요일에 시간이 있기만 하면 자발적으로 진상 장소로 가서 진상을 알리고, 서명 운동에 더 많이 참여해야지 다른 사람이 나를 찾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화요일 밤 법공부를 마친 후, 나는 다시 한 시간 동안 포륜(抱輪)을 했고, 온라인 발정념에 참여했으며, 정념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통증은 기본적으로 사라졌다.
생각해 보라. 만약 속인의 방식으로 처리했다면 십중팔구 신경치료를 받아야 했을 것이고, 심지어 치아를 뽑고 임플란트까지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겪어야 할 고통이 내가 이틀 동안 감내한 것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 “살생 문제” 절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구체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대법(大法)으로 가늠하여 당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그렇게 하도록 하라. 속인은 그가 무엇을 하려면 바로 그것을 하는데, 그것은 속인 중의 일로서, 사람마다 모두 진정으로 수련한다는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연공인으로서는 마땅히 높은 표준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연공인에게 제기하는 조건이다.”
이전에 이것을 읽을 때는 간혹 의문이 들기도 했다. ‘법으로 가늠한다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자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느끼면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에야 깨달은 것은 법이 너무나 거대하고, 배우는 사람의 심성 높낮이 역시 제각각이어서 사부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규정해 주지 않으시고, 모두 개인이 자신의 심성 위치에서 어떻게 할지 선택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사(上士)는 깨달음(悟)에 의지하여 원만한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진정으로 병통과 고난을 겪고 그것을 돌파해 낼 때 비로소 수련의 귀중함과 신묘함을 더욱 깊이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얻기 힘든 기연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하며, 언제나 자신을 수련인으로 대하고 정념을 유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