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립(元粒)
【정견망】
생활 속에는 아주 많은 사소한 일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소한 일에서도 우리 수련인의 상태가 체현될 수 있다.
우리 건물에는 한 층에 네 가구가 있는데 우리가 가운데다. 동쪽 이웃은 수시로 세입자가 바뀐다. 이전 세입자 때, 어느 날 문앞에서 “그녀가 쓰레기 버리는 것을 도와주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내가 어느 방면에서 잘못한 것일까? 왜 저 집 젊은이는 노인이 내 쓰레기 버리는 것을 돕지 말라고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평소 출근길에 너무 서둘러 남을 도와준 적이 적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세입자가 바뀌었는데 말이 많았고, 두 노인은 모두 퇴직한 사람들이었다. 남자는 병이 있었고, 여자는 나를 찾아 이것저것 묻기를 좋아했다. 그들이 문앞에 둔 쓰레기는 대부분 한약 냄새가 진했는데, 우리 문앞에 놓든 그들 자신의 문앞에 놓든 나는 모두 도와주어 지난번 세입자가 나에 대해 불만을 품었던 일이 나타나지 않게 했다.
대법제자로서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어디서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잘 수련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 제 일위이다.”(《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이전의 나는 이것을 해내지 못했는데, 내가 더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 안에 나태함도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시로 그들의 쓰레기 버리는 것을 도와주고, 때로는 그들도 내가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가는 것을 도와준다. 내가 반년 동안 집에 없다가 최근 반년 만에 주인이 바뀌었는데, 우연히 만나고서야 집을 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인들이라 자주 마주치지 않아 한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들은 수시로 쓰레기를 내 문앞과 가까운 곳에 두었는데, 나는 보기만 하면 가지고 내려갔다.
어느 날 정오 무렵 내가 문을 열자, 문앞에 큰 쓰레기봉투 하나가 입도 벌어진 채 놓여 있었다. 내 마음에는 추호의 불만도 없었고, 가지고 내려가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만약 예전 같았고 이런 일을 만났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큰소리로 욕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소양이 왜 이래?! 왜 우리 문앞에 버리고, 자기네 문앞에는 안 두는 거야??’라고 불평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에게 스스로 말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야. 겸사겸사 가지고 내려가자, 두 분 다 노인이니 도와드리자.”
이러한 평온한 마음가짐은 나로 하여금 아주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도 아주 순조로웠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다음 법리에 부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慈悲(츠뻬이)는 속인사회 중에서 선의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어 나오는데, 이는 또한 대법제자의 내면이 반영되어 나오는 생명의 상태이다.”(《각성하라(驚醒)》)
“누구에게든 慈悲(츠뻬이)하게 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것은 정말로 일반인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특히 무슨 일을 하든 모두 중생에게 慈悲(츠뻬이)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대법도(大法徒)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각성하라》)
“근래 나는 줄곧 생각하고 있는바, 나는 여러분에게 중생을 구하라고 했는데, 여러분이 각자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의 사람을 구하는 심태나, ‘션윈(神韻)’ 공연으로 사람을 구할 때의 상태만이어서는 안 된다. 평소 당신들은 부동한 일하는 환경 중의 표현에서도 사람을 구하는 심태와 출발점을 유지해야 한다.”(《각성하라》)
비록 작은 일이지만,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에 도달했다.
나는 보통 아래층으로 좀 늦게 내려가기 때문에, 이렇게 네다섯 번 정도 하고 난 후, 문앞에는 더 이상 쓰레기가 없고 도리어 동쪽 이웃 문앞에 쓰레기통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가끔 복도에 내놓던 쓰레기도 사라졌다.
평소에 습관적으로 저녁에 쓰레기를 문앞에 내놓았다가, 다음 날 외출할 때 아래층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문앞에 둔 쓰레기는 수시로 남들이 파헤쳐서 땅에 흩어놓았고, 그중 종이상자와 물병을 가져가곤 했다. 어느 날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내 마음이 불쾌해졌지만, 곧바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미화원(청소부)이 가져가는 것이고 돈 벌기도 쉽지 않으니, 됐어, 내가 치우고 내려가지 뭐.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고, 앞으로는 아예 직접 내려가서 버리거나 종이상자를 폐지 줍는 노인에게 주자. 기회가 있다면 그들에게 진상도 알려줄 수 있다. 구도와 사랑을 출발점으로 삼아, 매일의 일들이 모두 계기가 되니 인연 있는 사람을 놓치지 말자. 동시에 나의 안일함을 버리고, 몇 걸음 더 걸어서 복도의 청결을 유지하자.’
서쪽 이웃도 세입자인데, 수시로 복도에서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전화를 할 때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든 여자의 성격이 외향적이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 집 쓰레기는 자기네 집 문앞에 두었지만, 수시로 봉투에서 어떤 오물이 흘러나와 그 집 문앞부터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이어졌다. 우리 집 문이 엘리베이터 입구를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문을 열면 바로 밟게 되었다. 어느 날 진상을 알리러 나가려다가 이런 상황을 발견하고는, 나는 껑충 뛰어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면서 ‘돌아와서 치워야지’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니 너무 피곤해서 잊어버렸고, 내 마음에는 불만은 없었지만 처리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은 나의 어떤 마음을 닦으려는 것인가? 내가 흔들리는지 보려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흔들리면 진상 알리는데 교란을 조성하게 되는데, 어느 것이 무겁고 어느 것이 가벼운가? 똑똑히 분별해야 한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도 중에서》).
“대법제자의 칭호는 가장 신성한 것이다. 그는 최고 우주대법의 수련자이며, 그는 사부를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생명의 근본으로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잘 수련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 제 일위이다.”(《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그 무엇도 구도를 방해할 수 없으며, 나는 돌아온 후 치울 수 있었다. 그가 우리 문앞의 오물을 치워놓은 것을 발견했지만 엘리베이터 앞은 쓸려있지 않았고, 나도 이 일을 청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시 나가려고 보니 청소하는 사람이 이미 쓸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최근에는 문제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내가 변하자 환경도 변한 것이다. 작은 소감이니 여러분과 공유하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