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람마다 문제를 보는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결과도 다르다. 마치 어떤 물건이 그곳에 놓여 있을 때, 만약 당신이 높은 곳에서 보면 하나의 모양이고, 만약 물건의 측면에서 본다면 또 다른 모양이 되는 것과 같다. 각도가 다르면 다른 모양이 된다. 이것은 문제를 보는 기점과 같다. 기점이 그곳에 서 있으면, 바로 그 기점에서 비롯된 결과가 생겨난다.
수련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고, 하는 일이 자신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기점이 틀린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눈은 삼계(三界)의 가장 큰 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 신체 위의 일체도 모두 분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계는 미혹의 공간이며, 삼계 속 사람들이 사는 지구는 또 우주의 쓰레기장이다. 온갖 좋지 않은 것들이 전부 지구라는 이 쓰레기장으로 떨어지므로, 이곳은 참으로 더러운 곳이다. 게다가 삼계의 이치와 천상(天上)의 이치는 또 반대되는 이치여서, 삼계에는 바른 이치가 없다. 그렇다면 삼계에 바른 이치가 없고, 이곳의 일체 또한 우주의 이치와 반대되므로, 사람의 이치대로 일을 행해서는 안 된다. 불쾌한 일을 만났을 때, 아마 다른 공간에서는 좋은 일일 수 있고 겉보기에는 아주 마음이 번거롭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순조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삼계는 반대되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치는 이해했으나, 정작 실천 속에서는 의연하게 마주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며, 사람의 관념도 끊임없이 위로 솟구친다. 정(正)과 사(邪)가 겨루는 이것 또한 사람의 껍데기를 벗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면은 사람이고, 한 면은 신(神)이다. 관념과 정념이 동시에 저울 위에 놓이며, 오직 어느 쪽의 비중이 더 크고 무게가 더 무거운가에 달렸다. 갈등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수련이 너무 차(差)하고, 공간장 속의 불성(佛性)이 너무나 적다는 것을 느낀다. 마치 사람이 신체가 좋고 상태가 좋으면 정력이 충만하고 일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과 같다. 반대로 신체 상태가 아주 나쁘면 일을 조금만 해도 피곤해지는 것과 같다. 대법제자는 대법이 육성한 생명이다. 법을 잘 공부하면 정념이 충만하고 사람을 구하는 힘도 크다. 만약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사람 생각(人念)과 집착이 우세를 차지해, 때로는 분명 법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 이쪽의 집착이 너무 강해 여전히 사람의 이치로 가늠하게 된다. 이것은 나를 매우 괴롭게 만들며, 어떻게 해야 사람 속에서 헤어나지 않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결점은 바로 그 사람의 누락(漏點)인데 마치 사람의 면역력과 같아서 이 방면의 방어 능력이 약해진다. 나에게도 이 방면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나와 남편은 성격이 다르고 문제를 보는 각도도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르고 간격이 생겼다. 때로는 마음이 번거로울까 두렵고 모순이 생길까 두려워 그와 함께 하기를 원치 않았다. 바로 이러한 누락이 다른 부부들은 어떻게 그렇게 조화롭게 지내고 서로가 그토록 융화되는지를 보게 만든다.
어느 날 거리에 나갔는데, 마음이 마침 소란스럽고 번거로워 남편이 어떻게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뜻에 맞지 않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연이어 여러 쌍의 부부가 매우 친근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자신과는 상관없으며 속인은 속인의 생활 방식이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자 마음이 더욱 번거로워졌고 남편이 아주 눈에 거슬렸으며, 말하고 행동하는 것마다 짜증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마음속으로 억눌러야 했다.
어느 날 나는 문득 경각심이 들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번거로울까? 거리에서 보았던 광경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이것은 자신에게 누락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방면에 결점이 있는 것처럼 보여 남에게 틈을 타게 한 것이며, 그리하여 이전의 번거로움이 가중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집착이라는 이 방면에서 찾아야 한다. 이때 나는 자신의 그런 동경하는 마음, 추구하는 생각, 그리고 도달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소원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근본적인 집착을 버리지 못해 번거로움과 모순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근본적인 집착을 끊어내야 한다. 나는 동경도 없고, 추구도 없고, 바람도 없다.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대법에 맡기자. 나는 대법의 한 입자(一粒子)이며, 오직 법 속에 용해된 생명일 뿐이다. 누구도 대법제자가 스승을 도와 정법(正法)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간섭할 자격이 없다. 누가 하든 그것은 죄이며, 법을 파괴한 죄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념(一念)을 발했을 때, 즉시 한 갈래의 힘이 근본 집착의 끈을 끊어버리는 것을 느꼈고 사람 이쪽 면도 매우 홀가분해졌다. 그에 따라 환경도 변해 앞서 억압적인 분위기가 상화(祥和)롭게 변했고, 며칠 동안 팽팽했던 간격이 법에 의해 해결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수련이란 원래 이토록 신기하고 오묘한 것이었다. 겉으로 얼마나 잘하고, 말을 얼마나 잘하며, 깨달음이 얼마나 높으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언제 어디서나 법 속에 둘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명백한 일면이 자신의 “신분”을 알고, 이성적이고 지혜로우며 자비로운 상태에서 법에 대조해 보며 자신을 살펴보고, 어디에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는지 가늠할 때 그 근본적인 집착은 뿌리째 뽑힐 것이며, 교란의 원천을 제거함으로써 모순의 발생도 끊어버리게 되어 대법제자가 바른 일(正事)를 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된다.
기점은 위로 제고하는 첫 번째 디딤돌이며, 기점 또한 한 생명이 선택을 내리는 기본 조건이다.
이상은 현 단계의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