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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내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주셨다

일본 대법제자

【정견망】

도쿄에 막 도착했을 때, 나는 내가 그렇게 빨리 연공장을 찾을 줄은 몰랐다.

도쿄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나는 연공장을 찾았다. 처음 그곳으로 들어갔을 때, 내 마음은 정말 아주 격동되었고 또한 몹시 감동했다. 마침내 다시 수련의 집단 환경이 생겼구나! 그 느낌은 지금까지 돌이켜봐도 여전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첫날 연공장에 가서 연공할 때, 나는 연공장 위에 각종 눈부신 광환(光環)들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부채처럼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또 사부님 법신(法身)을 보았다. 사부님의 법신은 크기가 비할 데 없이 거대하여, 심지어 발가락 위쪽이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집을 나간 아이가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집을 찾았고, 마침내 친인(親人)을 만난 것만 같았다.

또 물을 떠난 지 오래된 물고기가 마침내 다시 물속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 친근함과 따뜻함, 그리고 행복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나를 더욱 감동하게 한 것은 연공장의 동수들이 모두 매우 선량하고 나를 특별히 잘 돌봐주었다는 점이다. 첫 만남인데도 모두들 마치 오래 알던 사이 같았고 거리감이 없었으며, 나로 하여금 대법제자 사이의 그 순정한 선의를 진정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실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오직 수련 환경 하나를 찾기 위해 5년을 떠돌다

2019년, 나는 해외로 나와 일하게 되었다.

이전에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간 적이 없었기에 해외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나는 당시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해외에 도착하기만 하면 아주 빨리 대법제자와 접촉할 수 있을 것이고, 아주 빨리 연공과 법공부 환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심지어 비행기에서 내리면 혹시 대법제자들의 퍼레이드 행렬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천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린 후 현실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도쿄에서 6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고, 게다가 근무지는 매주 월요일만 고정으로 쉬었다. 나중에 내가 인터넷으로 해외 연공장과 각종 활동 시간을 조회해 보니, 대다수의 단체 연공, 법공부 및 퍼레이드 활동이 모두 토요일과 일요일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필 토요일과 일요일은 일손이 가장 바쁠 때였다. 나는 도저히 참가할 방법이 없었다.

그 시기 내 마음은 특별히 실망스러웠고 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미 회사와 5년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남과 약속을 했으니 신용을 지켜야 마땅했기에, 이 5년 동안 나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계약을 채워 일했다.

이 5년 동안 고생을 적게 한 것도 아니었고 모진 고초를 겪었다. 업무량이 아주 많았고 일도 매우 고팠다. 한동안은 나의 팔, 다리, 심지어 심장까지도 아주 힘들게 느껴졌다. 매일 밤 퇴근한 후에 나는 반드시 먼저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며 몸을 좀 진정시킨 뒤에야 숙소로 돌아와 누워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수련의 관점에서 볼 때, 나도 알았다. 이러한 경험 역시 자신을 고험하는 것임을 말이다. 시간이 오래되자 차츰 적응하게 되었다.

사장님이 숙식을 제공해 주었고 우리 역시 평소에 별로 큰 지출이 없었다. 처음에는 월급이 비교적 적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 3년째가 되자 수입도 꽤 괜찮아졌다.

5년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나는 의외로 떠나기가 조금 싫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안일한 마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나 스스로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해외에 온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가족은 줄곧 나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만약 장기간 수련 환경이 없고 대법제자의 정체 환경에 진정으로 녹아들지 못한다면 내가 이대로 가서는 분명히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가족이 나에게 말했다.

“계약을 이미 5년 채웠으니 우리 이곳을 떠나 도쿄로 가서 수련 환경이 있는 곳을 찾아요. 당신이 이렇게 장기간 지내서는 분명히 안 돼요. 우리가 해외에 온 목적이 무엇이죠? 온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닐 겁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말들을 사실 나는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나 역시 진심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떠날 결심을 할 때 내 마음에는 온통 걱정이 가득했다. 도쿄는 아는 사람이 없어 지리를 모르고, 일자리도 없고 집도 없었다. 5년 동안 줄곧 비교적 안정한 생활 환경을 유지해 왔는데, 이제 느닷없이 전부 내려놓고 새로 시작해야 하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러므로 비록 입으로는 떠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막상 떠나야 할 때가 되자 나는 한참 동안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가족은 심지어 나의 진짜 생각을 알아차리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왜 당신이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눈곱만큼도 안 보일까요?”

나는 말했다.

“나는 떠나고 싶어요, 내가 언제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 있나요?”

사실 나 자신도 마음속으로 아주 모순적이었다. 나는 떠난 후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고, 다음 발걸음이 어디인지도 몰랐으며, 미래가 어느 정도까지 흘러갈지도 알지 못했다. 가족이 이미 짐을 싸기 시작하고 짐 보따리를 챙기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곳에서 우유부단하게 망설이고 있을 때, 아주 작지만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한 가지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상자 하나가 위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뚝 떨어졌다. 내가 보니 그것은 대추 한 상자였다. 대추가 떨어졌다. 나는 그 순간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추(枣 zǎo)는 조(早 zǎo)와 발음이 같다. 진작 떠났어야 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주시는 것이라고 느꼈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떠나야 할 때다. 나는 단번에 마음이 굳건해졌다.

거듭되는 ‘잔류’ 유혹, 거듭되는 일깨움

나는 곧바로 사장님을 찾아가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사장이 우리가 떠날까 봐 걱정해 이전에 60만 엔의 보증금을 묶어두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장에게 한 달 휴가를 내어 밖으로 나가 좀 둘러보고 쉬고 싶다고 말했다. 사장은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고 우리가 떠나는 것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는 우리가 진정으로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매우 단호했다. 결국 사장은 내게 한 달 휴가를 주는 것에 동의했다.

나와 가족은 몇 가지 여행 물품을 준비해 공원에서 7일 동안 머물렀다. 바로 그때, 일본에서 식당을 하는 여동생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 친구의 식당이 마침 개업해 일손이 필요하니 나더러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승낙했다. 식당이 개업한 후, 나는 떠날 준비를 했다.

뜻밖에도 사장과 사모님이 도리어 우리에게 우리가 일하는 솜씨를 아주 높이 사고 우리의 인품도 인정하니 우리더러 남아서 계속 일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승낙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열정적이었고 말도 잘했다.

“당신들이 외국에 나온 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당신들이 원하는 월급 액수를 말해봐요, 내가 다 맞춰줄 테니. 어디인들 일하는 게 아닌가요? 그냥 여기 머물러요!”

이 일련의 말은 나와 가족에게 모두 다소 갑작스러웠고 또 약간 쑥스럽게 만들었다. 내 마음은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온 후, 나는 가부좌를 틀고 마음을 가라앉힌 채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나에게 답을 주십사고 빌었다.

“사부님, 제가 머물러야 할까요?” 바로 이때, 나는 천목(天目) 속에 어떤 풍경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한가운데서 불에 타고 있었으며, 게다가 그 거대한 나무 전체가 둥실 떠올라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사부님께서 내게 무엇을 알려주시는 거지?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바로 이때, 성어(成語) 하나가 느닷없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화속수리(火速—樹離開 : 급히 서둘러 나무가 떠난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마음이 환하게 트였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다음 날, 나는 곧바로 사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머물 수 없습니다.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애초에 약속했던 것은 당신이 식당을 개업하는 것을 도와준 뒤에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다음에 연분이 있다면 우리 다시 만납시다.” 이튿날, 사장은 아쉬워하며 우리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침내 도쿄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도쿄에 와서, 마침내 ‘집’을 찾다

도쿄에 도착한 후, 나는 내 경험을 연공장 동수에게 이야기했다.

동수가 내게 물었다.

“두 분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세요?”

나는 말했다.

“여관에 묵고 있습니다.”

동수가 곧바로 말했다.

“그럼 빨리 나오세요.”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기 집에 사람이 살지 않고 비어 있는 집이 한 채 있으니 우리가 들어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게 주소와 문번호, 그리고 우편함에 넣어둔 비밀번호와 현관 열쇠까지 모두 알려주었다.

그녀는 또 내게 말했다. “당신이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계속 무료로 살 수 있으니 돈을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마음대로 쓰시고 사양하지 마세요.”

이 말들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멍해졌다. 단 한 번 처음 만난 동수, 서로 완전히 낯선 사람이 일면식도 없는 우리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기 집을 내어 살게 해줄 뿐만 아니라, 집안 물건까지 마음대로 쓰라고 할 줄이야.

나는 이 동수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그녀가 마치 내 친언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진정으로 깨달았다. 대법제자 사이의 이 선의와 신뢰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말이다. 이 복잡한 사회 환경 속에서, 이렇게 서로 신뢰하고 서로 돕는 수련 환경은 정말로 한 조각의 얻기 힘든 정토(淨土)와 같았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동수가 우리를 도와준 일을 가족에게 이야기했다. 가족도 매우 기뻐했다. 가족이 내게 말했다. “만약 이번에도 동수를 찾지 못하고 편히 쉴 곳이 또 없다면, 우리 정말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어.” 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감개가 무량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여정에는 참으로 많은 우연이 있는 것 같았다. 5년의 근무 계약, 늑장 부리며 떠나기 싫어하던 망설임, 갑자기 떨어진 그 대추 한 알, 나중에 식당 사장이 거듭 붙잡던 일, 명상할 때 보았던 불타는 커다란 나무, 마침내 도쿄에 와서 연공장을 찾자마자 동수들이 무(無私)하게 우리를 도와준 일까지……

발걸음마다 마치 나를 앞으로 떠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제자를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을 말이다. 한 제자가 진심으로 수련의 길로 돌아오고자 할 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걷기 힘들어 보이고 생각이 똑똑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 일깨움과 안배를 주셨다.

나는 일찍이 집을 나간 아이처럼 밖에서 오랫동안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도쿄에 온 그날, 나는 마침내 그 익숙한 단체 수련 환경을 찾았고, 마침내 다시 동수들 품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왜 그토록 감동했는지를 진정으로 깨달았다. 하늘은 높아 새가 날기 좋고 바다는 넓어 물고기가 뛰놀기 좋도다! 왜냐하면 나는 마침내 진정한 정토에 다시 녹아들었고, 마침내——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또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도하는 나의 발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빨리 현지에서 사람 구하는 항목에 녹아들어 자신의 사전서약(史前誓約)을 완수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