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정(情)과 색(色)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약간의 인식

상운(祥云)

【정견망 2026년 9월 27일】

대법을 통해 우리는 정(情)이 삼계 내의 한 신(神)이며, 삼계 내의 중생들은 모두 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계라는 이 환경을 뛰어넘어 성스럽고 아름다운 세계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정을 버려야 한다. 정은 사람에게 일종의 가상(假象)을 만들어 주어, 정이 그윽하고 다정하며 매우 편안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이 물건에 집착할수록 그것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더욱 지독해지며, 오직 대법 속에서 수련해야만 마침내 그것을 철저히 제거할 수 있다. 수련인은 그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물론 말법 시기에는 사회 전체가 구세력에 이끌려 이 방면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조금만 방심해도 쉽게 간섭을 받게 되니 우리는 바로 이러한 환경 속에 처해 있다.

정과 색(情色)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꽤 괴롭게 느껴지기도 하니, 그럴 때는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수련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사실 그것은 자신이 죽기 싫어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승화해 올라오면 아주 뜻대로 자유자재로운 상태가 생겨나 정색이 당신에 닿지 못하게 되고, 당신에게 아무런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다.

물론 정과 색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층층이 나누어 제거하는 것이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단계에서, 대개는 자신이 그다지 유의하지 않고 주의식(主意識)이 충분히 강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이때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법을 많이 공부하여 정념을 충실히 하고,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며, 발정념으로 업력과 관념의 장애를 해체해야 한다. 그러면 아주 빨리 지나갈 수 있다. 대개 잘 넘어가지 못하는 원인은 우리 자신이 철저히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여전히 속인 속의 소위 아름답고 행복한 생활 같은 것들을 그리워하고 동경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정과 색의 마(魔)가 틈타 파고들 빈틈을 주게 되는 것이다. 만약 자신에 대한 심성 요구를 느슨하게 하여 정(情)의 마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면, 이때 다시 빠져나오는 것은 힘이 든다.

속인 중에서 수련할 때, 항상 경각심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물론 아직 가정을 이루지 않은 동수들에게는 배우자를 찾아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방면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도 그들(그녀들)에게는 수련 과정 중의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일은 바로 남녀유별(男女有別)이다. 어떤 동수들은 이 방면에 대한 인식이 아주 부족하여, 모두 동수인데 뭐 별일 있겠냐며 많은 일들에 대해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첫째, 우리 수련 속에는 여전히 인심이 남아 있으니 그것에게 시장(활동 공간)을 주지 말아야 한다. 둘째, 남녀 교제 예의 규범에 부합해야 한다.

종종 동수들이 교류할 때 이 방면을 잘하지 못해 박해를 받은 사례들을 몇 가지 드는 것을 보는데, 모두 참혹한 교훈들이다. 구세력이 매서운 눈으로 엿보고 있으며, 우리가 이 방면에서 잘못을 저질러 독수리를 내리칠 기회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법수련(正法修練)의 각도에서 바라볼 때, 대법제자가 감당하는 거대한 사명에 비추어 볼 때 개인의 그깟 사정(私情)이 도대체 대수롭겠는가? 사존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제도와 중생들의 간절한 기대를 생각해 본다면, 이 세속 중에 그 무엇이 우리를 붙들어 매고 묶어두어 우리가 정진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속세의 인연은 모두 허환(虛幻)이요, 법의 인연은 영원하다. 우리 모두 법 안에서 정진하여 사전(史前)의 서원을 완수하고, 비길 데 없이 성스럽고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