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수필: 내 감정은 내가 아냐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전에 늘 감정이 불안정해서 괴로워했다.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도 공이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 지금은 비록 스스로 성질을 내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에 부딪히면 감정이 도리어 흔히 롤러코스터처럼 등락을 거듭하며 안정하기 어려웠으니, 청정(淸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왜 감정이 있을 수 있는가? 핵심은 역시 이 ‘정(情)’으로 인해 촉발되는 데에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정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감정을 터뜨리게 된다. 다시 뒤집혀 나오는 그런 감정들을 보라. 기쁨, 짜증, 초조, 집착스런 생각. 외부의 작은 움직임에도, 내심은 곧 파도가 사방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늘 “나는 화가 났다”, “나는 슬프다”, “나는 내려놓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감정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이란 그저 연극에 너무 깊이 빠져든 가짜 자아가, 정에 이끌려 파생된 짧은 심념(心念)의 파동에 불과하다.

상인의 인지 속에서는, 본능적으로 나의 신체, 나의 감정, 나의 욕망, 나의 얻고 잃음……, 이러한 것들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전한 나라고 생각한다. 또한 뇌리 속에서 밤낮없이 멈추지 않는 생각들, 어떤 사물에 대한 좋고 나쁨, 얻고 잃음에 대한 계산, 사람에 대한 평가……, 이것들은 모두 ‘나의 생각’이라 불린다.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무릇 ‘나의(我的)’라는 글자가 붙은 것은, 모두 진정한 나가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세상에 와서, 업력과 관념에 의해 형성된 가짜 자아이다. 반면 진정한 진짜 자아는, 마침 후천적으로 형성된 번잡한 감정, 염원, 관념에 의해 매몰되어 있으며, 진짜 자아는 근본적으로 염원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침착한 관찰자처럼, 여러 가지 마음의 움직임과 염원이 오고 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본다.

사존께서는 《북미 제1기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의 팔, 당신의 다리, 당신의 손가락, 당신의 입은 당신이 그것에게 어떻게 움직이라면 그것은 곧 그렇게 움직인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상이 입정(入定)하려고 하면, 그것은 그 사상을 조용하지 못하게 한다. 당신이 그것에게 조용해지라고 할수록 그것은 더욱 조용해지지 않는데, 그것이 당신인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관념과 업력이다. 그러니 당신은 그것을 제3자로 간주하라. ‘너는 생각해라. 나는 네 생각을 지켜보겠다.’ 이번에 당신이 뛰쳐나와 당신을 정말 분명하게 갈라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과 경계선을 똑똑히 갈라놓은 것과 같으며, 당신 자신이 자신을 찾았기에 이 역시 수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주 빨리 그것을 소멸해 버릴 수 있다. 당신이 정말 그것을 확실히 갈라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무서워하는데, 곧 그것을 없애버리게 된다.”

나는 감정과 염두가 자신임을 인정하지 않고,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업력을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을 수련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737